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학가에서도 IMF한파를 실감할 수 있다. 매일 밤만 되면 무법천지였던 대학주변 유흥가도 요즘은 조용하다. 개강모임이다, 동아리 모임이다, 각종 모임이 매일 이어지긴 하지만 간단한 저녁식사에 소주 한잔으로 끝나기 일쑤다. 고급 술집이나 록카페 등은 요즘 찬서리를 맞고 있다. 값비싼 의류매장도 파리 날리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달라진 대학가 +현장을 돌아본다. (편집자 주)

지난 5일 오후 6시30분쯤 신촌 연세대 정문 앞 창천교회. 수백여명의 대학생들이 줄지어 서 있다. 대부분이 젊은 학생들이었지만 간혹 부부차림의 중년들도 눈에 띄었다. 저녁 7시부터 상영될『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와 『스케이트』영화 관람을 위한 줄이었다. 물론 무료 시사회였다.

이미 입장이 시작된 터였지만 학생들의 행렬은 끊일 줄 몰랐다. 지난 +3일부터 배부된 초대권 1천3백여장은 상영시간 훨씬 전에 바닥났다. 뒤늦게 도착해 초대권을 구하지 못한 수십명의 학생들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입장객 수를 확인하는 안내원의 +계수기는 이미 8백70여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안내원은 초대권 없이 입장한 학생들까지 합하면 1천여명은 훨씬 넘을 거라고 말했다.

"가능하면 부모님에게 용돈 달라고 하지 않으려고 해요. 수입은 준 반면 물가는 그칠 줄 모르고 오르니 부모님 형편이야 뻔하지 않겠어요. 지난해까지만 해도 20여만원 정도의 용돈을 집에서 타 썼는데 올해부터는 +10만~15만원 정도 받고 있어요. 그렇다고 마땅한 아르바이트 자리도 없고... 개인적으로도 구조조정 해야되지 않겠어요. 그래서 이런 무료 영화를 즐겨 찾고 있어요"

연세대 김동현군(기계전자공학부3)은 학생들도 IMF시대에 흥청망청 하는 모습은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친구들에게도 종종 무료 공연장 소개를 하고 있다는 김군은 관심만 있다면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초대권을 구하지 못한 숙명여대 디자인대학원 석사과정 김은영씨(4학기). "무료 영화상영을 한다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왔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올 줄은 몰랐어요. 멀리서 왔는데 영화 못보고 +돌아가면 어떡해요. 꼭 볼 수 있도록 해주세요" 김씨는 친구도 한명 데리고 왔다며 관계자들에게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김씨는 덧붙여 최근 생활패턴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예전에 주로 쓰던 외제 화장품도 국산 화장품으로 바꿨어요. 옷도 고급 의류보다는 +YMCA 복지관 등에서 개최하는 바자회를 찾아 5백~6백원 하는 옷을 +구입하기도 하지요. 요즘 한달 용돈은 20만원이 채 안돼요. 제 주변친구들도 대부분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것 같아요"

김씨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실제 이화여대 주변 옷가게와 연세대 앞 고급 음식점과 술집들을 찾는 대학생들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다는 닭갈비집과 두루치기집은 개강모임 등 단체손님으로 만원을 이뤘다. 유흥거리를 지나가는 학생들도 상당수 줄었을 뿐더러 한산하기까지 했다.

지난해 11월 경제불황이 막 시작되던 때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모습이었다. 지난해의 경우 주변의 일식집과 로바다야끼집, 피자집, 고급 레스토랑 등 가격이 비싼 곳일수록 손님이 많았던 반면 지금은 정반대였다. 가게 주인들에 따르면 3~4명의 학생들이 수입양주에 수입맥주 등으로 한번에 10만~20만원 이상을 소비했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값싼 안주에 소주로 3만~4만원의 비용만을 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유흥가를 중심으로 활개를 쳤던 속칭 미끼들도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지난해만해도 요란한 보조 장비들을 동원해 손님끌기에 바빴던 삐끼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홍보 팜플렛만을 나눠줄 뿐이었다. 숫자 역시 많이 줄었다.

