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생각] “법공부만 해선 좋은 판사 못 되죠”
[사람과생각] “법공부만 해선 좋은 판사 못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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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무료법률상담소 김가연 학생(법학 4)
“법조인 중에서도 판사가 되고 싶어요. 만약 판사가 된다면 누군가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게 될 텐데 법 공부만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고려대 법과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인 김가연 씨는 한 달 전부터 고려대 국제무료법률상담소(Global Legal Clinic)에서 일하고 있다.

무료법률상담소(이하 GLC)는 법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지난 1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이 개설했다. 미국의 로스쿨 사이에선 보편화된 ‘리걸 클리닉’이 고려대에서 국내 처음으로 문을 연 셈이다.

GLC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자신이 가진 법 지식을 실제 사건에 적용해 보며 실무경험을 쌓고 있다. 사회적 기여를 통해 예비 법조인으로서의 기량을 단련하고 있는 것. GLC는 내년에 개원하는 로스쿨의 실습과정으로 개설됐기 때문에 현재는 학점이 없다. 김 씨를 비롯해 상담소에서 활동하고 있는 10명의 학부생들은 순수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평소 법조인을 꿈꾸던 김씨도 사회경험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겨 상담소 일을 시작했다. 법조인이 되기 전에 사람과 세상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공부 외에는 다른 걸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 법만 공부해서 법조인이 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봐요. 사회경험을 통해 사회적 약자도 만나봐야 이해의 폭도 넓어지고, 자기가 맡은 사건을 정의롭게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잖아요. 저도 공부 때문에 시간을 많이 내긴 어렵지만 여유가 있을 때마다 경험을 쌓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김씨가 맡은 분야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준수와 시각장애인 웹 접근성 증진’이다. 올 3월부터 시행된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하게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도록 국내 웹사이트들을 개선해 나가고 있다. 우선 공공기관 사이트를 대상으로 장애인 불편 사항을 고치도록 하는 게 일차적 목표다.

GLC에서 활동한 지 이제 막 한 달이 지났지만, 김씨에겐 느낀 점이 많다.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인터넷을 사용해 보면서 얻은 문제의식이다.

“우리나라 웹 사이트 대부분이 비장애인에게 맞춰져 있어요. 시각장애인 입장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다 보면 불편한 점이 정말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되죠. 전엔 전혀 느끼지 못했던 불편함에요. 공공기관부터하도 비주얼에 신경쓰기 보다는 장애인들이 인터넷을 사용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해 줬으면 좋겠어요.”

중학교 졸업 후 뉴질랜드로 유학을 간 김씨는 고등학교와 대학 3학년을 그곳에서 마치고, 2003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법학을 공부한 전공을 살려 고국에서 법조인으로 활동하겠다는 포부에서다. 2006년 고려대 법대로 편입한 김씨는 오랜 외국 생활 때문인지 장애인 문제에 있어선 우리사회의 차별적 인식이 근원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차별 없이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뉴질랜드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요. 장애인들이 아예 밖에 돌아다니는 것을 꺼리게 만들지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공부하고, 불편함 없이 다니는 게 당연한데도 장애인 편의시설을 마치 비장애인들이 베푸는 차원에서 설치해 준다고 여기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으로 등록된 인구가 5% 정도 되는데, 수백만에 해당하는 인구를 소수로 보고, 사회적인 배려를 하지 않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어요.”

지난해 사법시험 1차에 합격하고, 올해 2차시험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김씨는 사법시험 합격 후 판사로 임용되고 싶어 한다. 공정한 판결로 사회 갈등을 해소하는데 이바지 하고 싶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가 모든 사람들에게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판사가 되면 공정한 판결로 사회 갈등을 해소하고 싶어요. 일각에선 법을 지키면 오히려 손해라는 말도 하는데 양쪽 입장을 이해하고 공정한 판결을 내리면 이런 오해가 줄어들 것으로 봐요. 그러려면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하겠지요. GLC 활동도 학부를 졸업할 때까지 계속할 생각이에요.”

무료법률상담소에서 활동하는 학생들은 김씨처럼 GLC 활동으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김씨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개선하는 교두보” 가 GLC의 역할이라고 말했지만, 미래의 법조인들에게 사회적 책임감을 심어주는 역할도 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사법연수원생들의 봉사연수가 형식적으로만 이뤄지는 세태에서 찾게 된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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