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진 / 본지전문위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인도에는 세 계절이 있다고 한다--더운 계절, 매우 더운 계절과 가장 더운 계절이다. 가장 더운 계절인 8월 하순에 인도를 방문하였을 때, 인도의 정가(政街)는 소 도축금지법안에 관한 논쟁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힌두'지 등 전국 주요 일간지들도 이를 연일 1면 톱으로 다루었다. 바지파이 내각이 라즈니스 싱 농무성장관을 통하여 소 도축금지법을 발의하자, 의회에서 야당이 반발하고, 나아가 집권당 연합에 속한 여러 당파들까지 야당에 가세하여 신중한 처리를 촉구하고 나섰다. 표면적으로는 여론 수렴을 무시한 졸속처리에 대한 반발이지만, 국가가 소 도축금지와 같은 도덕적인 일에 개입할 수 있는가는 근본적인 회의론이 자리잡고 있다. 인도는 28개 주가 느슨히 결합되어 있는 연방국가로서, 소수민족과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헌법정신이다. 소도축에 관한 국가의 개입은 이에 어긋날 수 있다. 인도라면 흔히 떠올리듯이 시골뿐만 아니라, 대도시의 길거리에서도 소들이 어슬렁 거리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인도국민의 80% 이상이 힌두교이고, 힌두교에서는 소가 “어머니”로 숭상받고 있으므로, 소에게 적선하는 것은 좋은 업(Karma)을 쌓는 것이다. 거꾸로, 소를 박해하거나 더욱이 죽이는 것은 끔찍한 일로 치부되어 왔다. 그렇지만, 상황은 변하였다. 10억의 인구 중 3분의 2가 농업에 종사하지만, 영농 기계화에 따라 소의 힘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석탄, 석유의 보급에 따라, 소똥의 연료로서의 가치도 미미하게 되었다. 우유는 다양한 유제품의 자원이므로, 암소들은 여전히 농가의 중요한 자산이지만, 숫소들은 주인없이 초원을 배회한다. 아열대 기후는 겨울에도 이들을 살아남게 하지만, 초원은 줄어들고 있다. 소들은 시골의 장터를 배회하며, 야채상이나 과일상들의 적선을 받는다. 도시 주변에서도 장터의 야채 쓰레기를 뒤지는 소들을 용인할 뿐만 아니라, 여분의 야채나 과일을 남기기도 한다. 그래도, 소들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는 것이 분명하다. 길거리를 배회하는 소들은 대부분 비쩍 말라있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소에 대한 전통적 존중이 느슨해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쇠고기를 먹지는 않지만, 소가죽은 중요한 자원으로 활용된다는 것도 박해의 이유가 된다. 모자란 외화를 사용하여 관광객을 위한 쇠고기 수입대금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이러한 존중의 쇠퇴에 맞서 법적 강제를 통하여 소에 대한 전통적 존중을 부활시키려는 것이 인도 정부가 소도축금지법을 추진하는 취지일 것이다. 그렇지만, 도덕적 판단에 국가가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을까? 네루대학의 프라바카르 교수는 이를 포퓰리즘이라고 혹평한다. 명분론 또는 다수의 횡포에 정부가 편승한다는 것이다. 그는 설혹 법안이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인도는 연방정부라고는 하지만, 느슨한 형태의 국가연합이라고 볼 수 있다. 인종, 지역, 계급에 따라,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살고 있다. 다양성은 언어에 반영된다. 지폐의 액면이 15개의 공식언어로 병기되고 있지만, 실제로 사용되는 언어는 1,4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소도축금지법이 실제로 어떻게 이행될 수 있겠는가? 음지로 숨어들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국가의 획일주의가 인도 사회의 안정을 해칠 것을 우려하였다. 다양성은 질시와 갈등을 완화시키고, 사회적 조화와 안정을 가져온다. '오, 나의 여신'에서 여신은 세상은 '다양하기 때문에 공평하고 아름답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한 봉우리를 오른다면, 위 아래가 구분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수많은 봉우리들이 있고, 사람들은 자신의 봉우리를 오르며, 각자 자신만의 모습으로 빛난다. 우리는 어떤 획일주의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가? 우리는 어떤 봉우리들을 오르고 있는가? 인도문화의 다양성이 보존되기를 바라며, 모든 것이 정치화되는 듯한 한국의 현실에 비추어 새삼 되뇌어 보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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