영화시장 시즌 초월, 무한 경쟁

6월과 함께 본격적인 영화 성수기를 맞는다는 일반의 통념을 깨고 한국 영화 시장은 사실상 5월 초부터 대작이 쏟아지면서 치열한 열전을 거듭해 왔다. <엑스맨 2>의 화려한 입성과 <살인의 추억>의 기대를 뛰어넘는 신기록, 후발 막강수로 개봉 이틀 만에 영화 시장을 장악해 버린 <매트릭스 2 리로디드> 등 장르의 경계를 초월해 버린 듯한 국내·외 영화들의 선전 속에서 더 이상 한국 영화계에 '시즌'을 운운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아직 <매트릭스 2 리로디드>가 절대 군림하고 있지만 6월 초에 개봉을 앞둔 군소 영화들의 면모 역시 심상치 않다. 우선 납량용 재난(?)을 꾀하는 <폰부스(20세기 폭스)>와 <튜브(프리프로덕션)>가 양대 주요 영화로 우뚝 서 있다. 두 편 모두 각각 911 과 대구 참사 사건으로 어쩔 수 없이 개봉을 미뤄야 했던 '한 맺힌' 블록버스터 오락 영화지만 실제 사건의 비극을 상기하며 본다면 색다른 감회를 느낄 수도 있다. 디즈니가 픽사와 손을 잡고 오랜만에 야심차게 내놓은 <니모를 찾아서> 역시 주목되는 작품이다. 더 이상 발전할 데가 없을듯한 애니메이션의 기술 역사를 새롭게 썼다는 호평이 자자해 가족 단위의 관람객에게는 흥미로운 작품이 될 듯 싶다. 호언장담형 홍보 문구로 덧칠된 여름 영화들이 못내 못마땅한 괴짜 관객들에겐 포복절도할 괴짜 코미디 <성질 죽이기>가 대안이 될 전망이다. 6월 첫주에 개봉되는 주요 영화를 담는다. 주목되는 6월 개봉 영화 <튜브> 감독: 백운학/ 출연: 김석훈, 배두나, 박상민/등급: 15세 이상 관람가/개봉일: 6월 5일
포기를 모르는 끈질긴 근성의 소유자 장도준 형사(김석훈)는 테러의 주범 강기택(박상민)을 추적하고 있다. 전직 국가 정보부의 최정예 비밀요원이던 강기택은 정부로부터 축출당한 후 요인을 암살하고 수배중이다. 신임 사장의 지하철 시찰이 있는 날, 강기택은 지하철을 탈취해 대형 테러를 감행하려 한다. 이를 눈치 챈 소매치기 인경(배두나)의 긴급한 연락을 받은 장형사는 문제의 지하철에 탑승을 시도한다. 아무도 예측 못한 사상 최대의 사건! 목숨 걸고 통제불능의 지하철을 세우려는 장형사. 그리고 끝까지 그의 옆을 지키려는 인경과 지하철 승객들. 과연 장형사는 지하철을 세우고 인질들을 구해낼 수 있을 것인가! 관전 포인트 할리웃 블록버스터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한국 최고의 블록버스터' <튜브>는 빠른 스피드와 강한 액션 그리고 감동적인 드라마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 작품이다. 컷 수 만큼이나 총 2,500컷(분당 22 컷)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는 영화는 지하철에서의 긴박한 액션을 필두로 아찔한 계단 활강씬, 광고 외벽을 돌파하며 벌어지는 역내 질주씬, 지하철을 따라잡는 짜릿한 오토바이 추적씬 등 짜릿한 장면장면을 연출한다. 여기에 김포 도심공항 터미널을 4일간 독점해 찍어낸 초대형 총격전, 자동차 회전 전복액션 등이 더해져, 영화는 매 순간마다 상상을 넘어서는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액션영화답지 않게 각 인물들의 캐릭터 -국가로부터 버림받고 지하철을 희생시키려는 테러리스트, 목숨을 걸고 테러를 저지하려는 집념의 형사, 사랑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내던지는 여자 - 가 살아있는 것 또한 장점이다. 임현식과 권오중의 맛깔 나는 감초 연기는 더 말할 나위 없고. GOOD: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초대형 블록버스터의 '맛'. 여기에 감동은 보너스다. BAD: 할리웃 블록버스터에 찌들어 있는 당신이라면. 