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MBA(경영전문대학원)’가 지난 9월 한 돌을 맞았다. 저만치 앞서가는 북미권 MBA를 추격하려면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까. 

‘월스트리트 저널’ 의 2007년 세계 MBA 순위 7위로 미국의 MIT(5위), 컬럼비아대(6위) 등 세계유수의 MBA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유럽내 최고의 명문인 프랑스 파리경영대학(이하 ESSEC)의 피에르 타피(Pierre Tapie) 총장이 최근 한국을 방문했다. 

ESSEC은 세계적 경영대학 평가기관인 AACSB(Association to Advance Collegiate Schools of Business, 미국경영대학협의회) 인증에서도 유럽내 최고 점수를 얻었다.

국내에서는 서울대·연세대와 복수학위 협정을 맺는 등 국제 교류의 질적 강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프랑스 최고의 상경계 그랑제콜(Grandes Ecoles)를 이끌고 있는 타피 총장을 최근 서울대에서 만나 프랑스 대학교육의 변화상과 우리나라 대학교육개혁방향에 대해 물어봤다.

'평등교육', '무상교육'의 나라로 알려진 프랑스에 사르코지 새 대통령이 대학의 자율성 부여와 수월성 중심 교육 등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사르코지발 프랑스의 대학개혁은 ‘3불정책’을 기조로 운영되는 국내 대학가에도 신선한 충격이다.   

타피 총장은 사르코지의 대학개혁을 ▲대학 자율권 보장 제도화 ▲대학교육 투자 확대 ▲그랑제콜 집중지원 등으로 요약했다. 그는 “기존 평등성 위주 교육에서 수월성 중심 교육으로 체질을 개선하는 게 핵심”이라며 “대학교육에 대한 투자를 더욱 늘려야 한다. 사르코지 정부가 추진하는 대학교육의 방향 전환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타피 총장과의 일문일답.


- 사르코지 대통령의 대학개혁은 한국에서도 이슈가 되고 있다. 요체가 뭔가.

“크게 보면 대학의 자율권 부여,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 확대, 핵심역량을 지닌 그랑제콜의 집중육성 세가지다. 세부적으로는 8월에 대학 자율권 부여를 골자로 하는 법안이 통과됐고, 이와 함께 현 150억 유로 수준의 고등교육 예산을 200억 유로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사르코지 정부의 ‘수월성 교육’ 이념에 걸맞은 그랑제콜 활성화 방침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 대학자율화, 고등교육 투자 확대 요구는 3불정책에 반대하는 국내 현실과 비슷한데.
“자율화라고는 하지만, 기여입학에 대해서는 미국과 달리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만 프랑스 일반대학은 무상으로 운영되는 데 반해, 그랑제콜은 연 1만 유로(약 1,300만원)의 학비를 낸다. 학비 중 30% 가량은 장학금·인턴십 지원 등으로 학생들에게 환원토록 노력하고 있다. 정부가 지원해주는 제도도 있기 때문에 실제 비용은 상당히 절감된다.

(고교등급제와 관련해서는) 학생들의 지적 능력을 선별해서 뽑는 것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우수한 학생을 선발해 비용을 들인 만큼 개인과 사회에 돌려주는 교육과정이 확립돼야 사회에 필요한 엘리트를 길러낼 수 있다.”


- 프랑스는 GDP 대비 고등교육 예산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대학 연구개발비로 GDP 대비 2.2%, 순수 그랑제콜 지원 개념의 1%를 합쳐 총 3.2% 정도 된다. 의료서비스를 비롯한 공공복지 측면에서는 프랑스가 최고 수준인 데 비하면 교육에 대한 투자가 지나치게 적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사르코지 정부의 고등교육 예산 증액은 부족한 감이 없지 않지만, 긍정적 방향이라고 평가한다.”


- ESSEC의 국제화는 성공사례로 꼽힌다. 국내 대학들에게 조언한다면.

“사실 ESSEC도 예전에는 국제화 수준이 낮았다. 일례로 세계적 경영학교육인증 부여기관인 AACSB(미국경영대학협의회)도 국제화 부족을 들어 좋은 평가를 하지 않았다. 지금은 AACSB 인증 절차에서 북미 대학을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국제화의 덫’에 걸리지 않아야 한다. 국제화에도 구체적 목표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학생들에게 국제화된 환경을 체험케 하는 것인지, 석·박사학위 과정 등 연구에 있어서의 국제 인력을 활용하는 것인지 국제화의 세부 목표는 대학마다 다르다. 일률적이거나 두루뭉술한 국제화를 극복, 개별 대학의 목표를 지속적으로 견지해나가는 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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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대학들이 하나같이 AACSB 인증에 얽매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AACSB 인증의 핵심 평가기준에 경영대학의 목표(mission) 설정도 포함되는데, 일률적으로 ‘인증을 위한 인증’에 몰두한다니 놀랍다. 결국 중요한 것은 외부 평가가 아니라, ‘스스로 설정한 목표가 무엇이며 그것을 위해 얼마나 투자하고 노력하는지’라고 생각한다.”


- 대학의 적응력이 떨어진다는 기업의 평가가 많다. 프랑스는 어떤가. 

“ESSEC은 경영대학이란 점을 십분 활용해 기업과 긴밀히 연계, 기업들이 선호하는 학교로 꼽히고 있다. 기업이 요구하기에 앞서 수요를 예측해 이에 적합한 커리큘럼을 만드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그 예로 3개월에서 18개월까지 여러 과정의 기업 인턴십을 개설했다. 기업 인사 담당자와 대학간에 구축된 신뢰를 바탕으로 생명과학·부동산·화장품 업계 등 다양한 나라의 270여개 기업과 연계해 16개 트랙을 운영, 현장 경험을 쌓도록 돕고 있다.”


- 이공계 기피 현상은 프랑스도 다를 바 없을 것 같다.

“그렇다. 프랑스의 공립대에서는 수학이나 공학 등 이공계 기피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에콜 폴리테크닉을 비롯한 그랑제콜을 통해 우수인재의 유실을 피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엘리트 양성구조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우수인재가 꿈을 잃지 않을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역할도 하고 있는 것이다.”


- 서울대·연세대와 복수학위제를 운영 중인데.

“서울대는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는 지향점이 비슷했고, 연세대는 탁월한 학생·교수간 개인적 지도와 기독교적 배경이 같아 인연을 맺게 됐다. 한국과 프랑스의 사회경제적 이슈가 동질적이라, 서로의 경영문화를 배우기 쉬운 장점도 있다. 프랑스 기업들이 국제화에 나선 만큼 한국 인재들이 일하는 기회도 많아질 것이고, 상호교류 범위도 보다 넓어질 것이다.”

 

▲파리경영대학(ESSEC)은…

ESSEC은 1907년에 설립돼 올해로 100년째를 맞은 프랑스의 상경계 그랑제콜이다. 최근 기존 학제를 미국식 MBA로 바꾸고, 3년제 과정을 4년제로 전환해 270여개 기업과 인턴십을 맺는 등 개혁에 나섰다. ESSEC의 정규 MBA 과정 외에도 영어전용강의로 진행되는 1년 과정의 럭셔리 브랜드 매니지먼트 MBA, 호텔 MBA 등 특화된 과정을 운영해 다양한 기업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다. 최근의 ‘월스트리트 저널’ 발표에서 세계 MBA 순위 7위를 기록하는 등 유럽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MBA로 자부하고 있다.


<대담=이경탑 본지 부국장, 사진=한명섭 기자, 정리=김봉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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