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명현 '2008 세계철학대회' 한국조직위원회 의장(서울대 철학과 교수)

"인문학의 위기는 없다. 특정 학문이 문제가 있기보다는 정부가 대학의 구조개혁을 추진하면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본다. 단지 학문 후속세대 양성이 우려 될 뿐이다"

2008년 7월 세계철학대회 한국조직위원회 의장을 맡은 이명현 서울대 교수(철학·전 교육부장관)는 20일 서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최근 일고 있는 '인문학 위기론'이 잘 못 부풀려졌다면서 이 같이 말했다.

이 교수는 "일반인은 물론 기업 인사담당자들도 인문학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잘 못 알고 있다"면서 "해방 후 미국의 주립대를 본받아 만들어진 우리대학의 직업 중심의 편제가 오늘의 인문학의 위기라고 하는 문제를 불렀다"고 주장했다.

소위 돈벌이가 되는 직업과 관련한 학과 중심으로 학생을 선발해 교육함에 따라 상대적으로 직업과 직접 연관성이 약한 철학 등 인문 분야 학문이 학생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미국 아이비리그 스쿨은 인문학을 위주로 가르치고, 미국 기업 인사담당자들도 면접에서 '당신 무슨 전공인가?'라고 물어 뽑지는 않는다"면서 "전공과 분야의 벽을 쌓아 교육하는 시스템을 이제는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된 데에는 교육부의 대학구조조정 등 학문정책이 제대로 되지 못한 때문이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의 인문학 위기 탈출법은 '학문 융합'. 학생들에게 전공과 학문 분야를 뛰어넘는 교육을 시켜야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세계 금융을 주도하는 미국 금융시장의 첨병은 모두 물리와 수학도 전공한 사람들이다. 금융상품도 파생상품 주도로 모두 고등 수학에서 나온다"면서 "문과만 전공해서도 안되고, 이과만 전공해도 사회에 크게 쓰일 수 없는 시대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이명현 교수와의 일문 일답.

-세계철학대회 서울 개최의 의미는 = "세계철학대회는 세계 철학자들의 대표적인 모임이지만 지금까지는 유럽과 미국에서 번갈아 가면서 열리는 등 사실상 '서양철학대회'라는 빈축을 샀다. 한국을 포함해 동양은 지금까지 100여년간 서양의 이성과 합리성에 바탕한 문명을 받아들였고 이를 통해 민주화와 산업화를 일궜다. 앞으로는 이러한 서구중심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문명의 전환기가 도래했다. 이런 시기에 한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문명의 시발점을 찍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큰 의미다"

-한국 철학의 위치는 = "그 동안 우리 고유의 사상은 '빈칸'이었다. 지난 100여년간 유럽에서만 열렸던 대회가 서울에서 열리는 것은 문명사적 의미가 있다. 국가중심의 삶, 이성을 토대로 한 서구 사상이 이제는 어떻게 평화와 공존을 추구하느냐를 고민해야 할 문명의 전환기며, 여기에는 새로운 철학이 필요하다"

-대회를 1년 앞두고 앞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 "3,000여명이 온다. 논문은 약 2,500여편이 발표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가지 문제는 20~30억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업과 개인으로부터 후원이 필요하다. 월드컵과 올림픽도 국가 이미지를 크게 높이지만, 운동만 잘한다고 선진국이 아니다. 진짜 선진국이 되려면 결국 브레인이다. 기업도 단순히 기술로만 승부하는 시대는 지났다. 문화적인 격조와 상품 가치를 높여야한다. 이번 기회에 우리 기업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차원에서 많은 기업이 동참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명현 교수 = 1942년 평안북도 신의주 출생으로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브라운대서 철학박사를 취득했다. 한국외국어대 교수, 서독 홈볼트재단 초청연구교수 등을 거쳐 1984년부터 서울대 인문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지난 1997년부터 1998년까지 교육부장관을 역임했으며, 한국철학회 회장,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소장, 세종문화회관 이사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2008년 세계철학대회 조직위원회 의장, 선진화국민회의 공동 상임위원장, 교육선진화운동본부 대표, 경인여자대학(태양학원)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현대사회와 철학(1981)', '이성과 언어'(1982), '길아닌것이 길이다'(1996), '신문법서설'(1997), '사회변혁과 철학'(1999) 등이 있다.

