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난 허덕이는 학회에 지원책 시급

심각한 재정난에 허덕이는 학회에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회비만으로는 학회를 운영하기 어렵고, 학술진흥재단(이하 학진)이 지원해주는 보조금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이러다보니 학회가 정부부처나 기업 등을 찾아다니며 손을 벌리는 ‘안쓰러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학술진흥재단(이하 학진)에 이름을 올린 학회는 인문·사회과학·자연과학·공학·의약학·농수해양·예술체육·복합학 8개 분야 총 1572개. 이중 42%에 달하는 662개 학회가 회원 300명 이하 소규모 학회다. 301~500명 규모는 404개, 회원 500명을 넘는 곳이 506개고, 이 중 1000명이 넘는 대형학회는 203개나 된다. 하지만 재정난에서 자유로운 학회는 그다지 많지 않다.

학회 운영 기금은 크게 자체 기금과 외부 지원비로 나뉜다. 자체 기금은 회원회비와 회원기부금이 있고, 외부 지원비는 기업체 기부금과 민간기탁 등이 있다. 학회는 “회원회비와 회원기부금만으로 운영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목소리를 모은다. 하지만, 회원들이 내는 돈만 가지고 학회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기는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모 학회 총무이사는 “꼬박꼬박 회비를 내는 회원은 절반이 채 안 된다”고 밝혔다.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은 미흡하기만 하다. 학진의 지원제도는 학술대회개최 지원사업과 국내·외 학술지발행 지원사업 등이 있는데, 목마른 학회에 단비가 되질 못한다. 학진 관계자는 “지원을 원하는 학회는 많지만 예산이 너무 협소해 학회의 불만이 많다”며 “사실 예산 확충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학회는 외부기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지난달 26일 대선 예비후보의 대변인들을 불러 상공회의소에서 ‘정책공약 토론회’를 연 한국정책학회의 강제상 총무이사는 “연초부터 선관위와 준비한 행사”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선이나 지방선거 때 나오는 후보들의 정책과 공약을 분석하는 일은 선관위와 색깔이 잘 맞는다. 이렇게 프로젝트 방식으로 학회가 기금을 마련하는 것은 상당히 괜찮은 형태”라고 설명했다.

정회원만 2000여 명에 달하는 한국정치학회의 총무이사는 “회비 외에 다른 지원 없이 학회를 운영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그나마 우리처럼 회원이 많고 잘 알려진 학회는 기금을 얻기 수월한 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최 총무이사는 “매년 10여 차례 학술대회를 여는데 작년 다르고 올해 사정이 달라 기금 마련에 곤란을 겪곤 한다”고 말했다.

이런 경우 학회장의 활동은 상당한 ‘힘’을 발휘한다. 대형학회 중 하나인 한국경제학회는 회원회비뿐 아니라 한국교육개발원(KDEI)과 한국은행 등에서 기관회비를 받고 있지만 기금이 모자라기는 마찬가지. 학회장은 모자라는 부분을 채우려 부지런히 뛰어야 한다.

이영선 한국경제학회장은 “학회장이 발이 넓으면 개인적 인맥으로 기업에 광고를 부탁하기도 하지만 기업이 예산을 다 짜놓은 상황에서 돈을 빼주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업무인수인계, 연속성 등을 고려해 차기 회장을 미리 뽑아놓지만, 사실 회장에 앉혀 놓고 미리 인맥을 넓히라는 의미도 있다”고 덧붙였다.

주인기 한국경영학회장 역시 “1500개가 넘는 학회가 모두 기업을 찾아가 돈을 달라고 하는데 기업이 어떻게 다 주느나?”며 “그러다보니 학회장 인맥이 중요한 게 사실이고, 학회장을 뽑을 때 모금 능력도 따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주 회장은 이런 현실에 대해 “학자들이 기업한테 돈 받는 모양새가 보기에는 안 좋지만 어쩔 수가 없지 않느냐”며 “적극적인 지원이 없으면 학회 활동이 위축되고, 위축된 학회 활동은 또다시 재정난을 부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재정난은 소형학회일수록 더욱 심각하다. 회원 수가 300여 명 남짓한 국제언어인문학회의 박충연 총무이사는 “연회비를 내는 회원이 10%에 불과하지만 차마 회비를 내라고 강요하지는 못한다”며 “대부분 소형학회는 헌신적인 몇 사람 덕에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박 총무이사는 이에 대해 “순수학문 분야는 관련기관에서 기금을 받기도 어렵다. 막말로 ‘연구로 밥벌이도 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안지혜 영상예술학회 총무이사는 이에 대해 “학회에 따라 기금을 타는 곳과 타는 방식이 많이 다른데, 대부분 소형학회는 지원받을 곳이 한정되어 학술대회를 열거나 할 경우 돈이 많이 부족하다”며 “학진이 지원 항목을 조사해 알맞게 늘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방에 있는 학회들에도 관심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순이 한국예술학회 총무이사는 “생긴지 3년 밖에 안 되는데다가 부산에 있다 보니 학회 키우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한국예술학회는 자금난 때문에 현재 법인화 단계를 밟고 있다. 이 총무이사는 “학진에 지원을 요청하니 ‘학회가 너무 많아 지원을 해 줄 수 없다, 일단 열심히 해서 학회를 키우라’고 하는데 열악한 소형학회는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다”며 “정부가 나서서 열심히 하려는 학회를 키워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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