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순 (순천향대 교수/본지 전문위원)

대통령 탄핵안 가결후 야당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지율이 크게 떨어졌고 회복할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다. 탄핵에 대한 국민 여론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탓이며 방송의 정치사회적 기능에 대해서 충분히 숙지하지 못해 생긴 결과이기도 하다. 탄핵안 가결 직후 여론을 주도한 것은 TV방송이었다. 방송은 국회에서 탄핵안 가결 과정을 생중계했고, 이후 국민의 반응을 집중 보도했다. 신문은 속보성에서 뒤졌고, 인터넷은 파급력에서 방송을 따라가지 못했다. 울부짖는 여당의원들을 끌어내고 탄핵안을 통과 과정을 지켜본 정치적 부동층들이 탄핵 직후 여당 지지성향으로 바뀐 것은 당연했다. 그 결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국민들조차 탄핵에 대해서는 잘못이라 생각하게 됐다. 국회 탄핵안 가결 모습이 TV로 생중계되지 않았다면, 야당 지지도가 그토록 추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탄핵안을 통과시키면서 야당은 방송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 보였다. 국민들은 공황적 불안상태에 빠져들었는데, 야당의원들은 환호하고 박수치고 만세를 불렀다. 야당이 여론에 개의치 않은 것은 아니었다. 탄핵 표결 직전까지 면밀하게 여론의 향배를 추적했다. 12일 노대통령 기자회견 직후 여론이 악화되자 탄핵을 밀어붙였다. 탄핵을 해도 여론이 야당에게 유리하리라 판단했다. 한국의 거대 야당들이 의지해 온 언론매체는 신문이었다. 조선, 동아 등 유력일간지들은 야당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는 조선일보의 편집국장 출신이다. 보수야당과 보수일간지의 결합은 노무현정부의 가장 큰 장애물이었듯 야당에게는 항상 방송이 걸림돌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 직후 KBS와 MBC 모두 사장이 바뀌었고 여당 대표는 MBC 앵커출신이 선출됐다. 방송의 친노성향을 견제하기 위해 한나라당은 방송법 개정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메카톤급 뉴스의 속성도 신문보다는 방송, 즉 야당보다 여당에게 유리한 국면을 만들었다. 탄핵 국회 통과 시간은 12일 정오 무렵. 이미 아침부터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국회생중계를 하던 방송사들은 하루종일 탄핵관련 프로그램만을 편성했다. 호외 발행도 방송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13일 아침 조간신문이 각 가정에 배달됐을 때 이미 국민들은 마음을 정한 상태였다. 속보성에 뒤진 신문이 탄핵에 대한 여론형성 경쟁에서 방송에게 밀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론전파력에 있어서도 방송은 압도적이었다. 신문구독자에 비해 TV뉴스 시청자가 3-4배 이상 많기 때문이다. 이성보다는 감성을 자극하는 탄핵뉴스의 성격도 신문보다 방송의 주도권 장악에 유리했다. 흔히 신문은 이성적이고 방송은 감성적인 매체라고 한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국회가 파면할 수 있느냐," "자업자득이다"와 같이 감정 전달에는 신문보다 방송이 훨씬 유리했다. 국민 여론의 변화를 보여주기도 방송이 더 유리했다. 신문의견란은 엘리트나 기득권 세력의 주장들로 대부분 채워져 일반 국민들이 설 자리가 없지만 카메라 인터뷰는 어렵지 않았다. 대통령 탄핵안 발의 후 야당이 여론 역풍을 맞은 것은 당연했다. 야당간부들의 방송사 항의방문이나, 여론조사 왜곡주장에도 불구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난 상태였다. 쿠데타 세력들이 권력찬탈 과정에서 반드시 방송국을 장악했다는 점에서 여당이 말하는 쿠데타는 아니지만 이번 탄핵안이 야당의 정치적 도박임에는 틀림없다. 지금 그 댓가를 혹독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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