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구 / 국제관계학 박사, 본지 전문위원

한때 나는 직장은 서울이고, 집은 대구라서 주말이나 공휴일마다 대구로 왕복한 적이 있다. 서울-대구 왕복하는 것은 비용도 적지 않게 들지만 무엇보다도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늘 불만스러웠다. 세계화, 지구촌 운운하는 시대에 이 좁은 나라에서 아직도 일일생활권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했다. 각설하고 나는 공공교통수단으로 주로 기차를 이용했는데, 그 이유는 그래도 기차가 가격도 적당하고 가장 빠르고 시간도 비교적 잘 지키는 교통수단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국 최고의 쾌속열차 ‘새마을호’를 탈때마다 늘 기분이 상하곤 했는데 그것은 기차연착때문이었다. 낮에 타거나 밤에 타거나 언제나 기차는 평균 5분 정도는 연착을 했다. 기차가 역에 도찰할 때면 어김없이 귀에 익은 안내방송이 들렸다. “승객여러분, 잠시 후 이 열차는 OOO역에 도착합니다. 선로보수공사로(또는 선행열차를 먼저 보내느라) 예정시간보다 OO분 늦게 도착해 대단히 죄송합니다. (...) 목적지까지 안녕히 가십시오.” 대단히 죄송한 걸 알면서도 늘 그럴듯한 변명만 늘어놓는 안내방송을 듣고 있으면 늘 불쾌했다. 소위 공공교통수단이 오가며 수많은 승객들의 귀한 시간을 사전 양해도 없이, 그리고 응분의 댓가도 없이, 은근히 빼앗아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특급열차는 왜 늘 연착하는 걸까. 도대체 선로보수공사는 365일 내내 하는 걸까. 아예 평균연착시간을 계산해 도착시간을 늦춰 잡아놓으면 안 되는 걸까. 내 기억속의 대한민국 열차는 새마을호건 무궁화호건 한번도 제시간에 도착했던 적이 없다. 시내버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서울시내의 버스 정류장에도 안내판이 붙어있다. 거기에는 첫차 몇시, 막차 몇시, 배차간격은 몇 분이라는 등의 정보가 적혀 있다. 하지만 예정된 배차 간격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세상물정 모르는 너무나 순진무구한 사람이거나 서울에 갓 올라온 시골 사람일 것이다. 배차시간을 믿고 기다리다가는 약속시간을 못 지켜 신용없는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이런 것들이 내가 대한민국 공공교통수단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다.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는 어쩌면 내가 젊은 시절 프랑스에서 수년 간을 살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프랑스에 살 때, 나는 수도 없이 TGV(떼제베 : 말그대로 번역하면 매우 빠른 속도의 기차라는 뜻이다)를 탔다. 경제적 이유 때문에 먼 도시에서 빠리까지 통학을 했기 때문이다. 빠리에서 110킬로미터 떨어진 오를레앙시에서 빠리까지 기차로 통학하기를 몇 년 동안이나 했다. 당시 프랑스 기차에 대한 인상은 결코 잊을 수 없다. 그 몇 년동안 늘 기차를 탔지만 프랑스의 기차는 도무지 연착하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늘 늦게 도착하는 기차는 어쩌면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트레이드 마크’ 같은 게 아닐까 싶다. 한국의 기차는 왜 예정시간보다 단 1초라도 일찍 도착하는 여유를 갖지 못하는 걸까, 적어도 두 번에 한번 꼴이라도 도착시간을 지켜줘야 하는 건 아닐까. 가만히 주위를 돌아보면, 한국인의 삶의 태도는 늘 늦게 도착하는 한국의 기차와 아주 닮았다. 남보다 늦거나 아니면 남들만 따라다니는 삶, 이것이 보통 한국사람들의 삶이다. 한국인들은 ‘친구따라 강남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 ‘친구보다 앞서 강북가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우리사회에서는 이미 틀에 박힌 길을 좇아가는 것이 모범생이다. 우수한 학생들은 법대나 의대를 가야 하고, 입시를 위해서는 영어나 수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해야 하며, 돈을 벌려면 부동산이나 재테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공부를 잘하면 무조건 서울대학교로 가야 하고, 유학을 가려면 미국으로 떠나야 하고, 박사 학위를 받으면 누구나 교수가 되려고 한다. 틀에 박힌 유형의 삶의 궤적을 묵묵히 좇아가는 삶이야로 말로 이땅에서 출세할 수 있는 보증된 지름길이다. 선진국은 왜 늘 앞서가고, 우리나라는 그 꽁무니만 따라다니는 걸까. 유구한 반만년 역사를 가진 문화민족인데 세계를 리드해 가는 문화가 도대체 뭐가 있는가라는 생각에 이르자 우리나라의 앞날이 새삼 걱정되기 시작한다. 불원간에, 대한민국 기차나 버스는 더 이상 뒤늦지 않고,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에 뒤쳐지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