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무심코 쓰는 일상 언어 중에는 역사적인 사건이나 인물, 혹은 민간 신앙이나 생활 풍속 등에서 유래된 흔적들이 수없이 발견된다. 비록 그것이 어느 면에서는 역사에 기록된 사실이 아닌 단순한 민간 구전이기 때문에 신빙성이 다소 부족하거나, 와전된 부분도 더러 있겠지만, 그러나 그 내력을 살펴보면 나름의 타당한 근거를 발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더구나 그 중에는 전파과정에서 어느 정도 사실이 인정되어 사전에까지 그 내력이 수록된 경우도 많이 발견된 것으로 보면 이 민간전승의 어원설(語源說)은 전적으로 부인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에 필자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우리 말 가운데 흥미 있는 사연이 담겨진 것들을 골라 그 내력을 살펴보고자 한다. 따라서 이 작업은 전문적인 국어학자의 시각과는 다른 접근이기 때문에 다소의 이견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민간전승에 바탕을 둔 고찰이기 때문에 다소의 오해는 이해되리라 믿는다. 흥청거리다. 우리가 돈이나 물건들이 흔해서 아끼지 않고 함부로 쓸 경우를 가리켜 흥청거린다’라고 하는데 그 본래의 뜻은 ‘흥에 겨워서 마음껏 거드럭거리다.’였다. 이 말이 생긴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 조선 왕조의 제10대 임금인 연산군은 성종의 얼굴에 상채기를 낸 사건 때문에 사약까지 받은 윤비(尹妃)의 소생으로 희대의 폭군이자 색마였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정이 메말랐던 그는 성종이 승하하고 왕위에 오르자, 차츰 정사에 전념하기보다 오히려 주색잡기(酒色雜技)로 그 사무친 모정(母情)에의 한을 달래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는 채홍사(採紅使), 채청사(採靑使)라는 관리(官吏)를 두어 전국적으로 처녀이건 유부녀이건, 또는 기생, 종, 의녀(醫女), 무당, 여승(女僧), 과부나 남의 첩이나를 불문하고 인물만 반반하면 모조리 잡아다가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뽑아온 미녀를 연산군은 자기의 독특한 분류법으로 분류했는데 운평(運平), 계평(繼平), 채홍(採紅), 속홍(續紅), 부화(赴和), 치여(治黎)의 칭호를 두는 한 편 따로 뽑은 여자를 흥청락(興淸樂)이라 했다. 여기에는 다시 잡아온 미처녀(美處女) 중에서 임금이 동침한 여자는 천과흥청(天科興淸), 아직 손대지 않은 처녀는 지과흥청(地科興淸), 성행위를 했는데도 오르가즘(사정)에 도달 못한 여자는 반과흥청(半科興淸)이라는 삼과(三科)를 두었다. 그런데 그는 성감(性感)에 대하여 천부적으로 감식력이 뛰어나서 임금에게 불려간 여인이 한 번 임금과 동침하여 성 만족만 시켜주면 그 날로 천과흥청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는데, 이렇게만 되면 그 여인의 가족이나 일가라고 자칭하는 불량배들은 천과흥청이라 쓴 큼직한 문패를 눈독 들여둔 민가의 대문에 못질만 하면 그 즉시로 그 집은 흥청집이 되고 집주인은 쫓겨나야만 했다. 가난했던 집안에 돈과 재물이 갑자기 많이 들어왔으니 우선 그 동안 주리었던 배를 채우고 가재도구 등을 새로 마련하기 위하여 돈을 많이 쓸 수밖에 없었다. 이같은 사실이 뒤에 ‘흥청거리다.’라는 어휘로 굳어버린 것이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다시 ‘돈을 함부로 써서 위태롭다.’는 뜻의 ‘흥청망청’이라는 말도 새로이 파생되었다. 기둥서방 기생이나 창기(娼妓)를 데리고 살며 영업을 시키는 사내를 예로부터 ‘기둥서방’이라 했는데 이 말은 연산군과 관련이 있는 사연을 지니고 있다. 연산군(燕山君)은 기생을 호송해 올리는 관리인 호화첨향사(護花添香使)라는 벼슬까지 두면서 각도의 미색(美色)을 뽑아들였는데, 이렇게 선발된 기생의 뒤를 보아주고 또는 외방으로 다니면서 미색을 데려다가 기르는 사내를 ‘기둥서방’이라고 했다. 이처럼 ‘기둥서방’이라는 제도는 연산군에 의해 처음으로 확립된 셈이다. 이 기생들은 대궐에 진연(進宴)하는 한편 기둥서방인 사처(私處) 오입쟁이들의 보호, 감독아래 외방의 손님을 맞아들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여기에도 지체와 계급이 엄연히 존재했다. 당시 기생방 세도는 대전별감(大殿別監)이 으뜸이어서 약방기생은 모두 이들의 차지였다. 상방기생은 형조(刑曹)의 서리나 포도부장(捕盜部長)에게 차례가 갔고, 금부나장(禁府羅長)이나 정원사령(政院使令)들이 그 중 낮은 혜민서(惠民署) 기생을 데리고 살았다. 그러나 기생방에 출입하는 별감들이란 기생을 데리고 살지 못하는 속칭 ‘홀아비 별감’들이 대부분이었다. 기생 서방인 별감들은 기생을 데리고 사는 체면에 다른 기생방 출입을 삼갔고 또 기생들은 모두가 이들 기둥서방의 전속이어서 ‘기적(妓籍)에서 이름을 뽑고 살림을 차리’자면 반드시 기둥서방의 승낙이 필요했다. 이리하여 기생 이름에는 반드시 기둥서방 이름이 따라다니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니까 기생들은 “임석두(任石頭)의 부용(芙蓉)”이란 식으로 이름이 통 했던 것이다. 요즈음에 와서는 이 기둥서방을 달리 창부(娼夫) 또는 포주(抱主)라고 부르기도 한다. <충남대 명예교수/ 본지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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