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 학교법인 울산공업학원 이사장(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김도연 학교법인 울산공업학원 이사장(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김도연 학교법인 울산공업학원 이사장(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부와 권력 세습을 목적으로 귀족들이 운영하던 폐쇄적 대학이 많은 젊은이들에게 문을 열기 시작한 것은 링컨 대통령 때다. 대학이 필요로 하는 토지를 연방정부가 무상으로 불하하면서 대학의 대규모화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많은 주립대학을 포함해 MIT같은 사립대학도 소위 이러한 토지불하(Land-Grant) 대학에 속한다. 당시 대학들에게 요구된 사항은 농업과 기계 기술 교육 그리고 ROTC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었다. 농업은 그 무렵의 먹거리 산업이었으며, 기계 기술은 미래산업, ROTC는 국방을 위한 교육이었다. 국가와 사회가 대학을 지원하고, 대학은 미래 발전에 기여할 인재를 육성하는 선순환은 이렇게 시작됐다.

하지만 아쉽고 또 아쉽게도 오늘의 대한민국에는 대학과 사회 사이 선순환이 사라졌다. 사립대에 대한 대대적 감사는 차라리 작은 일이다. 지난 12년간 계속돼 온 등록금 동결은 사회가 대학을 불신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표다. 대학은 사회를 탓한다.

우리 사회는 마치 극심한 불신 끝에 파탄에 이른 가정인 듯싶다. 그런 가정의 자녀들, 즉 미래 세대는 어렵다. 한 가정의 개인은 새로운 인연을 만나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대학과 사회는 다르다. 상호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무한정 노력해야 한다. 대학이 우선 바뀌어야 한다. 우리 모두의 미래가 걸린 일이다.

대학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살아오면서 쌓은 경험과 지식을 미래를 살아 갈 젊은이들에게 전달하는 교육이다. 그런 측면에서 대학은 현재와 현격히 다른 모습일 미래사회 인재양성을 위해 환골탈태해야 한다. 오늘의 학생들이 살아갈 미래 모습을 구체적으로 짐작하는 일은 물론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미 실현되고 있는 변화들을 볼 때 미래는 초장수, 초지식, 그리고 초연결 사회가 될 것이 확실하다.

인류사의 대부분은 지금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구석기 시대의 삶이다. 위대한 신석기 혁명은 경험과 지식이 세대를 넘어 전달되는 ‘교육’이 시작됐기에 가능했다.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 인류의 기대수명은 25세 정도가 됐다. 이 무렵 처음으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딸의 출산을 돕는 할머니의 지식과 지혜 전달은 신세기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 나타난 문자는 새로운 혁명을 이끌었다. 이를 통해 지식은 대를 이어가며 쌓이고 또 쌓였다. 500년 전 인쇄술 발명에 힘입은 책자의 대량 발간은 지식전달 체계에 일어난 또 한 번의 엄청난 혁명이었다. 지난 수 세기 동안 책 읽는 사회가 진보한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이러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초반까지의 인류 기대수명은 고작 30세 정도였다.

미래 인류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 많은 과학자들은 120세 시대를 예측한다. 이러한 장수 사회는 사실 이미 와 있는 현실이다. 이는 결국 오늘날 우리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이 적어도 80~90세까지는 사회·경제적 활동을 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런 측면에서 학생들은 기나긴 삶을 관통하며 계속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대학에서 쌓아야 한다.

대학은 이제 학생에게 졸업장을 줘 배운 사람임을 증명해 사회로 내보내는 역할에서 벗어나야 한다. 평생 학습할 사람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반세기 전부터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컴퓨터는 인터넷과 연결되면서 새로운 지식전달 수단이 됐다. 특히 10년 전부터 보급되기 시작한 손 안의 컴퓨터 스마트폰은 세상을 아주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정보혁명은 신석기혁명, 문자혁명, 인쇄혁명만큼 인류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정보혁명 후 미래 대학은 어떤 모습일까. 지식의 저장고 역할은 책에서 이미 많은 부분 인터넷으로 옮겨갔다. 지금의 대학들은 그 역할과 기능을 그대로 유지할까. 대학은 마땅히 근본적인 혁신을 고민해야 한다.

이미 생활에 들어 온 인공지능(AI)은 새로운 문명이다. 20세기 들어 자동차가 등장했고 문명국 시민 모두는 운전을 필수로 삼게 됐다. 이처럼 21세기는 모두가 AI를 다루는 시대가 될 것이다. 가까운 미래 AI는 양자컴퓨팅과 결합될 것이다. 그로 인해 변화할 세상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오늘의 대학은 이런 미래를 살아갈 젊은이를 위해 교육콘텐츠에서부터 교육방법까지 전면적으로 새로움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 학생들은 국경도 그리고 동서양의 문화 장벽도 사라진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다. 이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협력과 배려의 정신이다. 이제는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의 의미를 모두가 다시 새겨야 할 때다. 협력하고 남을 배려하는 인재를 키우는 일은 결국 우리의 밝은 미래를 구축하는 길이다. 대학은 궁극적으로 인류전체의 번영을 위해 일하는 인재를 키워야 한다. 대학 자체도 마찬가지다. 대학들이 서로 협력하면서 공동발전을 모색해야 한다. 같은 대학 같은 캠퍼스 안에서도 학과 사이 벽 하나 허물기 어려운 우리 현실은 혁파의 대상이다.

초장수, 초지식, 초연결 등으로 정의 될 미래를 위해 대학은 학생들에게 지식과 지혜를 제공해야 한다.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지식의 유일한 출처는 경험(The only source of knowledge is experience)”이라고 했으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는 “지혜는 경험의 딸(Wisdom is the daughter of experience)”이라고 얘기했다. 지혜와 지식은 모두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다. 학생들로 하여금 사회 모든 분야에서 실제적 경험을 쌓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대학교육은 이제 배운 사람보다 배울 사람을 육성하는 시스템으로 변해야 한다. 넘쳐나는 지식과 정보의 합리성·경중을 판단할 수 있는 비판적 사고력과 폭넓은 시각을 길러줘야 한다. 아울러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섞여 살며 협력하고 배려하는 인재를 키워야 한다.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은 당연히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는 대학의 발전전략이 아니다. 생존전략이다.

본지가 창간 32주년을 맞아 희망 대한민국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코로나19, 학령인구 감소 등 어려움에 직면한 대학들을 격려하고, 희망의 메시지로 내일을 향해 나아가자는 취지에서입니다. 캠페인은 참여한 대학 관계자 및 저명인사들이 다음 주자를 지목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편집자주>

다음 기고자는 곽병선 군산대 총장(지역중심 국공립대총장협의회 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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