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1_프롤로그 => 고학력 미취업자 현황과 문제

"개인문제 아닌 사회전체 과제로"

'현실 반성·평가' 위기 극복 출발점
교육-노동정책 연계 고급인력 활용

IMF 구제금융이 우리 사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지 10개월. 대학은 고학력 실업자 로 넘쳐나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까지 나서서 대졸 취업난 해소책을 지시하지만 취업률은 제자리 걸음이다. 지난 88년 창간이래 대학사회와 동고동락을 함께 해온 한국대학신문은 대 졸 미취업자의 실상, 정부의 대졸 실업 대책, 정당 및 사회단체의 활동상을 집중 분석, 대안 모색을 위한 특별기획 시리즈를 마련한다. 특히 본지가 「전국 고학력 미취업자 대책본부」 와 함께 대학 구석 구석을 돌며 분석할 고학력 실업 실태 보도는 정부, 기업, 사회단체의 정 책집행에 좋은 참고자료이며 지금 파괴된 '인재밸트'가 10년후 한국사회에 더 큰 위기를 가 져올 수도 있다는 경보음이 될 것이다. (편집자 주)

본지, 실업대책·활동상 등 집중보도

고려대 취업정보과 관계자들은 최근 아주 당황스러운 일을 경험했다. 지난 15일 2학기 취 업특강으로 마련한 'IMF 이후 국내기업의 현주소와 취업준비 대책'에 참여한 고려대 학생들 이 생각보다 훨씬 적은 70여명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취업정보과가 마련한 이 특강은 지난 8월 총학생회장이 김정배 총장에게 대졸 취업난의 심각성을 호소, 학생처가 심혈을 기울여 마련한 8번의 취업특강 중 첫 강의였다. 최소 3백명 이상을 예상하고 준비한 팜플렛이 대부분 뜯기지도 않는 채 행사장 밖에 쌓여 있었다.

취업 안돼 학생들 '자포자기'

이같은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결국 학생들의 '자포자기' 때문. 대학 내 분위기가 침체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대학 대부분의 상황이 이와 유사하다. 누구도 취업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며 심지어 지난 8월부터는 졸업자 취업률 통계조차 내 는 학교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졸 미취업자 문제를 전담하고 있는 노동부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다. 건국이래 대졸 미취업자만을 위한 정책을 세워 본적이 없었기에 노하우가 있을 턱이 없 다. 노동부의 한 관계자는 "저학력 실업자 재취업 교육은 꾸준히 시행해본 경험이 있지만 고학력 미취업 실업 문제에 대한 고민은 올해가 처음"이라고 토로했다.

정책 추진에 있어서는 예산 문제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학교육을 전담하는 교육부는 예비비 1백억원으로 5월에야 재취업교육을 시작했지만 대 졸 미취업자는 교육 대상이 아니었다. 노동부는 6월에서야 관련규정을 정비하고 예산을 마 련해 '대졸 인턴사원제 시행령'을 발표한 정도였다.

그나마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인턴제는 대졸 미취업 인력의 최대 수요자인 기업들의 호응이 적어 현재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다. 지난 7월 30대 주요 대기업과 연수시설이 있는 한전, 한국통신, 포철 등 주요 공기업에 지시한 인턴제 권고안도 구조조정과 맞물려 실천이 어려운 상태. 대통령 지시사항이었던 '대졸 인턴 공무원제'는 인턴 공무원의 법적 지위와 기 존의 공무원 채용 내정자도 임용대기인 상황에서 인턴공무원을 뽑을 수 있는가 하는 윤리 문제까지 겹쳐 방향이 불투명하다.

이 와중에 대학생들의 '청년실업문제해결' 요구는 점점 거세다. 한총련이 오는 30일 동맹 휴업을 할 예정이고 서울지역에서만 16개 대학에서 미취업 문제를 전담하는 특별위원회를 총학생회 산하에 구성, 활동하고 있다.

그러면 현 난국을 타개할 방안은 어디서부터 찾아야 하는가.

전문가들은 우선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데 입을 모은다. 국가적으로 노동-교육 정책 이 원활히 연계되고 취업정보를 원활히 유통시키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의견 이다.

실제 YMCA가 지난 7월 서울지역 4년제 대학 남학생 졸업예정자와 기졸업자 1천명을 대 상으로 조사한 결과 친구 등 아는 사람을 통해 취업정보를 얻는 비율이 30%인 데 비해 인 력은행 등 행정기관을 통한 경우는 3%에 불과해 대학생들이 공공정보망을 크게 신뢰하지 않거나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대졸 미취업자에게 특화된 구인업체뿐만 아니라 교육업체를 알려주는 취업정보 시스템 제 공도 정부와 대학이 할 일로 지적된다.

취업망 구축 정보공유 시급

이와 관련 노동부 고용정책실은 "내년 2월에는 '고용정보 네트워크'시스템을 완성해 대학 등 교육기관에 선별적인 고용정보를 제공하는 2차 고용정보 확충사업을 전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노동부가 구축하고 있는 시스템은 노동부와 지방노동사무소, 인력은행을 연결 하는 것이다.

고급 인력의 취업정보망 구축과 함께 시급한 해결과제는 취업시장의 다양화이다.

따라서 정부는 인턴사원 몇만 명을 6개월간 교육시켜 발등의 불만 끄겠다는 근시안적 정 책에서 탈피해 대졸자들이 중소기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대졸자들 이 중소기업을 기피한 주요 원인은 고용 불안정과 장래성의 미흡이었다. 중소기업이 고용안 정을 도모할 수 있는 정책개발과 시행을 통해 취업기회의 다양화를 꾀하는 정책 시행이 시 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근시안적 단기처방 없어야

교육체제를 혁신하는 일도 서둘러야 한다. 지금까지의 교육정책은 대학 입학에 대한 정책 은 있어도 대학졸업에 대한 정책은 없었다. 대학 졸업은 곧 고급인력의 공급으로 이어진다 는 점에서 교육과 직업의 연계에 필요한 관련 기관의 보다 긴밀한 정책 협조가 필요하다. 30세 이하 청년 실업률을 한 자리 수로 낮추는 데 성공한 영국은 우리 정부조직으로 보면 노동부의 역할을 흡수한 「교육·고용부」(Department For Education And Employment)가 대학교육과 연계해 효율적인 고용정책을 펴고 있다.

대학도 할 일은 많다. 우선 소규모의 비전문인력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취업지도실을 효 율적으로 개편하고 통계 지향, 실적 지향의 근무자세에서 벗어나 종합 정보서비스 공간으로 만들고 내부 인력을 전문화 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부터 99년 2월까지 대졸 미취업 실업 인구는 40여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1~2년 신입 사원 채용을 보류하는 기업이 부지기수이며 대리급 사원이 가장 말단 사원인 곳 도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소수라도 채용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지금 끊어진 기업의 인력밸트는 앞으로 각 기업에 지금보다 더 큰 위기상황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국가 차원에서는 이보다 문제가 더 심각해 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대졸 미취업자 해결 방안은 우선 이같은 심각성을 공감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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