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명한 대학들은 거의가 지방에 소재하고 있다. 공학응용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 을 자랑하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을 비롯한 미시간대, 미네소타대, 조지아대 등 우리나 라에도 잘 알려진 이 대학들의 소재지는 모두 지방이다. 캘리포니아공대의 경우 불과 20~25 년 전만 하더라도 이름 없는 시골대학에 지나지 않았다. 연구중심대학으로 탈바꿈하면서 기 초과학분야에서 세계적인 대학으로 부상, 명성을 날리고 있다. 캘리포니아에 소재하는 스탠 퍼드대학은 또 어떠한가. "이 대학이 없었다면 실리콘밸리는 존재할 수 없었다"는 신화를 창조해 냈다.

21세기로의 대전환을 앞두고 한국의 대학들은 어디로 갈 것이며 무엇을 해야 할 것인 가.

지금 우리 대학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이 같은 당면과제에 대해 아무도 명쾌한 대답 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특히 날로 황폐화 해 가는 지방대학의 공동화 현상은 이제 교육문제에서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됐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이후 부실기업과 금융기관이 퇴출되듯 부실운영과 비 리에 연루된 지방대학들이 줄줄이 퇴출되는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 사정 이 더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 수년내 대학입학 지원자가 줄어 폐쇄되는 대학이 줄을 이을 것이고 교육시장이 개방되면 사정이 더 악화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존립의 위기에 선 지방대학들은 요즘 의원입법으로 국회에 제출된 '국가인재의 지역간 균 등 등용 촉진법안'에 잔뜩 기대를 걸고 있다. 이 법만 국회를 통과해 시행되면 우리나라 지 방대학들도 미국의 지방대학처럼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는 주장이 다.

서울소재 대학들의 우수인재 독과점 현상으로 쇠퇴를 거듭해온 지방대학들은 '인재 지역 할당제'가 '대학서열화'라는 망국병을 치유하는 대안적 성격으로 규정하고 있다.

지방대학 총장들이 제시한 '인재 지역할당제'란 사법시험, 행정고시, 공인회계사 등 9개 국 가고시의 합격자를 지역별 인구비례로 뽑자는 내용.

서울, 경기지역을 제외한 전국 15개 지방 주요대학 총장들과 12개 지방 시도의회 의장들 이 참여한「인재지역할당제 추진위원회」(공동대표 박찬석 경북대총장)는 설문조사와 공청 회까지 마쳤다. 이미 여론수렴은 끝내 놓은 셈. 또한 공청회에 참가한 국민회의 한화갑 의원 등 여야의원 45명의 의원입법으로 이 법안은 지난 3월 임시국회에 제출해 놓은 상태다.

지방화시대를 맞아 지방대 총장들이 교육분야에서만이라도 중앙집중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은 일단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30년간 정부의 일관된 국토개발정책은 지역균등 개발 정책이었다. 그러나 해가 갈수 록 서울과 지방의 격차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서울을 비대화시킨 결과를 초래했다. 한마 디로 정부정책은 실패한 것이다. 그래서 서울과밀과 지방 황폐화의 원인은 '우수학생 서울 집중'으로 시작됐다는 추진위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이 많다. 서울의 대학으로 가지 않으면 안돼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이 구조적인 문제는 시장경제원 리로만 해결할 수 없는 실정이다. 정부가 대안 없는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추진위가 그 해결 책으로 '인재 지역할당제'를 들고나와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인재 지역할당제'를 둘러싼 반대세력도 만만치 않다. 반대의 중심세력은 수도권 소재대학. 무엇보다 지역할당제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조치로 위헌 소 지가 있다는 것. 자격시험이나 공직임용시험에서 능력이나 실적 외에 거주지역에 따라 차별 한다는 것은 평등과 기회균등의 이념에 위배된다는 논리다. 또한 갖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역별 학생수를 무시하고 인구비례로 할당할 경우 대학이 많이 설립된 지역의 응시자들은 불이익을 받게되고, 성적은 우수한데 수도권에 거주한다는 사실만으로 탈락되는 역차별 현상을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에 대해 반문하고 있다.

또한 그 지역에 거주했다고 하여 쿼터에 적용하여 고위공직에 임용되는 혜택을 주는 것은 오히려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결과를 불러온다는 점등이 반대세력의 주장이다.

지방대학에 우수한 학생들이 진학하여 고등교육이 균형 있게 발전하도록 종합적인 정책을 수립, 추진해야할 필요성은 절실하다. 이 문제는 정부와 당사자인 지방대학이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아무리 제도를 개선하고 지원을 해 주어도 받아들일 수용자세가 돼 있지 않으면 좋은 결 과를 기대할 수 없다. 대학도 기업체와 마찬가지로 효율성과 생산성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최적화 할 수 있는 구조로 바꿔 나가야 한다. 그리고 지역의 경제, 복지, 문화의 향상에 기 여, 지역사회와 함께 발전하는 대학으로 성장해 가야한다. 미국의 지방대학들이 정부지원이 나 제도의 개선 없이 실정에 맞는 분야를 특성화, 명문대학으로 변신한 과정을 눈여겨볼 필 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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