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상 연세대 교육학과 교수 / 본지 논설 위원

가을 학기 대학들이 다시 시간강사들로 붐비고 있다. 강사들의 열악한 처지를 바꿔보려고 강사노조를 만들려는 기운도 있는가 보다. 공룡과 같은 대학과 맞서 보겠다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처음부터 가당치 않은 이야기들 같다. 마치 스파르타쿠스의 한낮 꿈처럼 들릴 뿐이다. 스파르타쿠스는 로마의 노예였다. 그는 상전을 위한 노리개인 노예였을 뿐이었다. 그가 주동이 되어 로마를 향해 반란을 일으켰다. 시답지 않은 몇몇 로마병정과의 작은 전투에서 번번히 이기기도 했다. 그러나 스파르타쿠스는 마침내 거대한 로마군단에게는 무릎을 꿇었다. 용기가 부족해서 패배당한 것이 아니었다. 그를 지원하는 사람들은 노예들이었기에 질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그저 파리목숨들이었다. 원초적 패배였을 뿐이다. 오늘날의 대학강사들은 마치 대학의 노예들처럼 신음하고 있다. 하라면 하고, 나가라면 나가야 한다. 선택할 자유는 없다. 강요받을 의무만 있다. 파리 목숨처럼 구차하다 할 처지도 아니다. 연명해야 될 목숨이라 그저 상전들의 눈초리나 살필 뿐이다. 한 지방대학 강사의 울먹임이 메아리친다. 그는 이번에도 한 과목을 가르치게 되었다. 방학 전부터 통고받았던 일이다. 강의 준비를 열심히 했다. 자료비도 만만치 않았다. 그렇게, 그렇게 개강하기 바로 2일 전이 되었다. 대학직원이 전화를 했다. 강의를 할 수 없다고 했다. 곁들인 이야기는 없었다. 강의를 할 수 없게 되었으니 그리 알아달라고 했다. 짧고 분명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코흘리개 아이에게 미안해서였다. 그가 이번에 ‘잘린’ 사연을 직원의 이야기로 말하라면 정말로 ‘별 것’이었다. 대학최고 책임자가 학장에게 개강 2일전에 전화를 했다. 이번에는 대학평가를 잘 받아야 한다고 했다. 대학평가 관련 행정 어느 인사에게 강의를 마련해주라고 했다. 학장은 고민했다. 시기가 너무 늦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수강신청도 끝났고, 다음날이 개강이기 때문이었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누구 하나를 잘라 내고 그 강의를 청탁인사에게 주어야겠다는 묘수였다. 그렇지만, 전임교수를, 설사 무능하더라도 자를 수는 없었다. 후환이 따를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무력하기만 한 강사 하나를 골랐다. 제단위에 올리기 위해 학장은 백정처럼 일을 끝냈다. 그리고 죄 없다는 듯, 피 ane은 두손을 씻었다. 대학 시간강사들이 생활고를 비관하고 자살을 생각한다고도 한다.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강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소리도 들렸었다. 국공립대학들이 나서 그들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게 하겠다고 했다. 강사 처우개선이 정부의 의지라고도 했었다. 그런 저런 심심치 않은 소식들로 시간강사들은 마음까지 설레곤 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 모든 것이 이내 감감해진다. 우리네 대학의 체질 탓이다. 소리 없으면 그것마저도 잠잠해진다. 우리 대학들의 문제풀이 방식 탓이다. 대학의 시간강사들은 우리나라 대학교육에서 감당하는 일이 너무 많다. 가르치는 교과의 내용도 그렇고, 시간 수도 그렇다. 그들이 없으면 대학교육 그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 그 만큼 우리 대학교육은 강사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그들 역시 대학교원들이다. 고급인력개발의 시각에서라도 그들의 존재를 귀히 여겨야 한다. 대학이나 정부가 그들의 처우개선에 나서지 못하겠다면 이제는 입법부라도 나서야 한다. 대학강사들의 신변과 생계보장을 위한 위원 입법이라도 만들어져야한다. 그들의 전문능력에 합당한 최저임금제와 그들의 신분을 보장해주는 신분보장제를 제대로 입법화해야한다. 그래야 시간강사들도 마음놓고 숨 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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