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복동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전남대분회 교육국장

2007년 11월, 울긋불긋 단풍잎으로 가득한 캠퍼스의 가을 빛깔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러나 우리 비정규교수들은 이러한 낭만적 풍경에 마냥 도취되어 있을 수 없다. 형형색색의 가을이 잉태하고 있는 매서운 겨울의 고통스러움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한국비정규교수 노동조합 집행부는 서울의 국회 앞, 부산의 한나라당 권철현 의원 당사 앞 차디찬 길거리에서 61일째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무엇이 연구와 강의에 몰두해야 할 우리를 길거리로 내몰고 있는가?

문제의 발단은 1977년 12월 3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구집권을 위해 폭압적인 10월 유신을 단행한 박정희 정권이 개정한 '교육법' 제75조에서 교원의 범주를 전임강사로 한정함으로써 법으로 보장되었던 강사들의 교원지위를 박탈하였기 때문이다. 독재정권이 지식인을 통제·억압하기 위해 개악한 독소조항은 민주개혁세력을 자처하며 ‘학문후속세대 양성 대책 및 비정규직 대학교수 대책 강구’를 12대 국정과제의 기치 가운데 하나로 내세운 참여정부에 와서도 버젓이 비정규교수의 삶을 옥죄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문제의 고등교육법 제14조 2항은 "학교에 두는 교원은 총장 및 학장 외에 교수·부교수·조교수 및 전임강사로 구분한다"고 명시함으로써 시간강사를 교원에서 배제하고 있다.


그렇다면 비정규교수의 교원으로서 지위 회복을 명문화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의 당위성은 분명하다. 고등교육법 제14조 2항은 한 마디로 독재정권이 지식인의 입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만든 대표적인 악법의 불순한 의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따라서 고등교육법 개정은 밝은 세상의 후미진 골목을 어두운 시대의 악령처럼 어슬렁거리는 독재의 잔재를 근본적으로 제거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는 민주와 평등의 올곧은 사회를 지향한다는 시대정신과도 부합한다.


오늘날 비정규교수들은 헤아릴 수 없는 야만적 차별에 노출되어 있다. '맘몬(Mammon)의 탑'으로 전락한 대학에서 일용잡급직 이하의 취급을 받고, 노예 상태에서 노동을 하며, 생존권이 송두리째 위협받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또한 이른바 '비정규직보호법'의 보호 대상에서도 제외되는 등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따라서 어떤 보호막도 없이 학문적 열정과 자긍심으로 살아온 6만여 비정규교수들과 그 가족들의 생존권 보호를 위해서도 법 개정은 시급하고도 중요하다.


오늘날 대학은 시대의 흐름에 뒤쳐져 반민주적 위계질서가 아직도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제 대학개혁의 관건은 모든 교육 주체가 평등한 입장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의논할 수 있는 상호소통의 교육의 장을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는 가의 여부에 달려있다. 비정규교수는 교육의 주체로서 대학에서 이뤄지는 전체 강의의 40%를 담당하고 전임교원과 똑같이 교육과 연구라는 동일한 노동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원이 아니라는 단 한 가지 이유로 대학 내의 모든 논의구조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어왔다. 이것은 대학발전과 학생들의 정당한 학습권을 담보한다는 점에서도 결코 바람직스럽지 못한 현상이며, '지식기반사회'라는 말을 한갓 소리 높여 외쳐대는 일회성 구호로 퇴색시킬 뿐이다.


지난 10월 12일 대학 강사의 교원지위 회복을 위한 ‘고등교육법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교육위원회에 상정돼 현재 법안심사소위 의결, 본회의 의결이라는 절차를 남겨놓고 있다. 이번 정기국회는 11월 2일까지 국정감사를 마치고 대통령선거 일정으로 인해 11월 23일 앞당겨 끝난다. 국회는 ‘고등교육법일부개정법률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조속히 의결하여 비정규교수에게 교원지위를 부여하고, 정부를 이를 위한 재정확보에 나서야 한다. 이것만이 '맘몬의 탑'으로 전락한 대학을 곧추 세워 학문공동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길이다.

이제 비정규교수는 전임교수가 되기 위한 통과의례나 징검다리가 아니라 엄연히 독립된 직업이다. 대학은 비정규교수들의 신념을 실현하는 장이며, 진리를 밝히는 방이며, 희망을 일구는 땅이다. 어떠한 시련이 우리의 앞을 가로막아도 우리는 대학을 떠날 수 없다. 우리 비정규교수들은 존재의 터전인 대학의 진정한 교육민주화와 더불어 주인이 되는 세상을 위해 끝까지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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