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간브리핑]"연구성과 부족한 교수 안고 갈수 없어"



교수사회에 실력검증 바람을 일으킨 서남표 KAIST 총장과 삼성그룹의 경영방식 및 미국식 테뉴어 제도를 앞서 도입한 서정돈 성균관대 총장. 국립대와 사립대에서 각각 개혁 전도사로 통하는 인물들이다.

서남표 총장은 "연구성과가 부족한 사람을 안고 갈 수 없다"며 테뉴어 강화는 개혁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서정돈 총장은 "미국에선 MIT 테뉴어에서 탈락한 교수를 데려가기 위해 너나 없이 경쟁을 벌인다"며 국내 교수사회의 폐쇄성을 지적했다.

한국에서 세계적인 대학이 나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대학과 교수혁신이 왜 필요한지 지면을 통해 거침없이 의견을 교환했다.

-KAIST 테뉴어 심사에서 40%가 탈락해 교수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서정돈 총장=개혁은 한 걸음 앞서나가면 늦다고 하고 세 걸음 앞서 나가면 너무 빠르다고 비판한다. 두 발짝 앞선 적절한 개혁이 필요하다. 대학 여건을 고려해야 한다. 세계적 수준의 대학이 되기 위해서는 교수 임용심사가 엄격해져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얘기다. 그러나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열 걸음 앞서고 있는 하버드대를 따라가려 하면 안 된다.

▶서남표 총장=KAIST 테뉴어 심사가 마치 교수들을 못되게 만드는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교수들을 보호하고 학교 목적에 부합하는 사람을 걸러내기 위한 것이 바로 테뉴어 심사다.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한 연구대학인 KAIST가 교수들의 연구성과로 엄격하게 평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연구성과가 부족한 사람들까지 모두 안고 갈 수는 없다.

-KAIST와 종합대학은 교수평가 방식이 달라야 하지 않을까.

▶서남표 총장=KAIST에서 하는 교수평가 기준을 다른 대학에 본받으라고 할 이유가 없다. 대학마다 설립목적이 다르다. 무조건적으로 KAIST와 같은 방식의 혁신을 한다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대학의 목표가 무엇인가에 따라 개혁방향을 잡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나라에는 4년제 종합대학과 연구대학, 특수대학 등 세 종류 대학이 있다. 이들 대학은 각각 지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일 수도 있고 새로운 기술을 창출하는 것이, 사회 봉사활동을 활발히 하는 것이, 지도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목적일 수 있다.

▶서정돈 총장=KAIST는 교육부 산하도 아니고 이공계 중심대학이기 때문에 교수평가는 물론 연구성과를 평가하는 기준을 세우기가 종합대학보다 용이하다. 인문사회계열이 있는 종합대학은 적절한 기준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연구여건이 안 좋을 때 테뉴어를 받은 교수는 대학교육 안정을 위해 노력하던 분들인데 1980년대 이후 좋은 조건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은 교수와 똑같이 대우를 하는 건 불가능하다. 미국식 테뉴어제도 도입은 필수지만 학교 여건에 맞춰서 해야 할 것이다.

-교수평가 기준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가 논란이 있다.

▶서남표 총장=논문 숫자를 중시하는 BK21과 같은 우리나라 현실을 생각하지 않고 테뉴어 심사를 너무 엄격하게 하는 것 아니냐는 일부 지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필요하다면 BK21 심사기준도 바꿔야 한다. 한 나라에 세계 10대 대학을 갖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중요한지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돼 있지 않다. 세계적인 대학들은 교수를 평가할 때 논문의 수보다는 얼마나 임팩트 있는 논문을 내는가를 본다.

▶서정돈 총장=지금 당장 하버드대나 MIT와 똑같은 기준을 적용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20년 동안 헌신적으로 연구한 국문학과 교수가 책 한 권밖에 안냈다고 해서 연구실적이 나쁘고 놀았다고 볼 수는 없지 않나. 학문분야 특성을 고려해 공헌한 바를 100% 인정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려고 고민 중이다. 종합대학에 연구대학과 같은 획일적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

-테뉴어 심사에서 떨어진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문제인 것 같다.

▶서정돈 총장=학교가 연구중심인지 교육중심인지 미국에서는 구분이 뚜렷하다. 그래서 연구중심 대학의 테뉴어 심사에서 떨어진 교수들은 교육중심 대학에서 못 데려가 안달일 정도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자존심을 내세우는 문화 때문인지 KAIST나 서울대에서 테뉴어에 떨어졌다고 하면 완전히 능력 없는 사람 취급받을까봐 쉬쉬하면서 덮는 분위기다.