◆세계철학대회 = 1900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이래 5년 마다 100여년 이상의 전통을 갖고있는 세계 최고의 철학자 대회. '철학의 올림픽'으로 불린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3년 터키 이스탄블 대회에서 서양 철학의 종주국인 그리스 아테네와 열띤 경합 끝에 서울 유치에 성공했다. 2008년 7월 30일 전 세계 3,000여명의 철학자가 서울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되며, 논문은 약 2,500편이 나올 예정이다.

대회 주제는 '오늘의 철학을 다시 생각한다(Rethinking Philosophy Today)'로 유교철학과 불교철학, 도가철학 등의 동양철학 관련 분과들이 처음으로 설치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유럽과 미주지역에서 번갈아 열리면서 '서양철학대회'라는 빈축을 샀으나 서울 개최를 계기로 한국을 포함해 동양철학이 세계무대에 선을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알랭 바디우(Alain Badiou·70), 륏 페리(Luc Ferry), 피터 슬로터다이크(Peter Sloterdijk·60), 빗토리오 회슬레(Vittorio Hosle·47), 티모시 윌리암슨(Timothy Williamson), 김재권(미국 브라운대 석좌교수), 쥬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등의 세계 철학계의 거물 인사들이 대거 방문할 예정이다.

다음은 주요 초청 연사.

▲프랑스 알랭 바디우(Alain Badiou·70·프랑스) = 현대 프랑스 철학계를 대표하는 인물. 파리 고등사범학교와 소르본 대학에서 수학, 철학과 수학 두 분야에서 학위를 취득했다. 파리 8대학과 고등사범학교 교수. 현재 프랑스 현대철학 ㅓ국제연구센터(CIEPFC) 소장으로 재직 중. 라깡, 데리다, 들뢰즈 등과 자웅을 겨루면서 존재론과 거대 담론의 새로운 가능성을 펼치는 독창적 철학자. 저서로는 '존재와 사건', '조건들', '윤리학', '들뢰즈-존재의 함성' 등이 있다.

▲독일 피터 슬로터다이크(Peter Sloterdijk·60) = 21세기판 니체로 불리는 독일 철학자. 1983년 펴낸 '냉소적 이성 비판'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어로 씌어진 책 중 가장 많이 팔려나가 독일 철학계의 일약 스타로 부상. 니체와 하이데거를 비판 계승했다는 찬사와 나찌즘과 잇닿은 궤변론자라는 악평을 받은 문제적 철학자. 저서로는 '영역들', '인간농장을 위한 규칙', '인간복제에 관한 철학적 성찰' 등이 있다.

▲빗토리오 회슬레(Vittorio Hosle·47) = 독일 현대철학을 대표하는 소장학자. 자신의 학문적 깊이와 사상을 담은 박사학위 논문 '진리와 역사'로 독일의 대표적 철학자 '가다머'로부터 '2,500년 서양철학사에서 드물게 나오는 천재'라는 극찬을 받음. 저서로 '헤겔의 체계1,2', '현대의 위기와 철학의 책임' 등이 있다.

▲뤽 페리(Luc Ferry, 프랑스) =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하고 신-개인주의 운동을 주도하는 현대 프랑스의 대표적 정치철학자. 고대철학과 칸트 이후 독일 관념론과 현대 독일철학에도 정통하다. 저서로는 '정치철학' 총 3권 등.

▲티모시 윌리암슨(Timothy Williamson, 영국) = 현대 영미분석철학을 대표하는 영국 철학자. 언어철학에서 의미의 모호성(Vagueness) 문제와 관련해 '인식주의(Epistemicism)라고 불리는 새로운 이론을 개척함. 주요 저서로는 '동일성과 구별', '모호성', '지식과 그 한계' 등.

▲김재권(Jaegwon Kim, 한국/미국) =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철학자. 형이상학과 심리철학 분야의 대표적 철학자. 코넬대, 존스 홉킨스대, 미시간대학 등에서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미국 브라운대 철학과에서 폰스 석좌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수반과 마음', '심리철학', '물리계에서의 마음' 등이 있다.

▲쥬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미국) =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주의 이론가. 퀴어(Queer) 이론의 창시자. 현재 버클리 대학 수사학 및 비교문학과에서 맥신 엘리오트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저서로는 '젠더 트러블',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 '흥분하기 쉬운 말', '안티고네의 주장', '불확실한 삶' 등이 있다.

이밖에 어네스트 르포어, 장-뤽 마리옹, 이마미치 도모노부, 렝롱 등이 초청 강연을 위해 방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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