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화학회의 한 정기총회에서 학회의 최고 책임자가 '화학물질이 아닌 물질을 가져오면 1000조원의 상금을 주겠다'는 이색적인 현상공모를 했는데 아직도 그 상금을 찾아간 사람이 없다고 한다. 현대 생활에 기본이 되는 요소가 바로 화학이라는 얘기. 그 '쉬운' 화학을 이제 일반인의 생활 속으로 끌어들이고 싶다는 박동곤 교수를 만났다. 화학을 알면 길이 보인다 전공을 묻는 질문에 '화학'이라고 대답하면 대부분 두 가진 정도의 반응을 보인다. 일단 그 어려운 학문을 어떻게 공부하느냐라는 듯한 감탄이 첫 번째 반응. 그리고 "그걸로 밥 벌어먹고 살겠느냐"라는 것이 두 번째에 해당한다. 하지만 숙명여대 화학과 박동곤 교수 앞에서 이러한 반응을 보인 사람이라면 이어지는 명쾌한 답변을 기대해도 좋다. 먼저 첫 번째 반응에 해당하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바로 화학과 직결돼 있는 데 어떻게 어려울 수 있겠는가. 삶 자체가 바로 화학적 작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진대 어렵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운이 좋다면 생활 속에서 만날 수 있는 화학의 몇 가지 예가 덤으로 따라온다. 예를 들어 아침에 눈을 뜨면 향료와 화학약품을 섞은 비누로 세수를 하고 각종 화학첨가제로 만든 치약으로 양치질을 한다. 세수를 마친 다음에는 염료로 물들인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화학물질이 주성분인 화장품으로 치장을 한다. 이렇듯 이 세상은 다양한 종류의 화학물질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 박 교수의 지론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 반응에 해당하는 사람은 어떨까. 만약 핸드폰 기계의 브랜드가 'S사'일 경우 그 자리에서 핸드폰의 배터리를 분리해 보라는 주문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배터리의 제조년월일과 제조국가를 확인해야 할지도 모른다. 바로 이 배터리 뒷면에 표기된 'Made In Korea'라는 프린트 속에 박 교수의 땀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국내 20개, 국외 20개 합이 40여 개의 특허가 박 교수의 이름으로 등록돼 있는데, 가운데 최근 실용화된 제품이 바로 이것이다. 또 최신 냉장고에 장착된 냉장고 탈취제 역시 박 교수의 연구실에서 나온 작품이다. 더 이상 어떤 설명이 더 필요할까. 박 교수를 통해 본 화학은 실생활 아주 가까운 곳에서 활발히 이용되고 있는 실용학문이었다. 단지 너무 가까운 곳에 있었기에 의식하지 못했을 따름이다. 마치 공기와도 같이. '화학 마니아'의 삶은 제 2의 적성 이처럼 그에게 있어 화학이라는 학문은 생활 그 자체다. 길을 걷거나 영화를 보아도 그의 눈에는 화학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그는 이런 자신의 삶이 즐겁기만 하다. 하지만 박 교수라고 해서 처음으로 이렇게 '화학 마니아'로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화학가로서의 첫 걸음이라 할 수 있는 학과선택에 있어서도 단순히 '커트라인'을 의식했다고 고백한다. "지금도 미련을 못 버리고 여기저기에다 그림을 활용하고 있을 만큼 그림에 대한 애정이 남다릅니다. 평생 그림을 그리며 살아도 좋겠다 싶었는데 화가였던 어머니의 반대에 부딪쳤고, 잠시 갈피를 못 잡고 흔들렸죠" 하지만 어떤 이유였든 막상 화학과 학생으로 살다보니 오기가 생기더란다. '선택은 내 의지가 아니었지만 결국은 내가 책임져야 할 내 인생'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서 화학에 애정을 가지기 시작했다. '애정'은 세월이 흐르면서 '열정'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삶을 송두리째 지배하는 '신앙'이 됐다. 이런 시절이 있었기에 박 교수는 '제2의 적성'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적성이라고 하는 것은 타고나기 보다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경향이 더 강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 열심히 해서 자신감이 붙으면 그것이 곧 자신의 적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는 그 날을 위해 이렇게 후천적인 '화학 천재'로 재 탄생한 박 교수는 누구보다 열심히 화학에 애정을 바쳤다. 그 결과 지난 2월에는 세계 3대 인명기관 중 하나인 영국 세계인명센터 IBC에서 선정하는 '위대한 과학자 1000인'에 이름을 올렸으며 뒤 이어 '평생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박 교수의 이름을 등재한 IBC는 미국의 '마르키스 후즈 후' '미국인명연구소(ABI)'와 함께 세계 3대 인명기관으로 꼽히고 있다. "나이도 어린 제가 이곳에 등재하게 된 이유는 제가 가진 포트폴리오가 누구보다 화려하기 때문입니다. 1년에 국내외에서 발표하는 논문수도 비교적 많은 편이고 기업과 연계해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도 여러 차례였죠. 남들보다 짧은 기간에 많은 일을 벌였기 때문에 이목이 집중 됐나 봅니다." 그가 이렇게 활발하게 연구활동을 진행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목표하는 바가 뚜렷하기 때문. 간단히 말해 '한국에서 노벨화학상 수상자가 나오도록 만드는 일'이 그것이다. "그간 노벨상을 받지 못했던 건 외국과 비교해 화학이라는 학문의 기초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인이 화학에 대해 '남의 세상 이야기'라는 듯 외면하는 한 한국에서는 절대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못할 겁니다. 제가 할 일은 이들을 대상으로 화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이해를 돕는 일이죠" 이런 목표를 가지고 시작한 강의가 '화학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이다. 일명 '땅 다지기' 또는 '기초공사'인 셈. 비전공자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영상자료와 데몬스트레이션을 동원해 화학을 강의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만화'라는 매체를 새롭게 등장시켰다. 화학과 만화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컨텐츠를 엮어낸 끝에 '만화 그리는 과학자'로 유명해진 박 교수는 자신의 이러한 시도를 통해나마 '학문'과 '생활'이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가길 바란다. <기사제공=캠퍼스라이프> 홍혜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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