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총장실이 점거됐다. 제주교대 학생들이 지난 14일 '김정기 총장 퇴진'과 '날치기 밀실 통합투표 원천무효' 등의 요구를 내세우며 급기야 총장실을 점거하고 무기한 시위 중이다.

대학들이 통폐합에 속속 '성공'(?)하는 가운데 제주대와 제주교대의 통합은 유난히 매일 매일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총장실 점거는 어떻게 보면 이미 예견된 일. 김 총장이 이번 주 초 학생들의 투표가 진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덜컥 통합신청서를 낼 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학생들은 법적대응에 나설 것을 천명하면서 삭발 투쟁에 돌입했다. 반면 김 총장은 통합신청서를 낸 뒤 조용히 총장실을 비웠다. 기자는 지난 12일 취재를 위해 비서실에 전화했지만 "이번 주는 학교에 계시지 않을 것이므로 통화가 어렵다"는 얘기만 들었다. 몰아칠 폭풍우를 미리 준비라도 했던 걸까.

제주교대 학생들의 폭발은 우려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찬찬히 내막을 들어다 봐야할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교육대학과 일반 종합대학의 통폐합에는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형식적으로 규모가 큰 쪽으로 작은 쪽이 흡수 통합되는 방법이라면 큰 반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전국의 교육대학 가운데 처음 시도되는 것인 만큼 첫 단추를 어떻게 끼우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때문에 최종합의안에는 ▲타 학과 학생들의 교육대학으로의 전공·복수전공 및 부전공 이수 불허 ▲초등교육 발전을 위한 글로벌 펀드(50억) 조성 등 교대의 위상을 살리기 위한 내용이 담긴 것이다.

통합에 앞서 지역적인 특성을 얼마나 이해했는지도 짚어볼 문제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기자의 개인적 견해를 언급하자면 제주교대생들이 갖는 자부심은 수도권 주요 대학 못잖다. 제주대가 국립대이자 4년제 종합대학으로서 제주지역 인재의 산실 역할을 하고 있다면, 제주교대 역시 이에 밀리지 않는다. 제주교대생들의 성적은 수도권 주요 대학에 거뜬히 합격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들은 다만 제주에 남길 원하고 진정 교사가 되고자 하는 학생들이다. 때문에 이들의 자부심은 남다르다. 교사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면서 우수한 인재가 몰리는 요즘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행여 통합 뒤 제주에 남기보다 떠날 것을 택하는 수험생이 늘어난다면 지역 입장에서도 손을 놓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제주교대 학생들이 프라이드를 유지할 수 있는 통폐합이 필요한 이유다.

학교 측은 통합 최종 합의안에 내세운 교육부 합의사항에 대한 명확한 이행 약속 없이 찬반투표를 강행하면서 '흡수 통합'이라고 느낄만한 여지를 남겼다. 이같은 결과를 가지고 통합신청서를 제출하면서 학생들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학생들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는 하지 않을 것"임을 밝힌 바 있다. 통합의 결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서울대 출신의 김 총장이 제주교대생들의 마음의 상처를 얼마나 헤아렸는지 한번쯤 되짚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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