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일 (본지 전문위원/한국해양대 교수)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거침없는 행보가 계속되고 있다. ‘참여정부’의 교육정책 기조는 미구에 KDI의 손을 거쳐 마련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 정도다. 교육인적자원부는 불만이 가득하면서도 수세적인 입장에서 연구원이 저질러놓은 일에 대한 ‘해명’을 되풀이하고 있다. KDI에 포진해 있는 ‘교육연구자들’이 분주하면 할수록 주무부처로서는 대응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교육에 대한 국민의 혼란과 불신은 가중될 뿐이다. 종잡을 수 없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참여정부’의 교육개혁 청사진을 마련하는 임무를 맡은 교육혁신위원회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같은 국책연구기관이면서도 한국교육개발원의 목소리는 세간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등 정부의 교육 관련 연구기관들은 마치 손발이 묶여있는 것 같다. “종합정책 연구기관”을 자임하고 있다고는 하나 KDI에 속해있는 ‘교육연구자들’의 활약이 단연 압도적이다. 대체 어떤 연유에서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연구(기관)의 정치화(politicization) 때문이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KDI가 교육연구를 빙자하여 자신들의 ‘신념’과 이데올로기를 실현시키려는 정책설계(policy design)와 정책주장(policy argument)에 몰두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아도 국책연구기관은 정책 정당화의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많은 집단이란 비판을 받아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경련이나 보수 언론 등과 손잡을 정도로 아예 작심하고 나섰다. KDI 내의 ‘교육연구자’들의 계보는 비교적 탄탄한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이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문민정부’ 시절 이른바 5.31교육개혁안의 골격을 마련한 이들이 바로 KDI 출신 교수와 연구원들이었다. 그 가운데 주축은 역시 미국에서 신자유주의 이론 및 교육개혁론을 학습하고 돌아온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김영삼 대통령 후보 진영의 싱크탱크였던「나라정책연구회」의 주요 멤버로 활약하다 집권하게 되자 요직에 등용되기도 한다. 놀라운 점은 이들의 질긴 ‘생명력’이다. ‘문민정부’에서 ‘국민의 정부’를 거쳐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사실 ‘건재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문민정부’의 경우는 논외로 하더라도 ‘국민의 정부’에서 그랬던 것처럼 ‘참여정부’에 들어와서도 자신들의 ‘개혁 의지’를 새로운 정치권력에 강요하려 들 정도니 더 말해 무엇하랴. 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경제 관련 부처를 중심으로 한 관료권력의 든든한 뒷받침이 이들의 자랑거리다. KDI의 출발이 1971년이고 보면, 경제기획원 시절부터 형성된 관-학(연) 동맹체제의 견고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전경련이나 대한상의 등으로 대표되는 재계의 지지와 후원도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이다. 그러나 이런 것만 있는 게 아니다. 조ㆍ중ㆍ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이 든든한 후원자를 역할을 하고 있으니 거칠 게 무엇이겠는가. 특별히 최근 목격되는 보수언론과의 관계는 눈여겨볼 만하다. KDI가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 조ㆍ중ㆍ동은 어김없이 이를 대서특필한다. 어찌 보면 정치화된 KDI의 노회함이 이런 정책환경을 적절히 조성ㆍ이용하고 있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는지 모른다. 기득권층의 편협하고 이기적인 교육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 관-학(연)-언 공모체제를 작동시켜온 것이다. 시장만능론으로 무장한 ‘교육연구자’들을 내세워 ‘교육의 위기’를 과장하는 KDI의 행태는 시정되어야 한다. 이들이 바로 “세계적인 수준의 지식교육과 인간교육”을 천명한 ‘참여정부’의 교육정책 기조를 교란시키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국책연구기관이 ‘참여정부’를 일군 정치세력을 압박하면서 보수 기득권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현실이 기이하게 여겨질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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