▶서남표 총장=맞는 말이다. 테뉴어 심사에서 떨어졌다고 해서 그 사람이 그 분야에서 능력이 없다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 이번에 테뉴어 심사에서 떨어진 사람들도 훌륭한 연구성과를 갖고 있는 분들이다. 능력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질적으로 우수한 교수진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방안을 갖고 있는가.

▶서정돈 총장=MBA분야와 이공계 분야의 테뉴어 심사를 강화했다. 국제저널 게재 기준도 2편에서 16편으로 강화했다. 질적인 평가도 가능하도록 외국대학의 동료평가(peer review)를 받도록 하고 있다. 느끼지 못하는 사이 물의 온도가 서서히 높아져 펄펄 끓듯이 해야 조직이 따라온다. 우리나라 대학의 문제는 연구여건도 선진국에 비해 열악하고 교수들이 해야 하는 행정잡무가 많아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교육행정 잡무를 단순화ㆍ최소화하려 노력하고 있다.

▶서남표 총장=대학들이 앉아서 우수한 교수들이 지원하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연구와 교육에 가장 열정적인 사람은 박사학위를 막 받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교수 채용 권한을 갖고 있는 학과장들에게 경쟁대상으로 삼는 대학 5곳을 돌아다니며 박사학위 예정자나 박사후 과정(Post-Doc) 사람들 중 새로운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을 찾아내도록 요구하고 있다. 있는 교수를 관리하는 것만큼 교수를 새로 뽑는 것도 중요하다.

-대학들이 최근 '글로벌 대학' '국제화'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서남표 총장=KAIST가 목표로 하는 분야가 바로 '국제화'다. 2010년까지 모든 강의를 영어로 진행한다. 국외에서 열리는 학회를 가면 한국 과학자들은 논문 하나 발표하고 한국 과학자들과 어울려 다니는 경우를 많이 봤다. 적극적으로 외국 과학자들과 어울려야 획기적이고 세계적인 연구성과를 낼 수 있다. KAIST는 현재 6명에 불과한 외국인 교수 숫자를 최대 40%(280명)까지 끌어올릴 예정이다. 신규 채용하는 교수 대부분을 외국인으로 할 수도 있다.

▶서정돈 총장=동아시아학술원, 나노연구소, MBA를 중심으로 세계화를 집중 추진하고 있다. 성균관대가 평택에 제3캠퍼스를 건립하는 것도 국제화를 추진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외국인 교수 자녀가 다닐 학교를 충분히 짓는 등 외국인 교수 생활환경부터 개선하려고 한다.

-우리나라 대학들이 나가야 할 방향은.

▶서정돈 총장=시스템적으로 사립대가 국립대보다 앞설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하다. 구조개혁보다 학문적 특성화가 대학의 살길이다. 학부 때부터 컨버전스를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학문의 독립성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런 건 중세 초기 대학들에서나 통하는 얘기다. KAIST나 고려대 등에서 새로운 등록금 개념을 들고 나오는데 돈 문제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는 학생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서남표 총장=KAIST 학생 1인당 1년에 투입되는 돈은 4500만원 정도인데 학업성적이 떨어지는 학생들에게 받으려는 1500만원의 수업료는 투입 대비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공대는 학부생 기준으로 교수 1인당 학생수는 30명 수준이다. 미국 공대 졸업생 수는 연간 7만명인데 우리나라 공대 졸업생 수도 7만명이다. 과연 우리나라 상황에서 매년 7만명의 공대 졸업생이 필요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부터 던져봐야 한다.

■ 서남표 총장은 누구

1936년생인 서남표 총장은 MIT에서 학ㆍ석사를 마치고 64년 카네기멜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34세에 MIT 기계공학과 교수로 임용된 그는 공리적 설계(Axiomatic Design)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다. MIT 교수 재직 시절 가장 연구비를 많이 받는 교수로 유명했다. 50년 넘게 미국 생활을 하다 지난해 7월 카이스트 총장에 부임해 대학 개혁을 이끌고 있다.

■ 서정돈 총장은 누구

1943년 대구생인 서정돈 총장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심혈관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97년 서울대에서 성균관대 교수로 자리를 옮긴 서 총장은 2003년 '의사 출신 총장'으로 화제를 뿌리며 총장에 임명됐다. 부임 이후 반도체ㆍ휴대폰학과 신설, 6시그마 도입 등으로 경쟁력을 강화해 성균관대의 대학순위를 높이는 데 기여했고, 이를 인정받아 올해 연임됐다.(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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