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학가는 야단법석이다. 5월 대동제 목전이다. 말 그대로 개봉박두, 절찬상영을 예고중이다. 각종 행사를 알리는 홍보물이 대학가에 넘쳐나고, 행사준비를 맡은 학생들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판이다. 벌써부터 옆 동네 학교의 주요 행사 목록이 입과 입을 통해 전파되고, 학생들의 다이어리에는 1주 혹은 2주간에 걸친 각양각색의 약속 일정들이 빼곡하다. 이런 와중에 기자에게 의문이 하나 생겼다. 대동제에 즈음하여 발에 땀나도록 신이나 쫓아다니는 이가 정작 학생들이 아니라 취재기자인 것은 아닐까. 바쁜 취재 일정을 팽개치고 데스크의 눈총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과감히 대학가 잠행에 나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여러 학생들의 5월 한 두 주간의 스케줄이 궁금했다. 지극히 평범한 학생들, 지극히 사적인 견해, 지극히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탐문해 보고 싶었다. 캠퍼스를 어슬렁거리며 지나는 여학생에게 수작(?)을 걸어보고, 행사 준비에 눈코 뜰 새 없는 학생들의 모임에도 기웃거렸다. 취재수첩에 기록돼 있는 그간의 취재원 모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비둘기’를 날렸다. 심지어 요즘 세상에 ‘청탁’을 위해 도서관에 공익요원으로 ‘공직 복무’중인 인물에게까지도 접근했다. 지금부터 그 잠행의 결과를 ‘리얼’하게 옮긴다. 한가지 밝혀둘 것은, 개별로 이뤄진 인터뷰를 추릴 것은 추리고 뺄 것은 빼가며 하나의 것으로 재구성했다는 것이다. 다만, 군소리 몇 덧붙인다. 아득타! 모든 순간이 다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모양이 천편일률인 것만큼 재미없는 것은 없다. 죄다 제 각각이기에 살아있음인 것을. 지금, 대학은 이렇게 또 꿈틀거리고 있음이다. # 대동제, ‘휴가’기간 아니다 “옛날엔 대동제 때 강의가 없었나요?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 때만 되면 대학이 아예 ‘단체휴가’에 들어가는 줄 알아요. 수업도 수업이지만, 리포트가 오히려 엄청 늘어나는 때가 요즘인데 말이예요.” 기실 대동제 때면 대학이 ‘개점휴업’상태에 들어가는 게 아니냐는, 무심코 던진 기자의 질문에 자칭 ‘일반학우’ 이은주 씨가 정색을 한다. 지난 한 주만 하더라도 ‘숙제’가 3건이었단다. 그 가운데 과제발표까지 끼어있어 거의 녹초가 됐다는 것. 이런저런 이유로 그나마 과제가 적은 4학년생이 이 정도라면 아래 학년의 학생들은 불을 본 듯하다는 것이다. 요사이 대학에는 중간고사, 기말고사만 있는 것이 아니란다. 어느 단과대의 경우에는 심지어 8차에 걸쳐 시험을 치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수업이나 과제뿐이면 그나마 다행이게요. 각종 스터디모임에 부업까지. 학생들 얼마나 바쁜지 모르죠. 좀처럼 짬이 나는 경우가 없어요. 동아리 활동이 제대로 안돼요. 오죽했으면 학교에서 활동 왕성한 동아리를 뽑아 상금을 주겠어요. 1등 상금이 2백만 원이예요.” ‘이상한 복학생’ 김은석 씨의 멘트. 산 증인이 바로 자기자신이라는 것이다. 인심 후하게 써, 학과 수업은 차치하고. 김씨는 경영학부 풍물패 ‘그루터기’ 회원이다. 대동제가 목전이니 모임도 잦아졌다. 4인 1실의 학교 기숙사 방장이기도 하다. 자연 후배들의 각종 상담은 전적으로 그의 몫이다. 또 1주일에 두 번은 인근 학원에 나간다.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사회과목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1주일이 7일이 아니라 한 10일쯤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산단다. # 우리에겐 해방구가 필요 지난해 최연소로 사법고시에 합격한 이가 어느 대학, 누구라고 하더라가 대학가 도서관의 주요 화젯거리가 되는 시절이다. 