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순 /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지난 10년 간의 시민운동 중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2000년의 낙천-낙선 운동으로 나타났다. 시민단체들이 공동으로 제작하는 주간신문인 '시민의 신문'이 전국의 시민운동가 200명을 대상으로 5월 말 실시한 여론 조사결과이다. 2000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전국 973개 단체가 총선시민연대를 구성해 벌인 낙천-낙선 운동은 퇴출대상으로 지목한 정치인 86명 중 59명을 공천에서 탈락시키거나 선거패배를 안겼으니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국회의원 선거가 다시 1년 남짓 앞으로 다가온 지금, 과연 낙천-낙선 운동이 성공한 운동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낙천-낙선운동에도 불구하고 정치판은 여전히 무능하고 혼탁하게 비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는 여전히 비생산적인 정쟁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정치부패를 근원적으로 차단할 정치개혁법안 제정은 무산되었고, 개혁정당을 창당하려는 시도 역시 많은 난관에 봉착해 있다. 시민단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또한 국민들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정치개혁이 부진한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부실한 언론의 정치보도이다. 물론 정치뉴스는 다른 뉴스보다 중요하게 다뤄진다. 그러나 신문의 정치면이나 방송의 정치뉴스는 정치가 아닌 정쟁으로 채워진다. 정치인간의 대립, 대결, 음모 등이 주된 뉴스 소재이다. 부패한 정치인들의 행태를 파헤치는 보도도 거의 없다. 민주주의 정치는 유권자와 정치인간의 원활한 정보와 의견의 교류를 전제로 한다.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에게 자신들의 의지를 전해야 하고,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의중을 정확히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 역할을 언론이 맡는다. 현대 정치에서 직접 후보자를 만나보고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전달하는 유권자들은 거의 없다. 정치인들도 유권자들을 일일이 만나 자신을 소개하고 정책을 설명할 수 없다. 의회제도나 정당제도가 아무리 민주적이라 하더라도 언론이 정치보도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실현되기 힘들다. 민주정치는 기본적으로 지역단위로 이루어진다. 대통령 한사람을 제외하고는 각 지역마다 뽑는 정치인이 다르고, 그래서 유권자들은 지역별로 각기 다른 정치정보가 필요하다. 언론도 전국언론 보다는 지역언론이 필요하다. 의회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선진국에서 지역언론이 전국언론보다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전국언론이 언로를 사실상 독차지하고 있다. 정치인은 지역대표를 뽑지만 언론은 전국대표이다. 언론이 아무리 정치면을 넓히고 방송시간을 늘린다 해도 수 천명에 달하는 국회의원, 시도지사, 시장군수, 기초의원에 관해 자세히 다룰 수는 없다. 결국 대통령이나 정당간부들의 근황 보도에 그칠 수밖에 없다. 중앙언론이 정치뉴스를 독점하는 구조는 정치인에게도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스타 정치인이 아닌 이상 언론을 통해서 자신의 능력이나 정책을 지역 유권자들에게 알리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미디어 선거시대라고 하지만 그것은 대통령선거나 서울시장 선거 정도에만 해당될 뿐이다. 결국 개인적 접촉에 의존해야 한다. 정치생명을 이어가기 위해서든 정치입문을 하기 위해서든 여전히 돈과 조직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결국 정치활동을 위해서는 막대한 정치자금이 필요하고, 이를 조달하기 위한 정치인들의 부정과 부패가 발생할 밖에 없는 구조이다. 아무리 유능한 자질을 갖추고, 국가를 위해 봉사할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도 돈과 조직이 없으면 결코 정치인이 될 수 없는 것이 한국의 정치의 현실인 것이다. 한국처럼 지역언론이 무기력한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이것은 일제 식민지 시절부터 제5공화국 군사정권에 이르기까지 이 땅을 장악해온 독재 권력이 남겨놓은 유물이다. 비대한 전국언론도 그러한 유산 중의 하나이다. 민주화 운동의 결과로 각 지역에서 대표자를 뽑는 의회민주주의의 틀을 갖추었지만, 언론은 여전히 독재정권시대의 거대 전국언론의 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민주정치가 제대로 기능할 수 없는 것이다. 정치개혁이 실현되려면 언론구조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 언론개혁 시민운동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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