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규 / 본지 전문위원,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홍익대 겸임교수

푸른 잎새 사이에서 하늘을 향해 고개를 한껏 치켜세우고 있는 버찌도 이젠 하나 둘씩 빠알간 색조를 윤기 나는 탐스러운 검정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새 봄 새 학기와 더불어 연백색·연분홍 색조를 띠고 찬란한 봄을 만끽하던 벚꽃도 한 학기가 마감된 이즈음 뜨거운 햇살에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조그만 열매가 되어 태양을 향해 씨앗을 영글어 가고 있다. 한 학기를 마친 현 시점에서 지난 학기를 반추해 보는 것은 다음 학기의 알찬 준비를 위해서도 의미 있는 일이다. 학문을 탐구하고 전달하는 소임자로서 부여된 책임과 역할을 성실히 이행하였는지를 찬찬히 생각해 본다. 강의계획서는 요식적이지 않고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충실히 작성하였는지, 강의는 강의계획서대로 성실히 이행하였는지, 평소에 많은 전문서와 전문학술지를 읽고 강의 준비는 철저히 하였는지, 학회나 행사를 핑계로 결강은 빈번히 하지 않았는지, 특강이니 축제니 집회니 하며 정규 강의를 빼 먹고도 보충 강의를 생략한 것은 아닌지, 습관적으로 5분이나 10분씩 수업에 늦게 들어가지는 않았는지, 수업은 열성을 다해 가르쳤는지, 학생들의 질문에 면박을 주거나 근성으로 응하지 않고 성실하게 답변하였는지, 수업 시간을 다 채우지 않고 고의로 5분이나 10분씩 일찍 나오진 않았는지,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는 항상 꼼꼼하게 읽고 피드백(feedback)을 해주었는지,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가 표절된 것인지 아닌지를 살펴보거나 구별할 전문적인 지식은 갖추었는지, 학생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였는지, 일부 학생들을 편파적으로 대하여 마음의 상처를 준적은 없는지, 평가는 학자적인 양심으로 공정하게 하였는지를 자성하는 심정으로 돌이켜 본다. 학기를 거듭할수록 관행과 타성에 젖어 나태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본다.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대학 강단에 첫 발을 내딛던 때의 초심과 지금과는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매년 1만 여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국내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이 중 일부(약 20% 정도)만이 선택되어 '학문적 원더랜드'(the wonderland of academia)로 입성하게 된다. 이 과정이 공정한 게임을 통해서든 학연이나 인맥에 의한 연줄을 통해서든 일단 교수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일약 명예와 지위를 얻음은 물론 연구와 강의와 사회봉사라는 책무를 동시에 지게 됨을 말한다. 특히, 연구와 강의는 대학 교수로서 탐구와 가르침을 위한 필수적인 활동이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화이트헤드(Alfred N. Whitehead)의 말을 빌리자면, ‘자유와 훈련은 가르치고 배우는데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하였다. ‘자유’는 학문의 자유를 의미하고 ‘훈련’은 연구와 강의를 위한 과정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자유와 훈련’의 정도에 따라 자신에게 철저한 유능한 교수도 될 수 있고 자신에게 관대한 무능한 교수도 될 수 있으며, 학생들에게 신뢰 받는 교수도 될 수 있고 학생들에게 불신 받는 교수도 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유와 훈련’을 통하여 ‘학문의 즐거움‘을 자각하는 일이다. 매년 화려한 꽃으로 새 봄을 시작하는 벚나무처럼, 나의 친애하는 학문의 동료들께서도 학문에 대한 크나큰 포부와 기대를 안고 학문의 원더랜드에 첫발을 내딛던 그 날을 생각하며 매 학기마다 신선하고 화사한 ‘학문의 꽃’을 함께 피워 보길 소망한다. 그대들이 피우는 ‘학문의 꽃’은 ‘학문의 즐거움’이라는 또 다른 큰 선물을 가져다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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