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제 / 본지 전문위원, 대학정의실천교수연합 공동대표

모처럼, 너무 오랜만에 파란 가을하늘을 보았다. 봄부터 여름 거의 내내 우중충한 잿빛 하늘만,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빗줄기만 보다가 드디어 높고 파란 가을하늘을 보았다. 온통 무채색 잿빛의 지난 계절, 이제 때가 되니 그 스스로 파란 유채색의 계절이 되었다. 어느 해직교수, 그야말로 죽을 고비 거쳐 필생의 꿈이던 박사되고 교수되었는데, 이제는 고생끝 행복시작인줄 알았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았다. 총장의 독단과 전횡, 재단의 부정비리에 겁없이 대어들다 부당한 징계파면으로 교수직이 박탈되었다. 교수가 파면되면 5년동안 어떠한 곳에도 취직할 수 없다는 또다른 징벌, 냉혹한 법규로 아무일도 못하고 있다가 5년이 지나 타대학에 취직할려니 과거의 징계전력이 따라 붙어 최종 후보자에서 떨어지기를 여러번, 그는 여전히, 10년 가까이 박사낭인으로 떠돌고 있고 그의 가정은 허물어져가고 있다. 또 사람의 대학원생, 박사과정 입학 무려 10년만에 박사논문 쓰려하니 지도교수 양반, 이런저런 이유로 구박만 주고 도통 논문을 시작하라는 허락이 떨어지지 않는다. 논문계획서를 써가도 무슨 이유가 그렇게 많는지 갈 때마다 툇자이다. 이제 지도교수가 무섭고 저주스럽다. 그 대학의 10여명 박사과정 대학원생들, 이제는 아예 지도교수를 피하고 그를 경멸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학위를 받은 어느 교수, 지도 교수를 두 번 다시 찾는 일이 없고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지시한대로 논문계획서를 써가도 또 흔들어 버린다. 몇몇은 약발이 떨어진 것을 알고 더럽고 치사하여 박사과정을 그만두었고, 몇몇은 이런짓을 계속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중이며, 또 한친구는 술 많이 먹고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지도교수집에 수류탄을 터뜨릴 생각을 하고 있다. 이들은 실날같은 희망을 갖고 그날까지 버티고 있는데 한달 기껏 몇십만원 강사수입으로 공부를 계속하기도, 가정을 지탱하기도 벅차다. 그들은 자신에게, 가족에게, 이 세상사람들에게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움추려 있다. 그래서 도피수단으로 가출을 생각하기도, 그리고 최후의 선택을 여러번 생각하고 있다. 그들이 지옥의 과정을 거쳐서 논문이 통과되어 박사가 되어도 교수되는 것은 또다른 시작, 첩첩 산중이다. 국내대학에 교수채용의 룰은 있어도 이런저런 이유를 대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정답없는 시험에 합격하기가 그 또한 시련이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도 나아갈 수도 없다. 희망이 없음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라 했든가? 이 땅의 대학원생, 시간강사, 거창하게 말하면 ‘학문의 후속세대’의 단면이다. 또 어느 시간강사, 강사생활 10년만에 모교에서 교수자리가 났는데, 수년간 지도교수연구실에서 온갖 잡일을 다 해가며 충성을 바쳤는데, 도통 모를 이유로 지도교수에게 찍힌 그가 지원하자 학과에서는 대학본부에서 정한 채용심사기준을 바꾸어서 (연구실적에서 그가 자신하는 저서를 빼버려서) 그에게는 치명적인 부당조건 때문에, 또 한사람의 실세 전공교수와 과거 직장, 대학원, 더구나 박사받은 미국유학대학원까지 똑같은 지원자에게만 지극히 유리한 조건 때문에 결국 그는 낙방하였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유, 미국박사가 아니란다. 그는 분하고 억울해서 그 지도교수와 절연를 선언하고 변호사비용만 마련되면 비겁한 인사의 비리를 밝히고 지도교수를 법정에 세워 퇴출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 한국은 무채색 잿빛의 추락의 시대다. 시간강사가 추락하고, 대기업회장이 추락하고, 살려고 발버둥 치던 젊은 주부가 그것도 어린아이 몇이나 껴안고 추락하고, 직장의 젊은이가 카드빚 때문에 추락하고, 취직못한 젊은 대학생이 추락하고, 중․고등학생이 성적 때문에, 어느 초등학생까지 유서를 써놓고 추락하고 있다. 이 땅에서 1시간에 1.5명, 한달에 46명이 추락하고 있다고 한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하지만 날개는 어느곳에도 없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하지 않았는가. 지난날 어느 교수의 석사 3년, 박사 6년의 힘든 대학원 시절, 벼랑끝에 섰던 그도 박사도, 교수도, 가정의 행복도 포기하고 부산 광안리 바다가 보이는 여인숙에서 약병 놓고 사흘을 굶으며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명분이 부족하고, 죽기를 각오로 최선을 다하지 않았고, 아이들, 부모두고 도피함에 천벌받을 것같아 결행 마지막날, 벼랑에서 뒤 돌아 섰다. 새벽어둠속에 가출하는 자식 본능적으로 따라나와 “아범아! 출장 가나, 애미 걱정 안하게 빨리 갔다온나, 알았제?”하시던 그의 엄마, 그 엄마 말을 거스를 수 없어 그는 출장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 왔다. 이제는 두 번 다시 말려줄 엄마도 이 세상에 안 계신다. 필자는 앞으로 몇 년일지 모르지만 교수해서 돈 많이 벌면(교수해서 돈 많이 벌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십중팔구 돈 때문에, 아니면 죽음보다 무서운 절망때문에 벼랑에서 추락직전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는데 앞장서고 싶다. 그가 진짜로 다급하여 전화하면 돈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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