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몇년 만 하면 늘어나는 것 중 하나가 눈치와 요령이라고 한다. 상사의 의중을 잘 파악하는 '눈치'는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한 중요한 능력으로 꼽힌다. 많은 직장인들은 상사가 불가능한 일을 시켜도 거부하지 않고 눈치껏 따른다. 그러면 "그 일을 왜 해야 합니까"라고 토를 다는 부하가 있다면? 누구 말마따나 '죽음'이다. 조직이나 자신이 속한 팀이 내 의견과는 정반대로 진행되는 상황은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대세를 이루는 듯한 상황에 주도적으로 나서서 반대 의견을 개진하기도 어렵다. 많은 사람들은 여기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제리 하비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학과 교수는 조직과 구성원의 이런 역설적 관계를 '에빌린 패러독스'라고 규정한다. 어느 무더운 일요일, 무기력하게 TV를 보고 있던 하비 교수 가족에게 그의 장인은 왕복 4시간 걸리는 에빌린에 다녀오자고 제안한다. 만장일치로 외식을 마치고 돌아온 식구들은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다른 가족이 가고 싶어 하니까 할 수 없이 따라나선 것이라고 모두 불만을 토로한다. 에빌린 패러독스란 이처럼 조직 구성원들이 아무도 원치 않는 여행을 떠나는 현상을 뜻한다. 하비 교수는 저서 '왜 아무도 NO라고 말하지 않는가?'(크레듀 펴냄)에서 많은 사람이 조직의 힘이나 압력 때문에 이처럼 집단 동조를 했다고 하지만 정작 조직과 구성원의 역설적 관계가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고 지적한다. 문제를 파악하거나 인식하는 과정에서 또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구성원 개개인이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분명하게 표현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이면에는 조직이 가진 막대한 힘을 자발적으로 상상하고 두려워하면서 조직으로부터 소외되기 싫어하는 심리적 현상이 숨어있다고 하비 교수는 설명한다. 각 장마다 한국 상황에 맞게 해제를 재미있게 풀어넣은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회사생활의 고통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협력을 위해 모인 사람들의 집단에서 개인이 느끼는 경쟁심, 외로움, 소외감에서 나온다"며 아름다운 협동으로서 '커닝'을 허용하라고 제안한다. 이수옥 옮김. 240쪽.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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