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일 / 본지 전문위원, 한국해양대 교수

새 정부 들어 대학정책의 '화두'는 단연 지방대육성이다. 인수위원회 시절 노 당선자는 전국순회토론회에서 이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특히, "대학에 대한 지원은 지방대에 국한될 것"이란 뉘앙스의 발언을 하면서까지 강력한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정부 출범 이후 이 과제를 총괄ㆍ주도하고 있는 곳은 국가균형발전위원회다. 그러나 지방대육성이 처음부터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제기된 것은 아니다. '자립형 지방화'를 목표로 한 '지역혁신체계'의 한 축으로서의 역할보다는 고등교육개혁 차원에서 제기된 과제였다는 뜻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책의 목표나 접근방법상의 미묘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극단적으로 서열화되어 있는 우리 대학의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과 해결에의 의지가 그 출발이었다. 기대와는 달리 대학서열이 고착ㆍ심화되어온 게 저간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교육적인 의미에서의 경쟁이 원천봉쇄 될 수밖에 없다. 학벌사회적 특성이 온존ㆍ강화되어 사회 전체의 활력도 떨어지고 만다. 결국 고등교육의 질 제고와 실력에 의해 평가받는 사회 건설은 요원한 일일뿐이다. 그러니 지방에 서울대에 버금가는 20여 개의 대학을 집중 육성할 필요가 있다. 그럴 경우 대학서열 문제는 자연 해소될 것이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학벌타파의 개혁과제와 관련해서도 이것이 정도이고 상생의 해법이다. '서울대 폐지론'에 대한 일각의 거부정서를 고려할 때, 새 정부가 굳이 네거티브 게임을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근자의 논의를 보면, 지방대육성의 본래 취지가 퇴색된 채 무리한 주장이 난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지방대학이 어려우니 무조건 지원해달라"는 식의 접근이다. 최근 출범한 한국지방대학총ㆍ학장협의회의 주장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지방대육성교부금법'을 제정하여 확보된 재원(내국세의 3% 수준)을 지방대학 학생수에 비례하여 지원해달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설득력과 실현가능성을 결한 주장이다. 우리 대학은 일찍이 '공급과잉'이란 구조적인 문제에 봉착했다. 지난 10여 년간의 대학 남설(4년제 56개교, 2년제 42개교)의 결과다. 게다가 대책 없는 정원 늘리기로 교육여건은 가히 세계 최악의 수준이다. 대학이 이윤동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마당에 구조조정을 전제로 하지 않은 일률적인 재정지원 요구는 그저 '살고 보자'는 식의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다른 하나는 지방대육성을 경제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하려는 경향이다. 인수위원회에서 그 '싹'을 보이더니 최근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는 그런 경향이 고착되어가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지역혁신체계에서 지방대학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하등 문제될 게 없다. 그렇지만 기존산업을 개선하고 벤처기업 및 신산업 창출과의 연계성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이 "대학다움"을 잃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잠시 잠깐 임시방편적 요구에 부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국가균형발전의 동력으로서 지방대학의 역할은 설자리를 잃게 된다. 지방의 문제가 어째서 지역경제만의 문제인가. 학벌을 근간으로 한 토호세력이 활개치는 지방정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가. 언론, 문화, 교육 등 어느 하나도 독(과)점적 권력구조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게 지방의 현실이다. 사려 깊고 균형 잡힌 접근이 절실한 때다. 지방대육성 정책의 딜레마를 극복하고 성공을 보장받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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