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간브리핑]강성모 UC머시드-백성기 포스텍 총장 대담



캘리포니아 주립대 계열 UC머시드 강성모 총장과 포스텍(POSTECH.옛 포항공대) 백성기 총장이 한국 대학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해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좌담은 25일 오후 중앙일보사에서 진행됐다. 강 총장은 올 3월 한인 최초로 미국 대학 총장에 올라 화제가 됐다. 강 총장은 서울대.포스텍 등과 학생.교수 교류 협정을 맺기 위해 방한했다. 백 총장은 9월 포스텍의 총장으로 부임했다. 포스텍은 2007년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종합평가부문 1위를 차지한 대학이다. 두 총장은 "자기 반성이 없는 교수는 죽은 교수"라며 교수 사회의 혁신을 촉구했다.



▶백성기 총장=최근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테뉴어(tenure.정년 보장) 심사에서 교수들이 대거 탈락했다. 서울대가 공대 신임교수 공채에서 한 사람도 뽑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대학 혁신이 한창이다.


▶강성모 총장=테뉴어 시스템이 정착된 미국에서는 놀랄 일이 아니다. 실력 없는 사람을 내보내는 것은 당연하다. 하버드나 예일 같은 명문 사립대는 완벽하게 테뉴어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 교수 승진 심사 때마다 전국에 광고를 내 더 우수한 교수를 확보하려 한다.


▶백 총장=한국 대학에선 테뉴어 심사를 통과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이제는 심사의 문턱을 얼마나 높일지가 중요해졌다. 대학의 경쟁력은 교수의 경쟁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교수의 질을 높이기 위해 기준을 얼마나 빨리, 어느 정도까지 높이느냐가 중요하다. 총장 선출 방식도 개혁 대상이다.


▶강 총장=미국에서 직선제로 총장 뽑는 곳은 없다. UC 계열 대학들은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임명한 대학 이사회 멤버들과 해당 대학 교수.졸업생.재학생.교직원이 참여하는 총장선출위원회가 전국에서 수십 명의 후보자를 뽑는다. 3, 4단계 선발 과정을 거쳐 UC 계열 10개 캠퍼스를 총괄하는 대표총장이 최종 후보 3명 중 한 명을 뽑는다.(웃으며) 64명의 후보와 경쟁해 총장이 됐다.


▶백 총장=한국은 급격한 민주화 과정에서 교수들에게 총장 선발 권한이 지나치게 많이 주어졌다. 그 부작용도 보았으니 한국식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일부 대학들이 졸업생.재학생 등을 총장 선임 과정에 참여시키거나 간선제로 전환하는 등 제도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강 총장=한국은 교육부의 대학 간섭이 많아 운영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대학도 반성할 점이 많다. 미국에서도 고등교육에 대한 비판이 심하다. 대학교수들이 학생을 위해 얼마나 연구하고 준비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1800년대 미국 대학에서도 똑 같은 비판이 있었다. 미국은 그런 자기비판을 통해 계속 발전해 왔다. 과학자가 자기만족에 빠지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 있는데, 대학도 마찬가지다. 자아비판을 하지 않는 교수와 대학은 죽는다. 대학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활발할 때 교육을 더욱 잘 하기 위해 고민하게 된다.


▶백 총장=한국 사회는 대학이 국가경쟁력과 직결된다는 의식이 강하다. 이런 기대 속에서 대학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가 대학의 고민이다. 대부분의 고교생이 대학에 들어갈 정도로 고등교육의 기회는 넓어졌지만 질적인 향상이 필요하다.


▶강 총장=기업처럼 대학에서도 총장.학장들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학장.학과장을 마지못해 맡는 식이라고 들었다. 이래서는 발전하기 어렵다. 교수들이 자발적으로 학장.학과장을 맡아 새 프로젝트를 구상해 추진해야 한다. 학교마다 차이가 있지만 2년이란 임기는 너무 짧다.


1년에 SCI 논문 몇 개 썼는지보다 10년에 한 번 논문을 내더라도 얼마나 획기적인 논문인가가 중요하다. 그러려면 대학이 획일적인 기준으로 교수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 각 분야에서 능력 있는 교수를 길러내야 한다. 노벨물리학상을 두 번이나 받은 존 바딘 박사는 강의는 정말 못하기로 유명하다.


▶백 총장=대학이 발전하려면 자율권이 중요하다. 대학이 사회의 신뢰를 받으면 자율성도 확보할 수 있다. 대학인들의 책임도 크다. 대학이 분골쇄신해 경쟁력을 높이고 변화에 적극 대응하려는 자세가 돼 있어야 정부나 기업의 지원을 기대할 수 있다.


▶강 총장=대학에 자율성을 주면 대학 스스로도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낼 것이다. 믿고 맡겨 둘 필요도 있다. 학생 선발도 대학이 알아서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미국은 다 그렇게 한다. 세계화 시대에 대학은 특별한 분야에 확실한 재능이 있는 인재를 길러야 한다. 초집적 회로를 발명한 과학자 한 명 덕분에 우리가 지금 휴대전화.컴퓨터를 쓸 수 있게 됐다. 대학은 그런 인재가 나올 수 있게 교육해야 한다.


▶백 총장=지난해 포스텍 수석 졸업자가 서울대 의대에 편입해 충격을 받았다. 과학기술 분야에 특별한 재능을 가진 학생들이 비전을 발견하지 못해 다른 분야로 빠져나간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그 책임은 대학에 있다. 학생을 데려다가 글로벌 리더로 키우는 것은 대학의 몫이다. 전자공학을 전공했다고 평생 그걸로 먹고살 수 없는 시대다. 이공계 학생들도 인문.사회 예술 분야를 공부해 세계적인 기업의 리더로 성장할 수 있다.


▶강 총장=공대 나왔다고 평생 엔지니어로 살 수도 없고 살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그래서 UC머시드 대학에선 되도록이면 학과의 구분을 두지 않으려 한다. 학과의 벽을 높이다 보면 그 틈새에 놓인 분야를 놓칠 수 있다. 학문 간 교류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들이다. 샌타크루즈공대 학장 시절 컴퓨터게임 디자인 분야를 개척했다. 예술과 컴퓨터공학을 융합해 사양길에 접어든 컴퓨터공학을 살려 냈다.


▶강 총장=대학이 국제경쟁력을 높이려면 국경을 뛰어 넘어야 한다. 서울대 공대 학장을 뽑는데 전국에 광고를 냈다는데 앞으로는 전 세계에 광고를 내 최고의 학자를 모셔 와야 한다. 서울대 교수 충원 못했다는데 미국에선 그런 것은 뉴스도 아니다.


▶백 총장=대학마다 우수한 교수를 데려가기 위해 경쟁이 치열하다. 한국 대학이 세계적인 대학으로 성장하는 데 교수가 꼭 한국인이어야 하나. 국경을 넘어 세계 어디서나 해당 분야의 가장 우수한 인재면 된다.


▶강 총장=대학 경쟁력은 교수의 질에서 나온다. 미국에서는 연구 성과가 시원찮으면 쫓아 낸다. 성과에 대한 외부 시선에 급급하지 말고 교수의 자질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공상할 시간도 줘야 한다. 구글은 5일 근무일 중에 하루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시간을 준다. 기초연구력은 그런 공상에서 나온다. (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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