입학과 동시에 각종 고시 준비에 돌입하는 것이 일상사가 된 마당이다. 바로 태클이 들어온다. 고려대를 지키고 있는 ‘공익’ 이수영 씨다. 지난해 최연소 사법고시 합격자가 고려대생이었기에 더 할말이 많은 지도 모르겠다. “도서관에서 보면 (대학이) 공부마저도 ‘우루루’ 시킨다는 느낌이에요. 판?검사는 20~30년 전 성공의 잣대 아닌가요. 아직까지 이런 잣대가 유효한지 참 의문입니다.” 이번엔 ‘휴학 3년차’ 박건주 씨가 지원에 나선다. 이제 ‘성공’은 어떤 구체적인 직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감성에 얼마나 충실하냐에 달렸다는 주장이다. (지난 ‘탄핵정국’을 가리키는 듯) 정치마저도 감성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판국인데, 아직도 구태의연하게 판?검사 타령이냐는 것이다. 가수 서태지가 빛을 보지 못하고 있던 시절, 스스로 그리 생각했단다. 이런 어려운 상황은 그저 게임의 한 장면일 뿐이야. 게임은 즐기는 것이고, 정히 안되면 리셋 버튼을 누르면 돼. 다시 또 시작하면 되는 거야. 박건주 씨는 그래서 3년째 휴학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아니 그의 표현에 따르면 ‘모험을 하고 있다’고. 결론은, 대학인이라면 열정적으로 모험을 즐겨야 하며, 대학이라는 공간은 그러한 것을 부단히 옹호하는 해방구여야 한다는 것이다. # 이러해야 한다는 편견을 버려 5월 이맘때를 전후로 대학가 교정엔 나름의 ‘판’이 차려진다. 갖가지 먹거리가 등장하고, 수공예품을 비롯한 각종 상품들이 진열된다. 각종 공연 행사가 이목을 집중시키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이른바 명품을 사고 파는 벼룩시장까지 서기도 한다. 하지만 5월 대동제가, 중간고사의 끝남과 동시에 기말고사의 시작을 알려주는 하나의 ‘신호등’쯤으로 전락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직진’과 ‘정지’만을 표시해주는. ‘한낱’ 신호라는 것은 굳이 그 의미를 돌아보고 그것을 고양하는 데 있지 않음이 자명한 터, 이제 대동제에서 ‘대동’의 의미는 휘발한지 오래라는 결론 또한 가능하다. 그렇다면 새로운 대동제의 상은 어떤 모습일까. 그래서 물었다. 이번 대동제가 어떻게 꾸며졌으면 좋겠느냐고, 뭘 하고 싶으냐고. 이은주 씨는 토익 시험을 본단다. 취업 때문이냐고 되물었더니, 공부하는 게 좋아서란다. 전공과목이 너무 재밌단다. 다시 물었다. 대학가 집회에는 자주 참석하느냐고. 지난번 촛불집회 때는 열심이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무엇에 열중할 수 있을 때만이 당당할 수 있다. 이제, 연예인이 빠진 대동제는 상상할 수 없다. 반면 각 동아리들 행사는 예년에 비해 상당부분 위축돼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은석 씨는 오직 대동제의 꽃은 동아리라는 주장을 반복한다.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닌, 다만 행사를 통해 한 판 신명나게 놀아보고 싶다는 바람에서 말이다. 박건주 씨는 고려대 응원행사인 ‘입실렌티’를 비롯해 각종 공연을 찬찬히 살펴볼 요량이다. 예년에는 하지 않던 짓이다. 몇몇 공연은 티켓까지 일찌감치 예매해 뒀다. 모두가 즐기는 그 무리 속에서 뭔가를 찾고 싶어서. 이 또한 ‘모험’의 연장선상이란 설명이다. 대미는 이수영 씨가 장식했다. ‘주동제(酒同祭)’의 문제점 운운하며 덤벼든 기자에게 카운트펀치 한마디. “대학이 1년에 한 두 번쯤 주막촌으로 바뀌면 안된다는, 정해놓은 법이라도 있나요? 대학에서마저 여기저기에 금을 그어놓고, ‘무엇무엇은 하지마세요’ 푯말 쾅쾅 박아두고 있잖아요. 이런 것 죄다 깔고앉아서 술 한잔 질퍽하게 마셔보는 것도 나쁜 일 아니잖아요.”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