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나 전철에는 경로석이 있다. 노인들을 편안히 모시기 위해서 마련된 자리다. 그러나 그것은 오로지 노인들만을 위한 자리는 아니다. 노인이 없으면 젊은이가 앉는다. 노인들은 목적지에 닿으면 하차하며 다음 사람을위해서 그 자리를 비워준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일부 노년층이 독점하고 안 비워주는 경로석도 +있다. 일정한 목적지도 없이 갈 때까지 가보는 경로석이다. 소위 퇴직한 +고급공무원이나 은행장이나 퇴역장정 등이 흔히 차지하고 있는 경로석이 그렇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국방부의 한 산하기관에는 하는 일도 없이 매월 2백만원씩의 월급을 받고 사무실에 여비서에 그랜저 승용차까지 대접받는퇴역장성과 퇴역 장관의 호화로운 자리가 지적됐다.

나이 먹은 탓으로 물러난 사람들이니 노년층으로 봐야 할 것이고 그렇게 +물러난 사람들을 극진히 대접하는 자리이니 그 자리는 경로석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 나라에는 정부산하기관을 비롯해서 도처에 수많은 퇴역 노인들이 대접받으며 막무가내로 하차하지 않는 경로석들이 아주 많다. +과연 그로 인한 국고손실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그리고 그들이 온갖 부서에서 감투를 쓰고 전직의 직함으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끼치는 폐해는 얼마나 클 것인가.

노년층이 자리만 옮겨 앉았을 뿐 퇴직후에도 여전히 자리를 비워주지 않고 경로석을 독점하고 있는 문제는 지금의 교사정년 단축문제와 +본질적으로는 깊은 속성을 지닌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두 노년층이 +미리 차지했던 자리에 대한 지나친 미련과 욕망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분야의 노년층들과 마찬가지로 60세를 넘긴 교사들도 여전히 건강한 사람이 다수일 터이고 그들의 관록은 여전히 소중한 가치가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런 의미에서라면 젊은 대표자들도 그에 못지 않은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그런 장단점을 비교하는 논쟁을 피해 놓고 본다면 아무래도 노년층들이 양보를 해야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젊은 대졸자들이 세상에 나와서 한 번 취업도 못해보고 실직자가 되고 있는 고통은 퇴직금과 연금을 타고 그동안 수십년 교사생활 하고 난교감, 교장의 자리에까지 있었던 사람들에 비하면 너무도 큰 것이다.

그런데 교육청장까지 공문으로 교사들을 선동해서 여의도 광장의 +반대시위를 하는 것은 특히 교육계에서도 두르러진 기득권층의 이기심이 노출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좀더 양보하고 후배나 제자들에게 +존경받는 노년층들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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