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생각]학문을 예술처럼…감동적 수업 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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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공학 마지막 수업서 11시간 혼신의 열정

최근 한 대학 교수가 학부에서의 마지막 강의를 11시간에 걸친 마라톤 강의로 막을 내려 화제가 된 바 있다. 그 주인공은 평소에도 내리 6시간을 강의하고, 학생들과 연구실에서 먹고 자며 22년간 '입실수도' 해온 것으로 알려진 R&D공학 전공의 권철신 성균관대 교수(63.시스템공학과·R&D전략연구실).

이번 강의도 흔치 않은 풍경이라 언론에서도 호기심어린 관심을 보냈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강의는 처절했다. 국내에서는 유일했던 ‘R&D공학’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아픔이 있었던 걸까.

권 교수와는 10일 전화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권 교수는 한 학기를 마무리한 대학원생들과의 제주여행에 앞서 아내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학원에서 학기가 끝나 학생들과 논문을 발표하고, 노고를 치하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평생 연구에만 빠진 남편을 챙기느라 힘들었을 아내를 위해 둘만의 시간도 갖고 있구요"

한 학기가 끝났다는 것은 강의가 끝난 게 아니라 연구했던 것을 마무리 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때문에 이번 여행은 그 연구의 성과물인 학회투고논문을 발표하는 자리였고 그 논문을 위해 학생들도, 그도 이날 새벽까지 연구실에 있어야 했다.

11시간에 걸친 마지막 강의도 평소에 해오던 6시간에서 5시간이 더해졌을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할 정도니 최고급 호텔에서의 제주여행도 한 학기를 마무리 짓는 논문봉정식으로 만들어 놓은 아이디어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난 괴짜가 아닌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업이 학문연구인 만큼 그 분야의 도를 트기 위해 노력한 것뿐이라는 설명이다.

"저에게 학문은 예술입니다. 그리고 예술은 자기도취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되고 사람들에게 주는 '타인감동'이 있어야 예술입니다. 지난 22년 동안 저는 학문을 예술처럼 해왔고 학생들에게 감동을 줬다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그는 흥미로운 얘기를 덧붙였다. 새로운 학문분야를 우리 대학에 뿌리내리기 위해 노력했을 뿐인데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원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라는 것이다.

"처음엔 이게 가능하겠느냐고 스스로도 의심했었습니다. 6시간 강의한다고 6학점을 주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걸 따라오는 학생들이 있었던 거죠. 별종 신세대라고 생각했는데, 20년 넘게 지켜보면서 어느 시대나 10% 정도는 이들처럼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리더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실제 그의 독특한 강의를 따라오는 학생은 정원 100명중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 20여 년 간 길러낸 180여명의 제자들은 모두 대기업 등에서 자기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제자들이 먼저 나서 힘든 강의를 듣기를 원했고 졸업 후에는 ‘개공무림(개발공학 수련집단)’ 출신이라며 자부심을 느끼더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그는 국내에서는 신종 학문이었던 개발공학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 이렇듯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도 했다.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를 왜 했나 하는 후회가 들 때도 많았단다.

신제품·신기술을 만들어내는 연구개발 활동이 R&D이고 그 활동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할 것인가를 연구하는 게 그의 전공이다. 동경공대 사회공학과에서 '과학기술발전전략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따고 일본과 한국에서 이 분야 1호 박사다. 그에게는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매년 수조원을 R&D에 투자하면서도 정작 R&D시스템은 제대로 갖추지 않고, 대학에서도 새로운 학문분야라고 관심을 두지 않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나라 R&D는 우격다짐이죠. 하지만 연구개발은 연구자를 쥐어짜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시스템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R&D 생산성을 극대화시키는 이 학문을 빨리 대학에서 만들어서 기업으로 공급해야 하는데 이 파이프라인이 막혀 답답해요. 대기업 CTO(기술경영임원)들이 R&D공학 석사학위만 따도 우리 기업이 하루아침에 다 바뀔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의 방식을 이해 못하고 '비정상'이라고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게 그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1998년에 어렵게 신설했던 ‘개발경영공학전공’이 폐지될 때는 설움에 복받쳐 사표를 품고 다니기까지 했다.

"어렵게 태어났는데 사산아가 됐다고 할까요. 그 때 학과가 존치됐다면 많은 인재를 배출해낼 수 있었을 거예요. 제자들을 기업 쪽으로는 많이 진출시켰지만 국내 대학에 관련 학과가 없다보니 이 분야를 이어갈 다음 세대가 없다는 게 한입니다"

교수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마지막 학부강의가 그에게는 우리나라에서 이 학문이 영원히 사라지는 것을 보는 날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권 교수는 이런 모델이 있었다는 것만 알리고 역사의 뒤로 물러나는 것에 만족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제자들이 강의평가에서 준 100점을 그 어떤 훈장 보다 자랑스럽게 간직할 거라고 말했다.

"2년 뒤 정년이 참 기다려집니다. 그 땐 뒤도 안돌아보고 아내를 위해 요리해주는 10년을 살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자 얼굴만 응시하며 살아왔지만 앞으로 아내 얼굴만 바라보며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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