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광식 (언론인 / 본지 논설위원)

노무현 대통령이 헌정 사상 초유로 야당 연합에 의해 탄핵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번 사태는 총선을 앞두고 급전직하 일어난 정치적 사건으로 보이지만 그 배경은 ‘반노’ 세력의 끊임없는 ‘장외 탄핵’에 있다. 지난 해 대선 이후 ‘반노’세력은 일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탄핵의 사유가 되지 않는 '말’로 빚어진 정치적 이슈를 증폭시켜 ‘성공’을 한 입법권력은 의회 지배세력의 힘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란 말이다. 헌정 중단을 불사할 만큼 대통령을 미워하는 기운이 장외에 팽배했던 것이 사실이다. 대통령의 ‘사과냐 아니냐’가 사태의 핵이 된 것은 표면이요 그 이면에 깔려있는 것은 지난 일년 동안 숙성된 ‘대통령 몰아내기’가 그 실체이다. 결국 의회 지배세력은 이런 감성적 정치 기류를 배경 삼아 유감없이 입법권력을 발휘한 셈이다. 입법권이라는 이성적 수단을 발동을 했지만 그 밑바탕에는 ‘까불면 대통령 자리도 날려버려‘라는 오만의 극치가 감성적으로 작동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참으로 미묘한 일면이라 할 수 있다. 연합세력인 '한.민당‘은 보수정당인데 입법 권력을 발동하여 정치판을 변혁시키는 의회 쿠데타라는 진보적 행동을 취했으니 말이다. 이 사태를 만들어 낸 데에는 각 의회 정파세력들의 당내 사정이 걸려 있었다. 각 당의 중심부는 당의 헤게모니를 장악하지 못했으며 일련의 정치자금 비리와 관련하여 의원들이 구속되고 당내 개혁파가 중심부를 흔드는 등 한나라당도 민주당도 혼미한 상태였다. 메가톤 급의 ‘사태’를 연출하지 않는 한 이 흩어진 당권 장악력을 부활시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핵 폭탄 급의 사태는 ‘대통령 탄핵’이외에는 없었다. 그 ‘핵우산’만이 정치적 부패 문제, 당권 흔들기의 문제, 유권자들의 지지율 저하 등을 일시에 덮어버릴 수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사과’를 하지 않아 원인을 제공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몰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과 여건이 사태를 만들어 낸 원인인 것이다. 사과를 했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개연성이 높다. 탄핵 안의 대표 서명자인 민주당 조순형 대표가 ‘사과해도 결행 한다’는 말을 한 대목은 간단히 넘어갈 내용이 아니다. 이제 공은 헌법 재판소로 넘어 갔다. 입법부의 탄핵 소추에 대한 사법부의 결정을 기다리게 됐다. 아무리 냉정한 법리의 입장에서 결론을 내려왔더라도 사법부가 정치적 파장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판결 여하는 곧 있을 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윤영관 헌법 재판소장은 “빠른 시일 내에 결론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시기 여부도 선거에는 상당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미묘한 것은 사법부의 결정이다. 탄핵소추의 원인 무효 결정을 내리면 사법부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입법부의 결정을 뒤엎는 반 의회주의적 결정이라는 정치공세를 면키 어렵다. 반대로 입법부의 결정을 받아들인다면 주요한 선례를 남길 것이다. 대통령 책임제의 헌법 질서는 정치적 이유에 의해 빈번하게 흔들리는 불안정성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를 탄핵의 조건으로 인정한다면 사소한 정치적 이유로도 대통령을 쫓아 낼 수 있게 된다. 정국은 항시 불안하고 대통령 지위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정치적 상황 진전에도 이번 사태는 미묘한 파장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 사태는 불가분 총선의 이슈가 되게 되어 있다. 이제는 야당도 여당도 없게 됐다. 집권세력이 야당을 탄압한다는 예의 정치 도식은 오히려 그 반대로 작용하고 있다. 야당은 어느 곳을 정치적 주적으로 삼을 것인가. 소수 세력으로 몰리고 있는 열린우리당은 여당인가, 야당인가. 대단히 혼미스러운 양상의 전개이다. 사태와 양상은 예측을 불허한다. 어쩌면 엄청난 정치적 변화가 예비되고 있을지 모른다. 흐름 자체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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