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무섭(논설위원·강남대 평생교육원장)

대학의 생명은 자율성이다. 많은 서구의 대학들이 자유·자율·자치를 기반으로 성장하고 발전해 왔다. 우리나라 대학들도 그 동안 대학의 자율성을 쟁취하기 위해 많은 논쟁 속에서 갈등하고 번뇌해 왔다. 그 결과 대학의 자율성이 많이 신장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학의 자율화에서 가장 중요한 학생 선발만은 유독 지금도 정부의 간섭과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학생선발이라는 본질적인 의미 이상으로 대학입시가 우리사회에서 교육·사회·정책적인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이해하면서도 작금의 정부가 취하고 있는 행태는 지나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3불정책으로 대학 학생 선발권에 관한 정부와 대학의 충돌과 갈등이 태풍처럼 한차례 지나가더니 최근에는 2008년 대입 정시모집에서의 내신성적 반영률을 놓고 온통 사회 전체가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교육인적자원부의 간섭으로 부족해서 이제 대통령까지 훈수를 두는 상황에까지 왔다. 대학들은 학생 선발권을 지키려다 대학의 모든 자율성까지 박탈될 위기에 처하였다. 교육인적자원부는 대학들이 정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며 행·재정적인 제제를 가하겠다고 엄포하더니, 대통령은 "국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대학의 자유도, 자율도 규제받을 수 있다"라고 총장들 앞에서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 냈다. 이 정부에서 대학 자율성이 총체적으로 위협을 받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26일 갑자기 2009년부터 기초생활수급자 가정 등 저소득층 자녀를 포함하여 대학의 정원 외 입학을 11%까지 확대하는 '기회균등 활당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고등교육기회를 제공한다는 근본적인 취지는 이해하지만 이것 역시 대학의 학생 선발권을 약화시키는 제도일 뿐만 아니라 대학의 학생정원 관리에 큰 혼란을 초래하는 정책이다. 2004년부터 정부가 대학구조조정을 통해 학생정원을 줄이는 과정에 있을 뿐만 아니라 계속 학생자원이 감소하고 있는 추세에서 나온 정책이라 대학입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갈등을 봉합하고 대학을 회유하기 위한 정책이라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지방대학들은 지금 있는 정원도 채우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이 제도로 수도권 대학으로 학생자원을 빼앗긴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수도권의 일부 대학들은 학생지도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현행 정원 외 3.9% 학생선발도 이행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정말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고등교육기회를 제공하려면 고등학교 단계에서 제대로 공교육을 받고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지금 대학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각 대학이 교육시킬 수 있는 학생 수(정원) 만큼을 대학이 독자적으로 선발할 수 있도록 자율을 달라는 것이다. 교육인적자원부가 나서서 전체 입학생을 선발하여 각 대학에 배정할 생각이 아니라면 대학 정원도 학생선발도 온전히 대학에 맡기는 과감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3불 정책을 한꺼번에 풀 수 없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언제까지 정부가 붙잡고 있을 수 있겠는가? 단계적인 수순을 밟을 필요가 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내신 성적 반영률도 그렇다. 명목 반영률 50%가 아니고 실질 반영률을 한꺼번에 50%까지 끌어 올린다는 것은 대학입장에서 보면 정시 모집에서는 내신 성적 만으로 학생을 선발하라는 것과 다름없다. 수능점수나 논술 및 면접점수가 학생선발에 크게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는 얘기다. 교육부가 50%의 원칙을 지킬 수 없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대학은 교육부와 협의를 거쳐 일부 조정할 수 있다고 하지만 얼마나 융통성이 주어질지는 미지수이다. 항상 대학입시와 관련된 문제는 교육부나 대학 모두 학생과 학부모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가장 혼란을 최소화 하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번 수능성적 반영 문제도 수험생을 최대한 보호하면서 대학의 학생선발권도 보호하는 차원에서 해결되어야할 것으로 보인다.

대학의 자율성, 특히 대학의 학생선발권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존중되고 있는 철학이자 가치이다. 최근 일본 도쿄대 고이야마 총장도 일본 정부는 대학의 학생선발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대학이 많은 미국은 대학의 자율성을 대학의 존립가치로 존중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 대학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라도 대학의 자율성, 특히 학생선발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대학 정책을 가다듬어 갈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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