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교육협의회 이영호 평가지원부장

우리나라 대학의 국제경쟁력을 말할 때, 영국의 ‘The Times’ 지 평가, 중국의 ‘상하이 자이퉁 대학’ 평가, 미국의 ‘Newsweek’ 지 평가 자료가 스위스의 국제경영대학원 ‘IMD’ 평가 순위와 함께 주로 활용되고 있다. 아울러 이들 기관의 글로벌 대학순위가 공개될 때마다 국내 신문들은 우리 대학의 국제경쟁력 수준을 비판하는 글들로 지면을 장식하고, 대학들은 이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The Times'지 세계 200대 대학 순위 발표에서도 우리 신문들은 예외 없이 우리대학의 국제경쟁력에 대한 부정적 기사들을 쏟아냈다. 우리나라가 교역과 경제 규모에서 각각 세계 12위와 13위를 기록하고, 대학진학률 역시 세계 최고 수준에 있지만 유독 대학평가에서만은 기대에 못 미친다는 언론의 이 같은 ‘꾸지람’은 어느 정도 납득할 만하다. 세계 100대 대학, 혹은 200대 대학 순위에 이토록 연연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 해외 기관이 시행한 대학평가는 어디까지나 그들 나름의 가치관이 투영되어 있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만은 없는 사실이다. 덮어놓고 결과만을 두고 설왕설래할 경우, 지나친 ‘결과 중심주의’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 결과를 논하기 앞서 과연 이러한 세계 대학 순위가 타당하고 믿을 만한 결과인지 따져 보는 성숙함이 필요하다. 무엇을 가지고 누가 평가한 결과인가, 또 어떠한 절차와 방법으로 평가했는가, 그리고 결과 해석에는 어떠한 제한점이 있는가 등이 함께 고려돼야 한다.

최근 발표된 ‘The Times’ 지의 세계 대학순위 평가에는 아래와 같은 맹점이 있다. 우선, 'The Times‘ 지의 세계 대학 순위는 여러 국가의 다양한 고등교육시스템 하에서 상호 비교 가능한 자료에 근거하다 보니 매우 제한된 지표만을 활용하고 있다. 즉, ‘The Times’ 지의 주요 평가지표는 ▲동료 평가(40%) ▲교수 1인당 논문 인용지수(20%) ▲고용주의 대학평가(10%) ▲교수 1인당 논문 인용지수(20%) ▲외국인 교수 비율(5%) ▲외국인 학생 비율(5%) ▲교수 대 학생 비율(20%) 등으로 구성된다.

교육의 질 평가 관련 항목인 동료평가의 경우, 평가단(교수) 구성의 문제점을 찾을 수 있다.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지역별 동료평가 구성비다. 전체 동료평가자 3천 여 명 중 미국 교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18%에 달한다. 영국 13%, 인도 8%, 호주 6%, 캐나다 5%, 이탈리아 3% 순으로 비중이 크다. 반면 중국, 일본, 싱가폴, 대만, 홍콩, 한국 등 아이사권 국가의 참여비율은 10%에 그치고 있다. 영미문화권 위주로 평가단이 편중됐다는 지적이다.

평가단 전공의 편중현상도 문제점이다. 공학및 IT관련분야 교수가 47.70%를 차지한다. 생명과학및 바이오의약품 16.63%, 자연과학 56.83%, 사회과학 25.13%, 예술 및 인문학 12.30%, 기타 영역 1.53% 등으로 이공계 쏠림 현상이 두드러진다.

국제화 지표로 산정하는 외국인 교수비율과 외국인 학생비율도 다소 무리 있는 평가지표이다. 국가 간 해외 유학생 인구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 일본, 한국, 대만 등 아시아 국가들에게는 매우 불리한 지표이다. 교수 1인당 학생 비율 역시 교육여건을 부분적으로 설명할 수 있기는 하지만 이것만으로 수업의 총체적 질을 평가하기에는 한계가 뒤따른다.

이들의 대학순위평가 결과는 대학에 대한 개괄적 정보만을 제공한다. 평가결과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확대 해석은 오히려 대학 교육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통상 언론사가 수행하는 대학순위평가는 고등교육의 본래 목적 달성과 대학의 책무성 진작이라는 고등교육 질 보증에 기본 철학을 두기보다는 오히려 사회 일반이 알고 싶어 하는( 또는 예민한) 대학순위정보만을 제공함으로써 매체 위상을 높이는데 있다.

일부 국내 대학과 학회의 경우, 자율적 질 관리를 기본 철학으로 하는 대학교육 질 인증평가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운 불평불만만을 쏟아내고 있다. 일부 기관은 질 인증 평가 자체를 거부하기도 한다. 상업주의 목적 하에서 진행되는 언론사의 대학순위평가결과에 대한 지나친 반응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필요한 대목이다. 실제 지난 1월 KAIST 등에서 설명회를 가진 The Times의 편집자 마틴 인스(Martin Ince)도 “세계 200대 대학 순위평가 결과에 대해 다른 나라들은 참고자료 정도로만 관심을 보이는 반면 한국은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 한다”고 우려한 바 있습니다.

잘 쓰면 약이 되지만 못 쓰면 독이 된다. 2007년 ‘The Times’ 글로벌 200대 대학에서 서울대가 51위에 올랐다. 2006년 63위에 비해 12 계단 상승했다. KAIST는 이번 조사에서 132위를 기록했다. 다행이다.

The Times 결과가 국제경쟁력의 질 자체를 대표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되짚을 필요가 있다. 만약 이들 해외 기관의 글로벌 대학 순위 평가 결과가 해외로 유학 떠나는 국내 학생들의 발길을 되돌리고, 외국 유학생을 국내 대학으로 유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지나치게 순진한 발상이 될 수 있다.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대학의 내실화 노력이 절실한 때다. 대학의 지속적 내부평가 시스템 구축과 이를 통해 강점은 살리고 부족한 점은 보완하는 지속적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이에 더해 외부의 질 인증평가를 통한 대학교육 전반에 대한 종합적 점검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것이 진정한 대학발전의 지름길이다.(한국대학교육협의회 이영호 평가지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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