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 비중 커져 지원 필수...논술 부담 여전

‘수험생의 부담을 줄이겠다.’ 2009학년도 입시에서 수능 등급제를 사실상 폐지하는 등 변화를 몰고 오면서 정부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과연 그럴까? 지난 19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전국 198개 4년제 대학의 입학전형계획을 모아 ‘2009학년도 대학입학전형계획’을 발표했다. 계획을 뜯어보면 내신 수능 논술의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는 부담은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 순간까지 1점을 위해 손에 땀을 쥐는 경쟁은 더욱 강화됐다.

■ 수시모집 대폭 확대, 입학 문턱이 낮아졌나? = 수시 2학기로 뽑는 인원은 20만2643명으로 전체 모집인원의 53.6%를 차지한다. 전체의 43.3%(16만3996명)를 뽑는 정시에 견줘 10%나 많다. 주요 사립대학들도 50% 이상, 많게는 60% 수준으로 뽑는다. 우수한 학생을 미리 뽑아놓으려는 계산 때문이다. 수험생들에게 수시 지원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그만큼 부담이 늘었다. 수시의 경우 학생부와 논술로 선발하는 전형이 많기 때문이다. 수시가 필수가 된 만큼 학생부와 논술 부담은 여전하다.

수시라고 해도 수능 부담이 줄어들지 않는다. 수시 전형의 마지막 관문에는 여전히 수능 최저학력 기준이 버티고 있다. 실제로 수시모집을 하는 202곳 (캠퍼스 따로 계산) 가운데 46%인 93곳이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적용한다. 인원은 늘었지만 자격기준이 완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수시 지원의 당락은 지난해에 견줘 크게 바뀌지 않을 거라는 예측이다. 지난해 수능 최저학력기준에 미달돼 탈락한 학생은 고려대 35.5%, 건국대는 65.5%에 이른다.

박만제 부산진학협의회 회장(부산 용인고 교사)은 “의외로 수시에 지원할 자격을 못 갖춘 학생들이 많다”며 “복권 당첨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수시에 지원하면 수능에 쏟을 시간과 비용을 크게 낭비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 수능 총점제 부활, 수능 압박 사라지나? = 수능이 총점제로 바뀌면서 1점 또는 한 문제 차이로 등급이 갈라져 원하는 대학 간판을 바꿔 달거나 재수를 선택해야 했던 억울한 일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등급 컷만 넘기면 상위 대학을 바라볼 수 있었던 이점도 사라졌다. 김희동 진학사 입시분석실장은 “등급제 아래서는 3~5등급 학생들이 상향 지원을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어려워졌다”며 “중위권 학생들은 점수제로 바뀐 수능 체제에서 지난해보다 냉정한 입시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수능 1점을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피 말리는 공부를 해야 하는 부담은 더욱 커졌다. 학습 방법도 바꾸어야 한다. 자신 있는 과목일수록 최고 점수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유성룡 이투스 입시정보실장은 “안정적인 등급을 유지하는 학생들에게는 등급제가 입시 부담이 적었던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이제는 과거처럼 1점으로 당락이 갈리는 만큼 끝까지 수능 공부에 매달려야 한다”고 당부했다.

모든 영역을 골고루 잘해야 한다는 원칙은 변함이 없다. 대학들이 수능 점수를 기계적으로 합산하는 게 아니라 영역별 가중치를 둬서 반영하기 때문이다. 가령 수능 언어영역:외국어영역:수리영역:탐구영역을 30:25:25:20으로 반영하는 대학이 있으면, 외국어나 수리에서 만점을 받아도 언어에서 좋은 점수를 얻지 못하면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 수험생들은 앞으로 발표되는 대학의 입시요강에서 수능 영역별 반영 비중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 정시 논술 폐지, 논술 부담은 줄었는가? = 대학들이 정시 논술을 폐지하거나 반영 비율을 크게 낮추면서 정시는 수능 중심의 전형으로 굳어졌다. 정시 논술을 보는 곳이 모두 13곳으로, 전체 대학의 6.5%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해에는 22.7%(45곳)의 대학이 정시모집에서 논술고사를 봤다.

그러나 학생부와 논술을 중시하는 수시 전형이 있는 한 수험생은 논술 공부를 접을 수 없다. 상위권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중상위권 학생들은 더욱 그렇다. 대개의 상위권 대학들은 정시에서 논술을 폐지했어도 수시에서 논술 비중이 큰 전형을 실시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정시 논술을 폐지한 성균관대는 수시 2학기 일반전형 모집 인원의 50%까지 논술 100%로 뽑고, 경희대와 인하대(수시 2-2) 역시 30%를 논술 100% 전형으로 뽑는다.

김희동 실장은 “대학들은 학생부와 논술 중심의 수시, 수능 중심의 정시 등으로 전형방법을 다양화했기 때문에 학생들이 강점을 살려 지원하면 이론적으로는 입시 부담이 줄 가능성이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기 위해서라면 학생들은 각각 다른 요소를 활용하는 전형에 모두 응시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입시 부담은 줄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더욱이 올해 수험생들은 그 어느 때보다 논술 준비가 부족할 수 있어 문제다. 지난 1~2월 새 정부의 인수위와 대교협이 논술 폐지를 거론하면서 수시와 정시를 분명히 언급하지 않은 탓이다. 유성룡 실장은 “겨울방학까지 논술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학생들은 지금부터 6월 학력평가를 치르기 전까지 논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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