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현실성 없는 포퓰리즘" 비판 우세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후보는 오는 2011년 대학입시를 전면 폐지하고 수능을 졸업자격시험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2011년은 현재 중학교 2학년이 고3이 되는 해.

정 후보의 '대입시 폐지론'에 대해 대학가 등 교육계가 술렁이고 있다.

정 후보는 전날(5일) 한국산업기술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기회가 늘어나는 행복한 진학-대입 폐지, 입학에서 진학으로' 공약을 발표했다. 정 후보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는 것처럼 한국교육 파행의 모든 문제는 대학입시로 통한다고 볼 수 있다"며 "대학입시를 사실상 폐지하고 선진국형 선발제도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정 후보는 "수능을 고교졸업자격시험으로 전환하고 이 시험을 통과한 학생이 1년에 2차례 이상 3~5개 대학에 복수지원할 기회를 주겠다"며 "고교졸업자격시험은 개인별 학력평가 방식이 아니라 합격.불합격 등 통과여부만을 따지는 방식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 대학은 학교생활부에 기록된 학업성적(내신)과 개성.특기, 봉사활동, 리더십 등을 판단해 학생을 선발하고 논술 등 본고사 부활 논란이 일고 있는 대학별 입시도 금지하도록 할 계획이다.

또 투명한 내신평가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학교운영위원회가 내신평가를 견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갖도록 하고, 대학이 성적에만 매달리지 않고 학생들의 창의력을 종합평가할 수 있게 전문성을 가진 입학처를 설치하도록 국고를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정 후보는 "교사들이 교권약화를 개탄하는데 학생에 대한 실질적 평가권한을 줌으로써 교권을 회복하겠다"며 "다만 교사들의 능력향상과 신뢰회복을 위해 교원평가제는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초중고교에 영어 '랭귀지 스쿨' 설치를 통한 '영어 국가 책임제' 실시 ▲대학 입시 영어를 듣기와 해석 위주에서 '말하기' 위주로 변경 등 영어 공교육 활성화 방안을 비롯, 분야별 세계 5위 연구중심대학 20개 육성 방안도 내놨다.

학생 1인당 교육비 정부 투자금액을 300만원에서 700만원으로 확대, 현재 GDP(국내 총생산) 대비 4.3%(30조원) 수준의 교육예산을 2012년 6% 수준인 70조원 규모로 증액하는 동시에 학급당 학생수를 35명에서 25명으로 줄여 일대일 맞춤형 교육을 실현하겠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대학교육 혁신과 관련해선 ▲2년제 전문대와 4년제 대학의 학위구분 폐지 ▲산업적합도가 높은 100개 사립대학에 국공립대 수준의 지원 ▲노동부 소관인 폴리텍전문대와 교육부 소관인 산업대의 통합 ▲대기업과 대학간 연구개발을 위한 매칭펀드 조성 및 세제감면 혜택 ▲연구중심대학과 직업교육중심대학의 구분 ▲전국민 평생학습 계좌제 ▲부실대학 퇴출시스템 마련 등 7대 과제를 제시했다.

정 후보는 이런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2008년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미래전략교육회의'를 설치, 사회적 합의를 통해 구체적 방안을 마련한 뒤 ▲2009년 교육 투자 및 내신 내실화 작업 시작 ▲2011년 수능 폐지 및 대입자격시험 도입 ▲2012년 새 진학제도 적용 등의 연도별 로드맵을 갖고 있다.


이에 대해 교육계는 찬반 양론과 함께 대입제도 자체에 또 한 번 손질을 가하겠다는 구상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권이 바뀔때마다 단골 공약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교육정책, 특히 입시정책이며 실제로 우리나라 대입제도는 '적응할만 하면 바뀌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이기 때문이다.

1954년 연합고사가 도입돼 대입선발 시험이 국가주관 시험으로 등장한 이래 1969년 예비고사, 1982년 학력고사로 바뀌고 1994년부터는 수능으로 대체되는 등 해방 이후 60년 간 16차례나 대입제도가 손질됐다.

'60년 간 16차례' 바뀌었다는 것은 평균 3년 10개월에 한번씩 대입 제도가 달라졌다는 얘기다.

정 후보의 공약이 실현된다면 지난 60여년 간 형태는 달랐지만 '시험에 의해 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유지돼 온 대입시험이 고교 졸업평가로 바뀌는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셈이다.

한 국립대 교수는 "공약 자체에 논리적 모순이 있다"고 비판했다. 공약대로 내신으로만 학생을 뽑으려면 대학은 고교간 학력 차이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정 후보는 고교 등급제를 반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학생부의 다양한 요소를 파악해 학생을 뽑으려면 대학이 완전한 자율선발권을 가져야 하는데 정부가 대학별 시험 금지 같은 간섭을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정 후보의 공약은 '대학 추첨제' '대학 평준화'라는 지적이다.

한 사립대 교수는 "대입을 없애는 것이 '선진국형' 선발제도라는 정 후보의 말은 잘 이해되지 않는다. 모든 선진국에 대입 시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맗ㅆ다. 또 다른 사립대 교수는 "정 후보의 공약은 교육보다는 표 계산을 하다가 나온 과도한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성격이 강하다"고 비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한재갑 대변인은 이에 대해 "수능을 자격고사화하면 사실상 의미가 없어지고 내신으로 뽑아야 한다는 얘긴데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특히 당장 2011년까지 정착시키겠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상당히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애순 대변인은 "입시를 자격고사화하는 것은 환영하며 바람직한 방향으로 보지만 국ㆍ공립대 통합전형을 통한 공동학위제 도입 등 세부 방안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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