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데 모든 역량을 쏟겠다. 입학할 때만 어려운 대학이 아니라 들어와서도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대학으로 만들겠다."

이기수 고려대 신임 총장과의 인터뷰는 대학 본연의 역할이 ‘교육’에 있음을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그가 제시한 대학발전 전략의 키워드도 '학생 교육'이었다. 그는 대학위상을 높이는 일이 학생교육에 달렸다는 지론을 펼쳤다.

"1965년 고려대에 입학하면서부터 가슴 속에 '고대 발전'이란 말을 품었다"는 그는 "24년 넘게 고려대 교수로 재직해 오면서 학부모들과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키워내는 게 대학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고, 총장에 도전한 것도 그런 역할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총장이 키우고 싶은 인재는 '고대정신을 갖춘 세계적 인재'다. 그는 "영어는 기본이고, 유럽권 1개 언어, 아시아권 1개 언어 등 3개 외국어능력을 졸업 조건으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재임기간 5000억원 모금 계획도 '좋은 교육'이 기본이 돼야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이 총장은 "발전기금 모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소위 '숨은 기부자'를 많이 발굴하는 것인데 이는 좋은 교육이 밑바탕이 될 때 가능하다"며 "지금까지 고려대에 익명으로 수백억원을 기부한 사람들은 모두, 고려대가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때문에 기금을 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여입학제'에 대해선 도입이 가능하단 입장을 밝혔다. 이 총장은 "기여입학제가 시험 칠 때 돈 주고 입학하는 의미라면 마땅히 부정해야 하지만, 원래의 의미대로 학교발전에 공헌한 분의 2~3세가 입학할 때 어느 정도 이점을 주는 것이라면 도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출교자 문제에 대해서는 "사제지간의 관계에서 대화로 문제를 풀도록 하겠다"며 "교수를 감금한 부분에 대해서 학생들이 사과하고, 학교는 이들을 관대하게 처분해 학생들이 다시 돌아오는 방향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 취임 직후 가장 먼저 교내 화합에 힘쓰겠다고 밝히셨는데.
"5년여의 기간 동안 고려대에 총장선거가 네번 있었다. 그 기간이 말끔하게 지나온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혹시라도 구성원간 간극이 있다면 털고 가자는 얘기였다. 우선적으로 교내 화합이 돼야 대학발전을 위한 어떤 계획도 힘을 모아 추진할 수 있다."

- 총장에 세번 도전한 끝에 선임됐다. 고려대 발전을 위한 꿈을 가지고 있을 텐데.
"1965년 고려대에 입학하면서부터 '고대 발전'이란 말을 가슴 속에 품어왔다. 이 시대에 맞는 바람직한 '총장 상(像)'에 대해서도 고민을 했는데, 2005년까지는 'CEO형' 총장이 필요했지만, 이제 필요한 총장은 고려대를 글로벌 대학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GPS(Global positioning Supervisor)형 총장'이다. 우리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뿐 만 아니라 세계가 요구하는 인재를 키워내야 한다."

- 우리나라 대표 사학으로서 세계의 대학들과 경쟁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보여 진다.
"'아웃바운드' 국제화에 역점을 두고자 한다. 과거에도 '아웃바운드' 국제화를 추진해 왔지만 이제는 그 개념을 넓힐 때가 왔다. 단순히 해외 대학에 기숙사를 만들어 고려대 학생들을 유학시키는 게 아니라, 해외에 대학기능을 갖춘 캠퍼스를 정식으로 건립해야 한다. 미국에 LA캠퍼스를 건립해 현지 학생을 뽑아 한국을 알리겠다. 또 고려대 학생들도 그곳에 가서 공부하도록 해 언어만이 아닌 문화를 체득하는 국제화가 되도록 하겠다."

- 재임기간 동안 5000억원을 모금하겠다고 약속했다.
"전통적인 모금방식 하에선 많은 액수일지 모르지만 모금원을 확대하면 가능한 일이다. 얼마 전 미국 현지에 ‘고려대 발전을 위한 재단’을 설립해 미국 정부로부터 승인을 얻었다. 앞으로 이곳을 통해 해외 기업과 교포들을 대상으로 모금을 벌일 생각이다.
이기수 신임총장(좌)과 본지 이인원 회장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게 소위 '숨은 기부자'를 발굴하는 일이다. 지난해 의과대학과 사범대학에 들어온 발전기금 500억원은 익명의 기부자 2명이 각각 내놓은 것이다. 이들은 고려대가 사회에 꼭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거금을 쾌척한 것으로, 발전기금 모금도 좋은 교육이 밑바탕이 될 때 가능하단 것을 보여준다."

