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胡國報勳)의 달 6월이다. 분열을 강조하는 바는 아니지만 전쟁을 잠시 쉰 것에 불과하고 아직도 이북5도청(남한에서 북한의 5도를 실제로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세워졌다. 이는 아직도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남한측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이라는 비현실적인 기구가 존재하며 ‘북한’의 존재를 ‘북괴’로 규정하고 있는 현실에서도 호국은 잊어버린 지 오래다. 게다가 일제강점기와 국가가 더 이상 회복할 수 없을 정도라고 판단되던 한국전쟁과 무의미했던 베트남 전쟁 등을 겪으면서 한국의 젊은이들은 희생되었다. 물론 나이 드신 분들도 많이 돌아가셨다. 세월이 흘러 누가 우리를 공격했는지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지고 전쟁의 개념조차도 이라크전쟁과 같이 게임의 한 장르로 이해될 정도로 잔인함이 무미건조해진 시대가 된 것이다.(뭐, 이점은 미국과 블리자드의 공이 크다.) 그리고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했던가? 시간이 지나면서 몇 년째 가족이 찾지 않는 묘소가 늘고 있다. 보훈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전국에 몇 개의 국립묘지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언뜻 떠오르는 국립묘지만 해도 국립 현충원과 대전 현충원, 4·19 국립묘지, 망월동 5·18 국립묘지 등이 있다. 이곳엔 일제강점기 독립투사에서 한국전쟁, 베트남전 등의 전쟁 등을 비롯하여4·19, 5·18 당시 순국하신 열사들과 국가 또는 사회에 공헌한 공로가 현저한 분들이 안장되었다. 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기념일이 되면 근처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슬픔에 찬 유가족들의 방문이 이어지곤 했다. 그러나 시간은 세월을 잊게도 하지만 묘소를 돌볼 사람조차 앗아갔다. 남편이나 부인이 죽은 경우, 홀로된 사람이 그를 봉양할 수 있고 다행히 자식이라도 있다면 후엔 그가 돌볼 수도 있겠지만, 자식을 낳기도 전에 한 쪽이 죽었거나 자식이 죽은 경우에는 더 이상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우리가 손을 놓았던 사이 그들은 하나둘 고인의 곁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남은 것은 국가를 위해 희생하였지만 돌봐줄 사람 없이 방치된 묘소(墓所)뿐이다. 국립묘지관리소에서 관리를 하면 되지 않겠냐는 질문을 할 수도 있겠지만, 서울 현충원의 경우 경내에는 2000년 현재 국가원수 2위, 임시정부요인 17위, 애국지사 207위, 국가유공자 61위, 장군 355위, 군인 5만 3006위, 경찰 809위, 기타 1위, 위패 10만 3000여 위, 무명용사 6000여위 등 총 16만 3000여 위가 안장되어 있다. 실제 국가 원수나 장군, 임시정부요인, 애국지사 등 이름 있는 분들은 개인적인 존경을 표시하기 위해 방문하는 참배객도 많고 관리 또한 여러 분의 아주머니들에 의해 꽤 철저하게 이루어지는 편이다. 그러나 대부분에 해당하는 일반묘소에는 가족이나 친지이외에는 개인 참배객이 적을 수밖에 없고 관리도 상대적으로 허술하게 이루어진다. 어느 날은 차를 동원해서 묘소에 제초제를 살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인간의 잔인함에 대해 새삼스럽게 자각하는 순간이었다. 한 분 한 분 모시는 것이 어려운 것은 이해가 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기계적인 대안이 선택되어선 곤란하다. 한가지 제안을 하자면, 묘소를 학습장으로 활용하는 것이 어떨까한다. 어차피 그곳이 공동화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더 이상 제초제만 뿌리고 조화(造花)나 몇 송이 꽂아 놓을 순 없다. 학생들이 정기적으로 그곳을 참배하게 한다면 돌아가신 분에게도 살아있는 사람에게도 이익이 될 수 있다. 가령 한 분의 묘소를 유치원, 초등, 중등, 고등의 네 사람이 모시게 된다면 참배객이 줄어든다고 해도 어느 정도 유지가 될 것이다. 유치원생은 자기 나이로 생각할 수 있는 만큼 모시게된 분을 대할 것이고 초중고등학생들 또한 자신의 나이에 맞게 한 분을 모시게 된다. 한 묘소에 4종류의 관심이 모아지는 것이다. 전체를 부담시킨다면 그것은 콘크리트에 불과하지만 한 묘소라면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다. 거기에 그 분에 관한 조사과제까지 주어진다면 학생들은 처음엔 당혹스러워하겠지만 자기가 모시는 묘소에 어떤 식으로든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어떤 묘소에선 그분이 왜 거기에 묻혀있는지에 대해 더 곰곰히 고민하는 경우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면 찾아온 참배객에게 자신의 남편을 또는 자식을 돌봐주어 고맙다며 인사를 받을 수도 있고, 자신이 죽더라도 꼭 좀 잘 좀 우리남편, 자식을 잘 돌봐달라고 부탁 받을지도 모른다. 상황이 여기까지 진행되는 게 너무 비극적인가? 적잖게 부담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감수성 많은 사춘기에 책임을 부여받고 죽음을 공유한다는 것만큼 자극제가 될 수 있는 것도 없다.(유치원생한테 자기 가족 부탁한다고는 안 하겠지.) 적어도 책임을 맡게 되면 부담과 어떤 결과가 기다릴 것임에는 분명하다. 비극적이진 않더라도 참배객에게 과일한쪽, 음료수 한 캔 정도는 얻어먹을 수 있다. 그 날일은 친구들에게 자랑할 꺼리 정돈되지 않을까? 지금의 한국사회는 어른한테나 애한테나 놀 것도 존경할 인물도 별로 없다. 뭔가 꺼리를 만들어주자. 누군가 존경할만한 사람을 만들어주자. 이제부터라도 사회를 보호해야한다. <이원석 객원기자 = 경희대 교육대학원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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