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학 서열은 상위권에서는 특권 신분증이며 하위권에서는 연명을 위한 식량번호표나 마찬가지다. 꼴찌에게는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는 번호표. 그래서 꼴찌 번호표를 받아쥔 대학은 이래저래 허덕인다. 지금의 대학평가가 이런 번호표를 나눠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같은 둥지 안에서도 어미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먼저 받아 먹고 힘이 난 새끼는 다음 먹이도 가로채고 결국 약한 놈은 굶어죽으며 어미도 이를 방관하는 일이 벌어진다. 학자들은 이것을 우수한 유전자만 번식시키기 위한 배려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래서 약한 놈은 죽도록 내버려 둔다는 것이다. 지금의 대학 지원 정책도 이런 것일까? 교육부는 나름대로의 평가에 의해 대학에 지원금을 배정한다. 서울대는 작년에 1천4백억을 독식했다. 그 혜택을 못 받는 작은 대학은 잘 해 나가려고 해도 학생 다 빼앗기고 점점 허기져서 빈 둥지가 된다. 대학평가제도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대학의 자발적인 발전을 유도하기 위한 방법도 된다. 그렇지만 그것이 대학 서열 의식을 고착화시키고, 국고 지원금을 소위 일류대가 거의 독식한 채, 지방의 작은 대학은 빈사 상태로 몰아가는 것에 불과하다면 대학 평가의 본래의 의미가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 이것도 우수 유전자만 번식시키기 위한 교육정책일까? 어미가 약한 새끼를 굶어죽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어차피 다 살리기는 어렵기 때문일지 모르지만 지방의 많은 대학들의 위기 역시 그런 논리로 정당화될 수 없다. 그렇게 볼 때 최근 모 언론매체가 실시한 대학서열 평가도 문제가 있다. 평가 기준이 돈만 있으면 다 맞출 수 있는 기준이다. 그렇다면 돈 많은 재벌이 밀어주기만 하면 그 대학이 최고 일류대가 될 것이라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시설이나 교수 1인당 학생수 등 경제적 여건으로 해결 가능한 조건들이 아무리 필요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일류대라고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가장 중요한 핵심 조건은 그런 외형적인 것들이 아니다. 그런 기준은 원초적으로 대학의 본질에 대한 무지가 낳는 기준일 뿐이다. 물론 같은 대학 내에서도 우수한 교수나 학과의 차이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우리나라 상위권 대학들이 세계 대학 서열에서 얼마나 뒤지고 있는지를 안다면 이런 기준으로 줄서기를 시키고 번호표를 나눠주는 것은 허구이다. 이런 식의 대학간 경쟁과 그 서열은 도토리 키재기 밖에 안된다. 지금 우리가 꼭 대학 평가를 하고 서열을 알아야 한다면 세계 대학 속에서의 우리 대학이 어디쯤에 와 있는냐다. 그 결과가 아무리 참담하고 창피하더라도 이것을 함으로써 우리 대학의 참모습을 알고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지 그 방향을 알고, 이런 잘못된 줄서기와 번호표 주기 행사로 다른 작은 대학들에 미치는 것이 얼마나 우매한 제 식구 죽이기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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