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창립 21주년을 맞은 포스텍이 제2기 대장정을 시작했다. 핵심 키워드는 '국내 최초 연구중심대학에서 세계적 명문공과대학으로..'  

포스텍이 연구 경쟁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최근 영국 더 타임스(The Times)가 발표한 '2007 세계대학평가'에서 '교수 1인당 논문 인용지수' 부문 세계 11위에 올라 세계 유수 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지난 9월 취임한 백성기(58) 포스텍 총장을 지난 27일 만나 포스텍의 현재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었다.

백 총장은 포스텍이 국내 최고의 연구중심대학으로 성장한 비결이 국가 핵심 과학 인재를 배출하겠다는 '뚜렷한 건학이념'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포스텍은 국가의 지속 성장에 기여하는 핵심 과학 인재를 길러낸다는 뚜렷한 목적으로 설립했습니다. 포스텍은 처음부터 달랐던 거죠. "


포스텍의 교수 인사 제도는 교수들의 국제 경쟁력 평가에 맞춰있다. 최근 정년 보장 심사를 요청한 교수 40%를 탈락시킨 카이스트와 비슷하다. 카이스트와 다른 점이 있다면 평가 기준을 점진적으로 높여 교수들의 눈높이를 충분한 시간을 두면서 높여왔다는 것. 카이스트가 정년보장 기준을 '느닷없이' 높여 대량 탈락 사태를 불러온 것과는 다르다. 

포스텍의 정년보장 심사는 심사 대상 교수가 추천하는 외국인 교수 3명과 주임교수를 포함한 동료 학자가 추천하는 인사 3명 등 총 6명의 외국인 동료 교수 평가로 이뤄진다. 심사 대상 교수를 평가 교수가 재직한 대학이 정년보장 교수로 받아 줄지를 묻는 방식이다. 6명 중 5명 이상이 'Yes'라고 답해야 정년이 보장된다. 

백 총장은 국내 대학과 경쟁하기보다는 해외 명문대를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고 있다. 

실제 학교 운영 예산을 학생 수로 나눈 학생 1인당 투자비용에서 포스텍은 연간 7만불을 넘어섰다. 이는 카이스트(KAIST)보다 70% 가량 높다. 국내 대학들의 평균치보다도 5배 이상 많다. 

교수1인당 학생수는 5.8명, 교수 평균 강의시간도 주 4시간에 그친다. 학생들은 전원 장학금 혜택을 받고 있다. 

포스텍이 경쟁대학으로 꼽고 있는 메사추세츠공과대(MIT)와 칼텍, 스텐포드대학 등 세계 유수 대학은 이보다 훨씬 많은 학생1인당 20만불 가량을 투자하고 있다. 

백 총장은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이들 대학이 세계 각지에서 우수 학생을 빨아들이고 있다"면서 "이들 대학과 경쟁하려면 다시 한번 뛰어야 한다"고 혁신을 역설했다.

포스텍이 세계 대학과 경쟁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은 학문간 융합을 시도하는 '리그룹핑(regrouping)'과 핵심 분야를 집중 지원하는 '리스트럭처링(restruchering)'으로 요약된다. 학문간 융합을 통해 창의적 연구를 주도하는 한편, 가능성 있는 5개 분야를 세계 최고로 끌어올린다는 전략이다.

철강을 포함해 IT·BT·첨단소재 분야 등으로의 집중화 방안을 현재 검토하고 있다.  

포스텍은 현재 234명인 교수진을 30% 가량 늘린 300여명으로 확충, 미국의 칼텍 등과 비슷한 교육환경을 만들어갈 계획이다. 소수 영재 교육 방침을 유지하지만 기존의 백화점식으로 나열된 강좌 대신 학생별 성취도 등에 맞춘 '맞춤형 영재교육'을 새로 도입할 예정이다. 

백 총장은 "우리나라의 일반적 대학들이 전통적으로 좋은 강의를 쭉 개설해놓고, 학생들이 선택해서 공부하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앞으로는 학생 하나하나의 학업성취도와 적성, 비젼을 파악한 뒤 학생 개개인에 적합한 교육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포스텍의 연간 연구비는 1,200억 원 정도. 이 가운데 정부연구비가 700억~800억원, 포스코가 300억원, 포스코를 제외한 나머지 기업이 지원하는 연구비는 200억 정도에 그친다. 

