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장비·재료 공급 지연 등 ‘연구 수행 차질’
‘문 닫힌’ 학회, 피드백·실적쌓기 난항
전면 온라인 수업 84.3%, 대학원생 31% 불만족
“연구기한 연장, 연구실적 평가 조정 필요”

코로나19의 장기화가 쉽사리 끝나지 않는 가운데 대학원생들의 경제적 어려움과 연구 진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설문 결과가 나왔다. (사진  = 아이클릭아트)
코로나19의 장기화가 쉽사리 끝나지 않는 가운데 대학원생들의 경제적 어려움과 연구 진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설문 결과가 나왔다. (사진 = 아이클릭아트)

[한국대학신문 허정윤 기자] 코로나19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연구 인력의 중심축인 대학원생들이 겪는 피해가 상당히 큰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 결과 ‘경제적’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낀다는 답이 많았고, 실험장비·재료 공급 지연으로 연구 수행에 차질을 빚었다는 응답도 다수 나왔다. 대학원생들은 “연구 과제 중 대면 연구가 불가피한 경우 국가 과제 기간 연장이 필요하다”, “논문과 학회 오랄·포스트 발표 같은 정량적 평가항목 완화가 시급하다” 등의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대학원생들의 최대 고민 ‘경제적 어려움’ = 한국연구재단이 최근 발표한 이슈리포트 ‘청년과학자의 연구 및 학업 관련 애로요인 분석’에는 대학원생 1573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연구 활동 애로사항을 7점 척도 기준으로 조사한 결과가 실렸다. 

이번 설문은 고혁진 한국산업기술대 교수 등 연구진이 지난 4월27일부터 5월8일까지 이메일 방식으로 대학원생 등 청년과학자 1899명, 대학교수 등 연구책임자 3301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다만,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을 묻는 설문조사 문항은 대학교수의 연구과제에 참여하거나 수업을 듣는 대학원생 등으로 한정했다.

리포트에 따르면, 대학원생들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적 어려움이 증가했다’는 답변이 5.18점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현재 연간 소득 규모와 희망 소득’ 항목을 보면 응답자 대부분은 낮은 소득 수준을 보였다. 1233명의 대학원생이 2000만원 미만의 연봉을 받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절반을 훌쩍 넘는 응답자의 64.9%가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2019년 조사 결과에서 66.8%가 2000만원 미만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개선이 이뤄졌다고 보긴 어려웠다.

■“재료가 있어야 실험을 하죠” 코로나19로 연구 차질 = 경제적 어려움에 이어 대학원생들은 △실험장비·재료 공급 지연 등으로 연구 수행에 차질 발생(5.03점) △경제위기로 기업 채용 감소 등 취업에 대한 불확실성 증가(4.39점) △연구·학업 시간 감소(4.18점) △해외 유학·연수 불확실 등으로 진로 선택 어려움 증가(4.07점) 순으로 현재 처해 있는 어려움을 지목했다. 

경제적 어려움 다음으로 척도가 높게 나타난 ‘실험장비·재료 공급 지연 등으로 연구 수행에 차질 발생’은 응답자의 44.56%인 701명이 택한 답변이다. 기초 생리학 분야 연구실에서 박사 과정 중인 A씨는 “실험에 사용되는 대부분의 시약은 외국에서 수입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19 때문에 애를 먹을 뻔했다”고 했다. 

A씨의 사례처럼 그나마 시약을 수입하는 데 성공한 것은 운이 좋은 사례다. 해외 공장이 폐쇄되면서 재고를 확보할 수 없는 경우도 존재한다. 실험장비와 재료 공급 지연은 연구 성과 전반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대면 연구가 필요한 분야도 연구 수행에 차질을 빚고 있다. 임상 실험을 진행해야 하는 기초의학 분야에서 연구 중인 B씨는 “50대 여성을 대상으로 대면 임상시험을 계절마다 진행해 왔다. 올해는 가을에 한 번 한 것이 전부”라며 한숨을 쉬었다.

대학원생들이 대표적으로 느끼는 연구 애로 사항 (사진 = 한국연구재단 이슈리포트)
대학원생들이 대표적으로 느끼는 연구 애로 사항 (사진 = 한국연구재단 이슈리포트)

■논문을 발표할 ‘학회’가 열리지 않아 고민 = 학회에서의 ‘발표’는 대학원생들의 대표적인 활동이다. 학회 발표를 통해 연구자들은 자신의 연구결과를 실시간으로 피드백 받고, 다른 사람의 연구를 접하며 부족함을 보완할 수 있다. 학회 활동 자체가 대학원생들의 연구 실적에도 반영되기 때문에 학회의 중요성은 크다.

하지만 이마저도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다. 응답자의 67.64%가 해외 학회 취소 등으로 학회 경험, 연구실적 쌓기가 어려워졌다고 답했다. 다수 학회가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수순이기 때문이다. 온라인으로 전환된 학회도 있지만 만족도는 대면 학회에 비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대학원생들은 이같은 상황이 연구의지를 하락시키고, 학계의 최신 동향을 아는데 어려움을 불러온다고 했다.

■대학원생 온라인 수업 31% 불만족 = 대학원도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수업을 피해 가지 못했다. 학부 대비 수업 인원이 적은 편이지만 교내 구성원들의 안전을 위해 전면 온라인으로 대학원 수업을 진행하는 비중이 84.3%에 달했다. 

전면 온라인 수업에서는 만족하지 못한다는 반응이 우세했다. ‘매우 불만족’과 ‘불만족’이 31%로 28.6%가 택한 ‘매우 만족’ ‘만족’보다 많았다. 온라인 수업에 불만족한 가장 큰 이유는 ‘잦은 끊김, 접속 어려움 등 시스템 구축 미흡’이 27.2%로 가장 높았고, ‘강의 콘텐츠 등 교수의 준비와 전달력 부족’이 21.3%로 뒤를 이었다.

■연구 기간 확대, 온라인 플랫폼 활용 방안 모색해야 = 코로나19로 디지털 전환의 가속화가 진행됨에 따라, 학업·연구 환경 변화에 따른 제도적 대응 방안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슈 리포트는 “해외 재료나 장비 구매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배송 지연 등으로 연구 일정에 차질이 생길 때 이를 공동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전담창구 운영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대학들이 공동으로 실험 기자재를 쓰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필요한 기자재를 확보하는 게 쉽지 않은 현실”이라며 “코로나19 전에 제시한 연구 실적 목표를 현 상황에 맞춰 조정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은하 숭실대 수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연구 과제들에 대해서는 연구 마감 시한을 늘려줘야 한다”며 “코로나19로 학회가 열리지 않는 것은 연구자로서 배움의 영역을 넓혀가는 데 차질이 생긴 것이기에 안타깝다. 하지만 유수의 학회를 온라인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는 등 또 다른 기회도 생겼다고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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