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대대 텅텅···문 닫는 게 이득?

고급시설을 갖춘 대학 공연장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외부 대관은 저조하고, 자체 기획 공연은 미비하다. 시설유지비와 인건비 때문에 적극적인 투자를 꺼리니 이런 현상은 계속된다. 아예 “문을 걸어 잠그는 게 오히려 이득”이라는 말도 들린다. 본지는 건국대, 경희대, 고려대, 광운대, 동국대, 성균관대, 세종대, 연세대, 중앙대 등 서울시내 주요 대학 공연장 9곳을 살펴보고, 전문가에게 대학 공연장을 어떻게 살려야 할지 물었다. “경기침체 때문에...” “일정 관리 어려워서...” 동양 최대 4,500석 규모에 최신식 시설을 갖춘 경희대 ‘평화의 전당’은 지난 해 외부 공연을 한 건도 받지 않았다. 입학식·졸업식, 음대 가을정기콘서트, 의상대 졸업 발표회 등 정기적으로 교내 행사를 하고 있지만, 특별히 사람들을 불러 모을 자체 기획 공연은 없다. 관리·운영 직원은 행정직 3명이 전부다. 100석 이상 공연장은 문화관광부에 등록을 해야 하지만, 현재 연구목적 시설로 분류, 등록을 하지 않았다. 988석 규모 고려대 ‘인촌기념관’도 외부 공연보다 주로 학술·교내 행사 위주로 사용된다. 총무부 직원 1명이 거의 모든 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외부 공연·행사 대관 수입은 그리 많지 않다. “공연장 수익이 어느 정도냐”고 묻자 담당자는 “학교 이미지를 높이고 학술행사를 원활하게 운영하려고 만든 공연장이지 돈을 벌기위해 세운 곳이 아니”라고 답한다. 자회사에 용역을 맡긴 성균관대 ‘새천년홀’은 외부 공연을 아예 받지 않는다. 이유를 묻자 “덜컥 외부 공연을 받았다가 학교 행사와 겹치면 일정 조절이 힘들다”는 군색한 답변이 돌아온다. 문화사업부 직원 3명이 관리·운영을 맡고 있는 이곳도 다른 대학과 마찬가지로 자체 기획 공연은 꿈도 못 꾸는 실정이다. 건국대는 805석 규모 ‘새천년관’을 외부 업체인 위니아트에 맡겨 운영 중이다. 업체는 자체적으로 연간 4~5회 정도 클래식·가곡 공연을 하고 있다. 그러나 역시 이렇다할 수익을 내지는 못한다. 위니아트 변재웅 과장은 “대관수입이 거의 전부나 마찬가지라 안정적인 운영이 어려운데, 최근 경기침체까지 겹쳐 대관율이 많이 떨어졌다”고 하소연한다. 그는 “1,000석이 채 안되는 중급 공연장이라 외부 공연이 잘 안 잡히고, 전문 인력이 없어 자체 프로그램을 기획하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주먹구구식 운영 많고, 정부 지원 미흡 서울시내 주요 사립대학 공연장 9곳을 조사한 결과, 절반 이하가 문화관광부에 공연장 등록을 하지 않았거나 전문인력 없이 ‘주먹구구식’ 운영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9곳 중 4곳만 공연장으로 등록했고, 자체 기획 공연을 진행하는 대학은 3곳에 불과했다. 공연법 상 등록을 하지 않은 공연장은 연간 90일 이상, 연속해서 30일 이상 공연을 할 수 없다. 하지만, 등록을 할 경우 의무적으로 무대예술전문인을 배치해야 하고, 정기적으로 까다로운 안전진단을 받아야 하는 등 번거로운 항목이 많아 대학이 꺼리고 있다. 경희대 평화의 전당을 관리하는 변영주 운영계장은 “등록해서 얻는 이득이 별로 없어 일부러 등록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부의 미흡한 지원도 대학 공연장을 움츠러들게 하는 요인이다. 문광부 공연법 제 10조(공연자 지원 및 공연장 설치·경영의 장려 등) 1·2항에 따르면, 국가·지방자치단체·문화부장관·한국문화예술진흥원은 공연예술 발전을 위해 공연자와 공연장에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혜택은 일부 소규모 공연장에만 해당할 뿐, 대학 내 공연장에는 아무런 이득도 돌아가지 않는다. 문광부에 이와 같은 문제를 지적하자 공연예술팀 김혁중 사무관은 “정부 예산이란 한계가 있는 것 아니냐”며 “대학 공연장 뿐 아니라 다른 공연장도 마찬가지다. 정부 차원에서 실질적인 지원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악순환’이 반복된다. 대학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니 볼만한 공연이 없고, 볼만한 공연이 없으니 사람들이 찾질 않는다. 비싼 돈 들여 공연장을 지어놨지만, 대학 공연장은 이에 상응하는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인력확충·기업연대 등 대학이 악순환 고리 끊어야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지원을 탓하기보다 대학이 적극 나서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황동열 중앙대 예술경영학과장은 “공연장에 사람이 모이지 않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며 “대학이 문제를 회피하고 있어 상황이 나아지질 않는다”고 지적했다. 황 예술경영학과장은 “코엑스나 킨텍스는 산업전시장인데도 사람이 몰리니까 좋은 공연과 미술품이 몰리고 있지 않느냐”고 예를 든 후, “정부가 필요한 장비 등을 임대해 주거나 활동이 활발한 대학에 인센티브를 주는 정책이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 대학이 나서지 않으면 공연장은 죽어버린다”며 대학의 분발을 촉구했다. 이와 함께 “지역주민에게 공연장을 적극 개방하는 방법 등을 활용, 대학이 상아탑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와의 커뮤니티·소사이어티를 형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달 말을 목표로 연세대 내 모든 공연장에 대한 총체적인 정보와 예약시스템을 총괄하는 대규모 홈페이지 제작에 들어간 최두영 총무과장은 “대학 내 공연장은 수익창출을 위해, 또는 꼭 필요해 지었다기보다 일종의 ‘구색 맞추기’로 지은 경우가 많아 수익을 내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대학들이 현재처럼 공연장을 수동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와 관련 “이제 학교가 아마추어리즘에서 벗어나 프로페셔널한 자세로 공연장을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예술단 홍보팀 주미석 대리 역시 대학이 밖으로 나와 기획사 등을 상대로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벌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학이 공연장으로 좋은 공연을 끌어오려는 시도 자체를 아예 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며 대학의 나태함을 꼬집고 “대학이 스스로 기획사나 공연단체 등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공연장이 지닌 장점을 홍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운대 공연기획경영학과 서영일 교수는 대학이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인프라 구축에 힘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우선 대학이 공연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기획·홍보 인력 확충’을 꼽았다. 이후 언론 등에 공연장 노출 빈도를 높이는 한편, 화젯거리가 될 만한 공연을 끌어오는 일을 진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장기적으로는 대관 업무보다 기획 공연을 활성화해야한다”며 이런 과정에서 자금이 부족할 경우 “태평양의 ‘미장센 영화제’처럼 대학 내 인적자원인 학생을 기업과 연대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말했다. 대학이 눈을 돌리면 기업·대학·학생이 얼마든지 서로 ‘윈윈’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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