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서양인은 세계사를 썼고 서양사를 썼으며 동양사까지 썼다. 근래의 2백~3백년간 그들은 물질문명을 바탕으로 한 세계경영을 주도했고 +노하우를 축적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시너지 효과가 십분 발휘되었다.

그러나 한편 동양인이 쓴 동양사는 찾기가 힘들었다. 최근에 시오노 나나미는 드물게도 동양인으로서 서양사를 썼다. 그것은 일본이 서양의 +열강들 이상의 경제적 부를 획득했고 경제 이외의 것에 대한 여유를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한국에서도 모 개그맨이 『남의 문화유산 답사기』라는 책을 내놓으며 열강을 비롯한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굴종보다는 '자주성'을 강조하기도 했지만 아직은 문제제기의 수준밖에는 못되는 듯하다.

물론 우리 역시 떠나면서 대단한 작품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세계가 서양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는 동양의 전통과 저력을 보고 오겠다는 작은 사명의식을 갖고 여정에 올랐다. 비록 우리 눈에 보이는 건 지저분한 거리, 시끄럽기만한 사람들, 개발의 영광을 거부한 도시가 전부였지만 그 이면에서 흐름을 거부하고 주체성을 지니고 발전하고 있는 각국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자신을 한 번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또한 여행에서 다른 많은 외국인들을 보며 한국의 위상을 알 수 있었고 그들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읽었다. 고등학교때 벌써 해외여행이 +졸업필수인 영국인 학생과 체류한지 3개월만에 베트남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미국인 아가씨, 패전국의 오명을 무릅쓰고 베트남을 '이해하기' +위해 수십명씩 떼로 몰려온 미국인 학생들. 그들은 우리에게 무언의 무언가를 얘기해 주고 있었다. 아직도 세계를 관광의 대상으로 보냐고, 아직 배낭여행 밖에 못하냐고...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문명의 수혜국이길 거부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도 +그들에게 가르치려는 자세보다는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최소한 그들은 우리와 같은 경제성장 위주의 발전이 커다란 위험을 수반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15일간의 해외체류 경험은, 그것도 덥고 힘들었던 아시아 3개국에서의 일들은 힘들었던 만큼 우리들의 미래에 등대 역할을 하며 +이끌어줄 것이다. 여행은 끝이 났지만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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