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홍보대사 안하면 직무유기죠"

지난해 연구를 위해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목 아래 전신이 마비된 이상묵(46)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장애인 홍보대사 안하면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일반 사람이 이 정도 아파서, 이렇게 센세이션을 일으키지는 않잖아요. 서울대 교수였기 때문에 이런 호사를 누리고 있는 거라 생각하면, 장애인 홍보대사 안하면 직무유기죠"

7일 이 교수의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장애인 홍보대사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다음주 부터는 정부의 장애인 재활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했다. 장애인 취업 알선 전문가를 대상으로 교육하고, 음성인식 장비 등 장애인 보조 장비의 국산화에도 힘을 쏟겠다고 했다.

"사고를 당한 뒤 병원에서 재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병원 사람들이 '너 같은 사람 많이 봤다. 컴퓨터만 있으면 어떤 일이든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했거든요. 우리 같으면 이렇게 재활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에요"

그는 장애 보조 장비 국산화가 가장 시급하다고 말했다. 생명은 구했지만, 사고 당시 그의 상태는 무척 심각했다. 사고 후 한 때 호흡이 정지되는 상황을 반복하다 기적적으로 회생했지만, 목 아래로는 신경이 모두 끊긴 상태. 그러나 컴퓨터와 전동 휠체어, 음성인식 장비가 그를 또 한 번 살렸다.

"팔을 전혀 못쓰는 사람도 입으로 컴퓨터를 조정할 수 있어요. IT 강국인 우리나라의 기술력이 문제가 아니라, 의식전환이 필요합니다.문제는 기업들이 장애인 보조장비 개발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이죠."

그는 "미국은 보조기구 사용이 5년 전부터 일반인들에게도 사용되기 시작했어요. 장애인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음성인식 장비가 사용되고 있죠. 타자 속도가 느린 기자들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장비 개발은 일반인들에게도 큰 혜택을 줍니다."

이 교수는 장애 보조 장비 개발에 국내 큰 기업들이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음성인식 프로그램에 7개국 언어가 가능하지만 한국어는 없다. 때문에 영어 못하는 국내 장애인들에게는 이 장비가 그림에 떡이다.

"제가 마치 세종대왕이 된 듯한 기분이에요. 한글도 미국에 만들어 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기회가 된다면 우리 기업들이 한극 음성인식 소프트웨어를 만들도록 협조를 구하고 싶어요"

혹시 불편한 것은 업느냐는 질문에 그는 "불편한거 한두개가 있더라도, 이렇게 다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요. 그리고 죽은 제자와 그 가족은 아직도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가슴이 아픕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 교수는 올해 안식년을 반납하고 지난 4일 첫 강의를 시작으로 서울대 강단에 복귀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 강의를 대신 해준 교수들의 수업을 맡아 재활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이 교수는 또 사고 당시 숨진 제자 이혜정(당시 24세)씨를 위해 사재 5,000만원 털어 '이혜정 장학기금'을 내놓았다. "큰 돈을 내놓는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미미하죠. 그렇지만 이게 제 의무라고 생각해요. 저도 누군가의 도움으로 복귀가 쉬웠듯,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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