- 이명박 정부가 대학 자율화를 예고하고 있는데 입시에서는 어느 정도 자율화가 돼야 한다고 보나.
"학생처장과 기획처장, 법대학장 등을 지냈지만 솔직히 입시문제에 대해선 깊이 연구하지 못했다. 다만 중고등학교 교육이 정상화되는 쪽으로 자율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현재 학내에 입시정책에 대한 연구팀을 만들어 가동시키고 있다. 거기서 좋은 방안이 나오면 실행에 옮길 예정이다."

- 기여입학제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시험 칠 때 돈 주고 들어가는 의미라면 부정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원래의 의미대로 학교발전에 공헌한 분의 2~3세가 입학할 때 어느 정도 이점을 주는 것이라면 도입할 수 있다고 본다."

- 새정부의 '대학자율화' 정책에 따른 대학의 책임은 뭔가.
"그간의 교육정책은 규제 일변도였다고 볼 수 있다. 새 정부 들어서 대학에 자율권을 부여한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대학도 거기에 발맞춰 입시와 교육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각 대학이 처한 입장에 따라 다양한 인재를 선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 국내 대표사학으로 대학교육을 어떻게 끌고 갈 생각인가.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데 모든 역량을 쏟겠다. 입학할 때만 힘든 대학이 아니라 들어와서도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대학으로 만들 생각이다. 영어는 기본이고, 유럽권 1개 언어, 아시아권 1개 언어 등 3개 외국어능력을 졸업 조건으로 삼겠다."

- 우리나라 기업들은 국내 대학교육에 대해 전문성과 인성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졸업생들을 데려다 써본 기업들의 목소리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다고 본다. 일본 와세다대의 경우는 학생들이 진로를 세우면, 거기에 맞는 과목을 선정해서 수업을 듣도록 하고 있다. 미래에 갖게 될 직업에 필요한 공부를 하도록 하는 것인데, 현재 그런 방법도 검토하고 있다."

- 출교자 문제가 640일 넘게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는 사제지간의 관계에서 풀어야 한다. 얼마 전 법원에서도 학생들이 낸 '출교무효확인소송'에 대해 '화해 권고' 판결을 내렸는데, 그 방안이 가장 바람직하다. 교수감금한 부분에 대해서 학생들이 사과하고, 학교는 이들을 관대하게 처분해 학생들이 학교로 다시 돌아오는 방향이 돼야 한다."

- 진정한 '고대정신'과 '고대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고대정신, 고대인에 대한 말은 많이들 하는데 개념정리는 명확하게 되지 않은 것 같다. 먼저 고려대 교의(敎義)인 ‘자유·정의·진리’를 ‘고대정신’으로 볼 수 있고, 이를 실천하는 사람이 진정한 ‘고대인’다. 여기에 하나 더 덧붙인다면 인촌 김성수 선생이 말씀하신 ‘공선사후(公先私後)와 ‘신의일관(信義一貫)'을 들 수 있다. 사실 같은 고려대 출신이라고 하면 무조건 선후배로 호칭하고 무슨 일이든 도와주려는 분위기가 있는데 이도 바뀌어야 한다. 자유·정의·진리의 정신과 '공선사후'의 원칙에 어긋나지 말아야 한다."


<이기수 신임 총장은···>

1945년 해방둥이로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1945년 고려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서울대대학원 석사를 거쳐 독일 튀빙겐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부터 24년 넘게 고려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생처장·기획처장·법과대학장 등 주요보직을 지냈다. 대외적으로는 한국법학교수회장·대한상사중재원 부회장 등을 맡고 있다.

이 신임 총장은 교내·외에 폭넓은 인맥을 갖고 있다. 30여명의 직계 제자가 전국 각 대학교 법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2년 15대 고려대 총장에 출마, 교수직선투표에서 2위를 기록했을 정도로 교수들의 신임도 두텁다. 지난해(16대)엔 총장후보자추천위원회 심사에서 1위를 했다. 교내에선 '당산대형(唐山大兄·이소룡이 출연한 영화 제목)'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 그만큼 '화끈하고 의리있는' 교수이자 선배란 평판을 얻고 있다.

가족은 아들과 딸, 며느리, 사위가 모두 고려대 동문인 '고대 가족'이다. 이 총장은 서울대를 나온 아내(조효인 서울교대 교수)까지 고대 가족으로 만들기 위해 고려대 언론대학원 최고위과정을 듣게 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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