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상 연세대 교수 /본지 논설위원

“외국대학 박사들이 태평양의 대어(大魚)라면, 한국대학 박사들은 서해안의 잡어(雜魚)와 같다”. 어느 재벌기업의 부회장이 금년 초 어느 모임에서 대학에 대놓고 뱉은 이야기이다. 이공계 대학 졸업자들의 형편없는 실력에 화가 나서 한 말이었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거북살스럽기 그지 없을 뿐이다. 마침내 그는 이 나라 이공계 대학출신의 실력을 똥차로 비유해버리기까지 했다. 똥차와 같은 한국의 이공계 박사들은 그 수에 있어서만큼은 단연코 우세하지만, 실무능력만큼은 똥차처럼 형편없다는 것이었다. 외국에서 공부한 사람이 1~2분이면 읽어내는 영어보고서를 한국이공계 박사들은 10~20분이 지나야 겨우 읽어내는 것만 보아도 능히 그렇다는 것이었다. 외국박사를 마치 벤츠로, 한국박사를 똥차로 비유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캐고 싶지도 안다. 수천만 달러가 걸린 국제간 특허소송을 맡겨 볼 한국인 변호사도 찾아보기 어려웠던 그 부회장의 분노를 충분히 읽어 낼 수 있었다. 그는 또 인력의 질이 그렇게 낮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평준화정책에 있다는 지적까지 잊지 않았다. 이런 재벌기업의 흥분을 예감했는지 어느 컨설팅 대표 역시 연단에서 한국교육을 한마디로 매도해 버리고 말았다. 한국교육은 기껏해야 5백원짜리 메모리 칩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바로 그것이었다. 20년 동안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은 고작해서 5백원짜리 칩과 같은데, 그런 싸구려 메모리 칩에나 저장할 수 있는 지식을 익히고 나오는 국내 대학의 졸업생들을 어느 기업이 채용하겠느냐는 힐난이었다. 그러니 자기들은 외국에서 배워온 학생들을 채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변이었다. 모임에 참석했던 사립대학의 총장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대학교육의 질은 투자로 결정되는데, 대학투자에 무관심한 정부와 기업이 화근꺼리라고 되받아 쳤다. 정부나 기업이 대학에 제대로 투자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무료로 대학졸업생들을 가져가는 기업들이 이제는 대학에 품질 보증과 아프터 서비스까지 요구하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라고 재벌기업을 질타했다. 한국 기업들이 대학 졸업생들의 국제경쟁력을 얘기하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기대였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왜냐하면, 한국의 대기업이 그렇게 자랑하는 이공계 미국대학들의 학생 일인당 연간 교육비는 우리보다 10배나 더 많기 때문이다. 앞으로 정부가 차세대 성장 동력과 관련해 10년 간 4조원의 예산을 쓴다고 하는데 그것을 정부가 움켜잡지 말고 4조원 전체를 대학에 주면 이공계 교육은 외국대학처럼 곧 바로 살아난다는 것이 그의 마지막 호소였지만, 그의 애원은 그저 볼멘 메아리처럼 공허하게 퍼져나갔다. 이공계 대학들이 어려운 처지를 감안한 정부가 결단을 내렸다. 앞으로 전국 8개 권역별로 산학협력 중심대학 10여 곳을 선정, 매년 4백억 원 씩 5년 동안 총 2천억 원을 지원 하겠다고 했다. 4년제 대학들도 기업에게 맞춤형 기술교육을 시키겠단다. 서로가 화답하는 것을 보면 이공계 대학 형편이 지금보다는 좋아질 것 같다. 그렇다고 재정적 지원 때문에 이공계 대학의 질이 덩달아 좋아질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이공계 대학은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들 모두가 읽고 생각하는 기초문법체계가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공계 전문가들이 써낸 글을 제대로 읽어 낼 수 없다는 것도 어제 오늘의 지적이 아니다. 그래서 재정적 요구 못지않게 기초교육, 외국어 교육, 국제이해교육 같은 교육과정의 개혁작업이 우선해야 한다. 결국, 이공계 교육이 형편없다고 질타한 재벌기업 측을 나무랄 일 만도 아니다. 탓해 봤자 끝내 재벌 기업이 윤리경영에 충실했는가 하는 식으로 변죽이나 울리는 것으로 끝나겠기 때문이다. 어쨋거나 석두투성이들의 대학을 돕는 것이 역겨우면, 외국기업들처럼 초 중등의 뿌리교육을 위해 나서도 괜찮다. 미국기업에서는 이런 일이 흔한데, 그들로부터 배울 만 한 것은 배워도 된다. 좋은 나라에는 국민을 위한 좋은 교육재단이 많기 마련이고, 그것은 아무래도 좋은 기업들이 해볼 만한 좋은 일 꺼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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