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우리는 부모님을 선택할 수 없다. 왕자로 태어나든 예수처럼 가난하게 말구유에서 태어나든 그것은 자기의 선택이 아니다. 고향도 마찬가지다. 이데올로기와 상관없이 억압받고 굶주리면서도 지도자를 찬양하는 나라에 태어나든지 부패했지만 희망이 있는 나라에 태어나든지 그것은 자기 선택이 아니다. 그렇지만 어느 나라 어느 부모 밑에서 자랐더라도 고교를 마치고 어른이 되면 자기 인생은 자기 스스로의 선택이며 그런 선택 행위는 일생동안 이어진다. 아침 기상 시간을 선택하고, 배우자를 선택하고, 점심 시간에 메뉴를 선택하고, 서점에 가서 읽을 책을 선택하고 주식을 살까 말까 선택하는등 인생은 선택으로 눈 뜨고 해가 진다. 그 중에서 고교 후 대학 문제만큼 일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선택은 없다. 이미 수시 모집으로 선택이 끝난 학생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수능 고사에 이어서 대학을 선택해야 할 시점에 서있다. 대학의 선택은 물론 어느 대학이냐와 무슨 계열 또는 무슨 학과라는 전공 선택의 두가지다. 그런데 많은 학생들이 이 두 가지의 선택 기준을 내신과 수능 성적에 두고 있다. 그 중에서도 어느 대학이냐가 최우선이고 그 다음이 그 성적으로 대학의 무슨 학과에 갈 수 있느냐를 따지고 있다. 이것은 이 나라의 서열적 학벌주의가 갖는 위력에 대한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우리 사회가 그런 모순을 안고 있더라도 적성을 무시한 선택만큼 일생에 큰 손실도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몸에 안 맞는 옷이나 신발 정도의 불편이 아니다. 사람은 분명히 저마다 다른 재능을 갖고 태어난다. 그러므로 인생은 적성 선택의 성공 여하에 따라서 성패가 나누인다. 세계적인 과학자나 예술가나 기업인도 그가 만일 전공이 뒤바뀌어 다른 길로 빠졌더라면 그의 운명은 또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적성이 맞는다면 일단 신바람이 나고 경쟁력이 붙는다. 그만큼 어떤 일에 있어서 적성은 중요하다. 그런데도 대학의 서열만 우선 선택 순위가 되고 전공 선택에도 출세주의가 지나치게 따라붙는 것은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해서 지나치게 자신감이 부족하고 한편으로 어른들의 가치관에 너무 쉽게 굴복하고 또 너무 서두르기 때문이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결코 짧은 것만은 아니다. 일류대가 아니고 출세 길이 빠르다는 전공이 아니라도 자기 적성만 확실하다면 한번 도전해 볼만한 충분한 시간이 있다. 그러므로 자신감을 갖고 과감하게 선택해야 된다. 그 싱그러운 나이에 자칫 이 사회의 속물적 가치관에 쉽게 굴복하고 자기의 소중한 미래를 맡겨버리는 것은 잘못이다. 그런 뜻에서 이번 대학박람회가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는 한 탐색의 장이 되길 바란다. .. 이 기회에 자신 있는 선택으로 미래에 대한 확실한 도전장을 내보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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