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보혁 / 한국외대 강사, 정치학 박사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를 둘러싸고 오가는 말들이 많다. 한나라당 대표는 대통령의 대미정책이 정상화되었다고 반긴 반면, 사회운동진영에서는 ‘자주외교’에 대한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혹평한다. 대통령 자신은 한반도의 전쟁 방지에 최선을 다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같은 결과를 놓고 이렇게 의견이 다양하다. 우리나라는 다원주의사회인 것이 확실하다. 그러면 대통령의 이번 방미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여러 판단기준이 있겠지만 노 대통령이 그동안 밝혀온 바를 놓고 평가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노 대통령이 대북정책과 한-미관계에 관해 선거 유세기간 동안 밝힌 내용은 현정부의 정책방향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당면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서는 한반도 비핵화, 평화적 해결, 한국의 주도적 역할 등 3원칙으로, 한-미관계와 관련해서는 대등한 동반자관계로 각각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두가지와 관련한 내용이 5월 14일 정상회담 직후 발표된 공동성명에 나타나있다. 공동성명에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용인하지 않을 것임을 재확인하였다. 이를 위해 양국 정상은 평화적인 수단을 통해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제거를 명시하였다. 이 둘은 형식논리상 공존할 수 있지만, 핵 선제공격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이 크게 반영되어 있다. 또 한국의 역할과 관련해서는 미국과의 공조, 한-미-일 3국간 협의, 국제협력 등으로 처리되었다. 전쟁 방지에 역점을 두었다는 노 대통령의 설명처럼 공동성명에는 한국의 주도적 역할은 찾아볼 수 없다. 노 대통령은 방미 기간동안 북한을 불신한다, 북한공격 가능성은 협상에 유익하다 등과 같은 발언으로 미국의 입장을 옹호하였다. 이와 달리, 정상회담을 전후로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 부시정부는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계속하는 대신 한국정부의 평화적 해결 방침에 대한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분명 미국의 군사행동을 막기 위해 역설적인 행보를 취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노력이 성과를 거두었는지에 대해서는 단정적으로 수긍하기 어렵다. 최근 미 상원은 부시정부가 제출한 지하공격용 소형 핵무기개발법안을 통과시켰고, 부시정부는 이를 예견한 듯 그와 관련된 예산을 내년도 국방예산에 포함시켜 의회에 제출한 상태다. 미국은 또 북한의 지질 정보를 수집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부시정부는 누차 강조해왔듯이 북핵문제를 군사적으로 해결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이 미국의 입장에 동조한다고 미국의 군사행동 옵션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오히려 방미 기간중 노 대통령의 발언은 북한을 자극해 긴장을 고조시킬 수도 있다. 성동격서(聲東擊西)라 했던가? 부시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북핵문제를 미국의 국가이익, 부시정부의 정권이익에 철저히 활용하였다. 북한 위협에 대한 한-미간 공감대 형성은 국방예산의 확대와 부시대통령의 외교적 지도력을 과시한 셈이다. 그리고 이는 한-미동맹의 현대화에서 더욱 분명히 나타나 있고, 미-일 정상회담에서 재확인될 공산이 크다. 한-미동맹관계 측면에서 한국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한강 이북 미군기지의 재배치를 신중히 추진한다는 점을 이끌어냈다. 반면 양국 군대의 현대화 및 공동대처 능력 향상과 한국의 역할 증대에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와 관련 20일 백악관은 ‘미사일방어 정책’이라는 제목의 발표문을 통해 포괄적인 미사일방어망 수립에 동맹국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계획임을 밝혔다. 이에 대해 이미 일본과 연구․개발을 공동추진하고 있는 미국은 한국에 참여를 종용할 가능성이 높다. 또 한국에 미제 무기구입 압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이 점에서 노 대통령은 자충수에 빠진 것이다.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한반도에서의 군사력 증강으로 추구한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최근 국내 이익집단이 힘으로 문제해결을 추구한다고 지적하면서 대통령직 수행의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다. 힘을 앞세운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같은 심정일 것이다. 정도를 밟는 것이 문제해결의 지름길이다.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 평화는 목적일 뿐만 아니라 수단이자 과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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