박희경 기자(조이씨네닷컴) flyphk@joycine.com <니모를 찾아서> 감독: 앤드류 스탠튼/ 목소리출연: 알버트 브룩스, 앨런 드제너러스, 윌렘 데포 등급: 전체 관람가/ 개봉일: 6월 6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인 아들 '니모'를 지느러미 끝 하나 다칠세라 과잉보호하며 키우던 소심쟁이 아빠 광대어 '말린'에게 어느날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진다. 다름아닌 열대어 수집광인 치과의사가 금지옥엽 '니모'를 납치해 간 것. 평소 소심의 극치를 보이던 '말린'이지만 막상 아들을 잃고나자 그는 부성이 모성 못지 않음을 온몸으로 과시한다. 그리하여 '니모'를 구하기 위한 일념으로 상상도 못한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바다 여행에 과감히 뛰어든 '말린'의 모험은 시작되는데... <토이스토리1,2> <벅스 라이프> <몬스터 주식회사> 등 상상력이 다한 디즈니의 최근 흥행작 모두를 책임지다시피 하고 있는 픽사는 이번에도 그 경이적인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니모를 찾아서>는 납치된 아들 니모를 찾기 위해 벌이는 소심쟁이 광대어의 모험극. 바다를 배경으로, 물 고기를 주인공으로 삼았으니 픽사의 작업이 얼마나 고됐을지 벌써부터 짐작 가능하다. 그러나 3D 애니메이션의 시대를 개척하고 해마다 신기술을 선보이며 경천동지의 화면을 보여주었던 픽사는, 바닷속 풍광과 물의 질감, 물고기들의 동선을 완벽에 가깝게 재현하는 괴력을 발휘한다. 그 놀라운 화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7천원의 입장료는 결코 아깝지 않다. <성질 죽이기> 감독 : 피터 시걸/출연 : 잭 니콜슨, 아담 샌들러/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개봉일 : 6월 5일
지나치게 선량하다 못해 당하고만 사는 남자 데이브 버즈닉(아담 샌들러). 자신을 알아주지도 않는 악질 상사의 일까지 대리처리해 주는 그는 오늘도 상사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 비행기에 오른다. 비행기 안에서도 데이브의 삶은 편치않다. 자기 자리에 앉은 깡패같은 남자를 피해 앉은 자리 옆의 성질이 고약한 노인네가 그를 최악의 곤경에 처하게 만든다. 잘해 보려다 도리어 폭행죄로 법정에 서게 된 데이브는 '성격 완화(Anger Management) 프로그램'에 참여하라는 판결을 받는다. 그런데 이게 웬 악연? 그의 '화'를 가라앉힐 요량으로 등장한 정신과 전문의가 다름아닌 비행기 안의 그 성질 고약한 노인네 아닌가? 이름하여 버디 라이델(잭 니콜슨) 박사. 치료를 목적으로 설상가상, 박사와 한 집에서 살게 된 데이브는 라이델 박사가 있지도 않은 자신의 '화'를 억누르는 방법을 가르쳐주기는 커녕, 도리어 있지도 않은 화까지 끌어내도록 온갖 곤경에 밀어넣으려 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화가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르게 되는데.... <어바웃 슈미트>때도 그랬지만, 동어반복. 잭 니콜슨과 이색 코미디가 만났다. 무엇을 더 바라랴? 황당무계한 설정 속에서 유보된 악의 화신으로 종횡무진하는 늙은 악동 역에 니콜슨보다 더 좋은 배우는 없다. 말 그대로 그는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데이브를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곤경에 밀어 넣는다. 거기에서 유발되는 코미디는 가학적이다. 그러나 니콜슨 덕에 재기와 경쾌함을 살리는데 성공한다. 니콜슨이 아니었더라면 '선을 위한 가학'이라는 이 영화의 설정은 관객들 자신에게도 상당히 짜증나는 일이었을 것이다. 틱 낫한의 '다스리고 잠재우는 식'의 '화론(火論)'에 은근히 짜증나 있던 관객들은 니콜슨 식 요법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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