P까페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수입맥주나 양주를 찾는 학생들이 종종 있었는데 지금은 대부분 국산맥주만 찾아요. 그들은 +대부분 안주 없이 1~2병 정도 마시고 나가는 편이지요. 그래서 올해부턴아예 수입맥주를 들여놓지 않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반면 C닭갈비집은 앉을 자리조차 찾기 어려웠다. 이 업소에서 5년간 일해온 최모씨는 올해처럼 짠돌이(?) 학생이 많은 때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요즘 손님들은 대부분 개강모임이나 선후배 모임이 많아요. 그런데 옛날 같으면 인원수대로 안주를 시키곤 했는데 요즘은 달라졌어요. 10여명의 학생들이 들어와선 7~8인분 밖에 주문하지 않거든요. 폭주하는 +학생들도 많지 않구요. 하지만 손님수는 훨씬 많아진 게 사실이죠"

마포경찰서 소속 경찰들도 이 지역을 매일 밤 순찰하지만 올해처럼 +한산한 적은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지나친 음주로 길가에 쓰러져 구토하는 학생들을 찾아보기 힘들 뿐 아니라 폭력사건도 접하질 못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소비적 문화가 많이 사라졌다는 얘기다.

이화여대 주변 옷가게들도 손님보다 점원이 더 많았다. IMF시대를 맞아 +50% 할인판매를 하고 있는 S매장. "평소 2백~3백여명 정도가 매장을 둘러보고 구입하는 학생들도 상당수 있었지만 현재는 절반도 안돼요. 더욱이 옷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30% 정도로 매출이 절반 이상 줄어든 셈이죠. 요즘 같아서는 매출이 너무 적어 사장님께 되레 미안한 감정까지 들어요" 중간 가격대 의류를 판매하고 있다는 이 점원은 밤늦은 시간에는 +오히려 전기세가 아깝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다른 의류매장 점원은 지나가는 학생들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외국산 유명 청바지 매장인 L매장도 손님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반면 1천~5천원 정도의 값싼 의류판매매장은 옷을 구경하는 사람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었고 길가에 전시해 높은 값싼 화장품 가게에도 손님들이 끊이질 않았다. 최신곡 노래 테이프가 새로 나왔다며 목청을 높이는 +길거리 음반 판매원도 요즘 같으면 흥이 절로 난다고 말했다. 1개에 5천~6천원하는 정품 테이프보다는 음질은 좀 떨어져도 3천원에 2개씩 하는 테이프가 더 인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를 하고 있는 이화여대 전선경양(의류직물학과2)은 요즘 집에 생활비 요청하기가 미안하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아무리 절약 +생활을 하더라도 기본적인 생활비가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 "해도 해도 너무한 것 같아요. 지방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이제 기본적인 생활하기도 힘들어요. 생필품 가격이 여간 오른 게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식사는 대부분 학교 식당에서 해결하지요. 옷이나 화장품 구입비로는 거의 지출이없어요. 20만원 정도로 책 사고 식사비 하면 남는 것은 하나도 없으니깐요. 극소수 학생들의 과소비 현상은 여전하지만 대부분 학생들은지난해와는 많이 달라진 게 사실이에요"

김양의 말처럼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의 학교식당은 말할 수 없이 붐볐다.지난 4일 11시 40분 연세대 학생식당. 12시가 채 되기 전에 학생식당은 만원이 됐고 식권구입을 위해 기다리는 줄이 식당 밖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학생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학교식당을 이용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교내 곳곳의 벤치에서는 빵과 우유로 점심을 해결하는 학생도 눈에 띄었다.

연세대 배상완군(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3)은 점심과 저녁 대부분을 학생식당에서 해결한다고 말했다. "최근 어렵게 구한 아르바이트로 +집에서는 거의 용돈을 타지 않아요. 한달에 30만원 정도 벌죠. 그렇지만 개강 초기라 새내기들에게 학생식당에서 밥 사주고 나면 쓸게 없어요. 술은 거의 먹지 않는데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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