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는 온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그런데 여기에는 귀향도 아니고 관광 여행도 아닌 특수한 해외여행자들이 있다. 멀리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등 지구 저편으로 떠나 버린 어린 자식들과 아내를 만나러 가는 외기러기들이다. 그들은 가자 마자 그립던 가족을 몇번 끌어 안아 보고 그냥 되돌아 와야 할 것이다. 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다시 직장에 나가야 하니까. 이런 외기러기들 중에는 교수들도 많아졌다. 대학 봉급으로는 무리이기는 하지만 한국의 교육환경이 너무도 열학하기 때문에 희생을 무릅쓰는 것이다. 왜 이 지경에까지 왔을까? 독일에서는 국민의 약 30%가 대학에 진학한다. 다른 주변 선진국들도 큰 차이는 없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거의 100%가 대학 희망이다. 다만 실제로 100%가 안 되는 이유는 그 동안의 정원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학과 실력이나 경제적 사정으로 인한 탈락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밖에 대학이 불필요해서 안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세상에 나가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대졸 간판이 필요한 사회니까. 그렇지만 더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학력이 아니라 학벌이다. 이 학벌은 두가지 조건에 의해서 서열화 된다. 그중 하나가 수능고사 점수이고 또 하나는 우리 사회에서의 지배 권력이다. 그리고 이 두가지는 서로 거의 일치한다. 장차관과 검찰과 법원과 대기업 상층부와 국회의원등 우리 사회의 돈 많고 권력 있는 지배 계층은 서울대가 으뜸이고 다음은 고대, 연대순이다. 수능 서열은 서울대 다음이 확실히 연세대 고대 순이고 이 서열적 학벌의식은 요지부동이다. 수능 점수 서열 발표를 교육부가 거부하는 것도 조금이나마 이 서열적 학벌주의를 깨 보려는 희망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을 망치고 있는 원흉은 바로 이 서열적 학벌의식 때문이다. 왜냐면 자식이 태어난 후 유치원과 초,중,고의 모든 교육 프로그램은 일류대 학벌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돌격작전 형태로 짜여져 있고 학부모들은 여기에 맞춰 나가야 하니까. 그리고 그렇게 암기식 교육, 사지선다형 바보 교육의 입시지옥을 거친 후 일류대냐 기타대냐가 그들의 일생의 신분을 결정해 버린다. 그러므로 능력만 있다면 떠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바다의 연어가 민물을 찾아가 어린 새끼들을 더 좋은 환경에서 무사히 자라게 한 후 상어 떼들이 우굴거리는 넓은 바다로 돌아 오게 하듯이 더 훌륭한 교육환경에서 제대로 공부하고 아비가 기다리는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은 권장해도 좋을 일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런 일이 이어질 것인가? 그들은 다 자란 후 다시 고향 바다로 돌아 올 것인가? 모든 열쇠는 대학의 줄서기에 있고 그들이 만든 배타적 학벌주의에 있다. 잘 사는 계층만 가기 쉬운 일류대가 아니라 누구나 공정 경쟁이 보장 되고, 바른 실력이 평가 되고, 일류대가 진정한 일류대로 탈바꿈 한다면 굳이 어린 아이들까지 바다 건너로 떠나는 행렬이 오래도록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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