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커스의 향수' 곧 캠퍼스에

'재미 없었다면, 웃지 못했다면, 입장료를 반환합니다' '꼭 보시라!! +손에 땀을 쥐는 스릴, 스펙터클한 공중묘기 백출' '70년 역사 동춘 공중 대서커스'.

멀게는『길』, 가깝게는『변검』 등의 영화에서 접한 떠돌이 곡예사의삶에는 왠지 모를 서글픔과 애환이 서려 있다. 그리고 동춘곡예단(02-448-1673)의 광고전단이나 공연장 포장 광고문엔 우리 나라에서 곡예단이 시작된 192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 것과 같은 향수가 묻어난다.

올해로 '동춘 인생' 37년을 맞는 동춘곡예단 박세환 단장. 연예인이 되기 위해 고교 졸업과 동시에 뛰어든 박단장의 삶은 동춘곡예단 컨테이너 막사에서 멈췄다. 최고 인기배우에서 단장으로 변신한 지난 75년 이후 동춘과 고락을 함께 해온 박단장은 현재 단원 50여명을 이끄는 '부초들의 아버지'. 이들은 기백만원이 넘는 단원들의 매달 급여만 해도 1억원이 넘을 정도의 대가족이다.

남사당패의 후신격인 동춘의 역사는 곧 우리 나라 곡예단의 역사를 대변한다. 작곡가 이봉조, 영화배우 황해, 허장강, 코미디언 서영춘, 배삼룡, 이주일, 심철호, 남철, 남성남씨 등이 한때는 동춘의 단원이었다. 전 육상국가대표 장재근씨도 어린 시절 이 곳에서 체력을 단련시킨 인물. 요즘엔 체조선수였다가 중도 하차한 청소년들이 동춘의 문을 두드리곤 한다.

일제치하 남한과 북한, 간도를 오르내리며 민초들에게 식민의 고달픔을 +잊게 해주던 20~30년대 이후 50~60년대 전성기를 맞는다. 그 시절엔 단원만 2백50명에 육박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도 잠시. 연극, 쇼, 서커스 3개 장르의 공연이 장장 3시간에 걸쳐 공연되던 이 '버라이어티 쇼'는 영상예술의 발달과 함께 고사 위기에 처한다. 20개에 달하던 곡예단이 동춘 한 곳으로 줄어든 것이 80년. 그리고 다시 숨통을 틔울 수 있었던 것이 90년대 중반이다.

영욕을 오가는 새 동춘은 사람으로 치면 고희의 나이가 되었고, 줄잡아 +7만여 회라는 공연횟수가 켜켜이 쌓여 올랐다. 곡예공연의 매력은 사시사철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 2~3백평쯤 되는 널찍한 공간만 있으면 1백여 톤 분량의 짐들을 풀어놓는다. 광대 줄타기, 자글링,장독 굴리기, 공중 오토바이 회전묘기 등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관객들 중 가장 반가운 이들은 아흔 노모를 업은 칠순의 촌부.

동춘의 고전 뒤에는 정부의 무관심과 정책 부재가 있었고, 다시금 일으켜 세운 데엔 남녀노소의 국민들이 있었다. 든든한 후견인을 둔 덕에 동춘이 예술단으로 인정받게 된 것은 최근. 지난 96년 이후 정부로부터 +매년 5~6천만원의 국고지원금을 받고 있고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과천세계마당극큰잔치(20일까지, 정부과천청사 앞 잔디마당)의 부대공연으로 초청 받았다.

젊은 층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2~3년부터 추진해온 대학 내 공연도 +조만간 빛을 보게 될 조짐이고, 숙원사업으로 준비해 온 남북곡예단 합동공연도 내년 봄쯤엔 성사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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