백 총장은 "일반 기업의 연구지원비가 적은 이유는 기업의 연구 개발 분야 투자가 단기성에 그치기 때문"이라며 "국내 유력 기업군들과 전략적 제휴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포스텍은 외국인 교수와 학생 유치에 대해 다소 느긋한 입장이다. 

백 총장은 "외국인에게 문턱을 무조건 낮춰서 외국인 교수와 학생수를 늘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면서 "대학 명성이 올라가면 좋은 학생과 교수는 자연스레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유수 대학에 갈 수 있는 학생과 교수들이 아직까지는 국내 대학을 선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현실적 판단이며, 포스텍이 요구하는 인재 수준이 그 만큼 높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최근에는 그러나 중국 칭화대 졸업생 등이 포스텍 석·박사과정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특히 철강대학원 등 포스텍의 특성화 과정에는 외국인의 관심이 커지고 있어 기대가 크다.

설립 초기 포스텍은 우수 학생 유치에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대학경쟁력의 밑바탕은 우수한 교수와 학생. 하지만 신생 대학에 불리한 입시제도는 포스텍이 넘어야 할 첫 관문이었다.

"입시 전략은 좋은 학생들을 뽑자는 거지요. 그러나 당시 정부가 제시한 입시제도는 한계가 분명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입시제도를 만들어 교육부를 설득해 제도를 바꿨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대학간 복수지원을 금지했던 것이었죠"

당시 정부는 대학간 복수지원을 금지하고, 대학별 시험 전형이 판이하게 다른 때문에 서울대 등 기존 명문대학 입시에서 떨어진 학생은 재수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복수지원이 허용된 뒤 처음 치른 입시를 회고하면서 "그날을 기억합니다. 수천명의 학생이 와서 시험을 봤죠. 의도적으로 서울대와 입시일을 달리한 전략이 성공했던 것이죠"라고 말했다.  "선배가 필요한 학생들은 서울대를 갔고, 도전하려한 학생들은 우리학교를 선택했습니다. 지금은 더 우수한 학생들이 포스텍을 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백 총장은 아직도 정부의 입시 정책이 여러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평준화 정책과 올해 대학 입시에서의 변화 등 정부의 입시 정책에 대해서는 "이해하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소수의 과학기술 인재 발굴을 위해서는 대학 특성에 맞는 입시 제도를 허용해야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최근 우수 학생들이 이공계를 외면하고 의과대와 법과대 등에 몰리는 것에 대해, 백 총장은 대학의 위기가 아닌 심각한 국가적 위기로 진단했다. 

"구글은 2~3명이 만들었고, 애플컴퓨터도 소수가 설립했다"면서 "예전처럼 노동으로 가족을 먹여살리는 시대는 가고, 핵심 인재가 국가를 먹여살리는만큼 국가 차원에서 인재를 양성해야한다"고 힘줘 말했다. 

백 총장은 대입수능제도와 과학경시대회 등 현행 입시제도의 개선 필요성도 피력했다.   

"수능 점수보다는 고교 과학 성적이 학부 등 대학생의 졸업성적에 더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오래 전 확인했습니다. 수능은 물론 과학경시대회 점수도 학생들의 잠재력을 파악하는데 한계가 많습니다. 모두 임기웅변적 문제 풀이에 불과합니다. 아인슈타인도 임기웅변적 소양은 없었습니다. 그런 학생이 딴데 가면 노벨상은 언제 나오죠?"

▲백성기 총장은 = 경기고(1967)와 서울대 금속공학과(1971)를 졸업한 뒤 미국 코넬대학에서 공학박사(1981년) 학위를 땄다. 한국과학기술연구소, 미국 코넬대학과 오크릿지국립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1986년 포항공대 신소재공학과 교수로 부임한 뒤 학생처장, 기획처장, 교수평의회의장, 부총장, 포항가속기연구소장 등을 거쳐 올해 9월 포스텍 제5대 총장에 취임했다. 독서와 골프를 즐긴다. 존경하는 인물로 마하트마 간디를 꼽았다.

※ 대담 = 이인원 본지 회장 / 사진 = 한명섭 기자 / 정리 = 한용수 기자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