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수 인천재능고 교장(전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원장)

한석수 인천재능고 교장
한석수 인천재능고 교장

대학의 위기는 오랜 전부터 거론돼 왔다. 이미 1997년 피터 드러커는 30년 후 대학 캠퍼스는 역사적 유물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터넷 보급과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전통적 교육 모습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는 것이다. 

교육의 변화 속도에 대한 지적도 신랄했다. 앨빈 토플러는 《부의 미래》에서 교육을 시속 10마일로 달리는 펑크 난 자동차로 묘사했다. 라디에이터에서 연기를 뿜으며 덜덜거려 뒤에 오는 차들의 주행까지 방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속 100마일로 달리는 기업에 취업하려는 학생들을 어떻게 준비시킬 수 있겠냐고 질타했다. 마차는 자율주행차, 전화기는 스마트 폰으로 진화했는데 교육의 모습은 예전 그대로라는 지적인 것이다.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하며 암울한 대학의 미래를 예견하기도 했다. 토마스 프레이는 향후 10년간 전 세계 대학의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무크(MOOC)의 등장으로 향후 50년 이내 전 세계에서 10개 대학만이 대학교육을 담당할 것이라는 극단적인 전망도 있다. 파괴적 혁신을 주창한 클레이튼 크리스텐슨도 2011년에 고등교육이 파괴적 혁신의 마지막 주요 대상이 될 것이라며, 향후 10년에서 15년 내 하위 4분의 1 미국대학들은 통합되거나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러한 상황에 더해 우리나라는 급격한 학령인구 감소로 위기의식이 극에 달하고 있다. 교육부 자료에 의하면 2020년 대학입학가능자원은 47만9000명 수준이다. 대학 입학정원은 49만7000명 수준으로 1만8000여 명이 모자라다.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된다. 2024년에는 대학입학가능자원이 37만4000명 수준에 그쳐 전체적으로 대학 정원의 22%를 채울 수 없게 되는 실정이다. 그러다보니 벚꽃 피는 순서로 대학이 문을 닫게 될 것이라는 말이 회자되기도 한다. 

여기에 코로나19 대유행으로 1년 가까이 대학 캠퍼스가 문을 닫고 대부분의 강좌가 온라인 원격수업으로 대체되면서 대학은 그로기 상태로 휘청거리고 있다. 사실 그동안 전체적인 변화의 속도나 정도는 그다지 만족스런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우리 대학들은 나름대로의 생존전략 마련에 부심했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해 미래교육·미래대학의 기치 아래 발전하는 지능정보통신기술과 MOOC를 접목한 교수·학습방법 도입, 학문 융·복합, 학과 재구조화 등 중세 길드적 학문 공동체의 성격을 벗어던지기 위한 과감한 변신과 구조개혁에 박차를 가해온 것도 사실이다. 

외관상 공룡처럼 비대해진 고등교육 시장, 위기를 부채질하는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 미네르바 스쿨이나 MOOC 등 대체 교육시스템의 부상, 코로나19 상황 등을 극복하기 위한 실마리는 무엇일까. 

우선 지속가능한 고등교육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정부와 대학, 대학 상호 간 협조체제 구축이 필요하다. 학령인구의 가파른 감소로 인한 고등교육 전체 생태계의 황폐화를 막기 위해서는 대학 유형·지역 간 최소 수준의 국가정책적 정원관리가 불가피하다고 생각된다. 물론 대학 자율이 기본이 돼야겠지만, 여기에만 의존해서는 지방대나 전문대가 고사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는 지역 공동체의 붕괴와 산업인력 공급의 차질 등을 초래할 것이다. 

정부는 승자독식의 제로섬 게임 규칙이 난무하지 않도록 살피고, 대학들이 급한 마음으로 오늘, 내일의 문제에만 매달리게 해서는 안 된다. 이제 변화는 시작됐다. 속도보다 방향의 가늠이 더 중요하다. 대학들은 과중한 평가 준비로 허겁지겁 모양 꾸미기에만 분주한 모습이다. 매번 이렇게 내일만 준비하다 끝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대학들이 서로 닮아가는 이종동형(isomorphism)을 탈피해 의미있는 특성화와 국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모레를 준비토록 해야 한다. 시계만 보지 말고 나침반을 볼 수 있는 여유를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코로나19 이후 긴급한 학교현장의 원격교육 지원을 위해 원격교육지원센터와 온라인 학점교류 시스템을 구축하고 온라인 강의 관련 규제 폐지와 디지털 뉴딜정책을 발표했다. 코로나19로 불가피해진 비대면 온라인 원격교육은 지금까지 미래교육으로 치부되며 현장에서는 지지부진하던 지능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맞춤형 교육시스템, 에듀테크 활용 등을 일거에 선택이 아닌 필수로 강제하게 됐다. 

이는 변화에 둔감한 교육현장 쇄신을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된다. 과거 김대중 정부는 ‘세상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 다루는 나라로 만들자’는 기치 하에 그 어렵던 IMF 상황에서도 학교 교육 정보화에 많은 투자를 했다. 이는 정보화 강국의 토대가 됐다고 믿는다. 현 정부도 이번 기회에 ‘세상에서 인공지능과 로봇을 가장 잘 다루는 나라로 만들자’는 슬로건 하에 교육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위한 예산·정책 지원에 더욱 만전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코로나19 이전의 대학은 죽었다. ‘망치를 들고 교육을 보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다시 한번 대학 개혁에 니체를 소환해본다. 그가 신은 죽었다면서 망치를 들고 철학을 새롭게 세우려 했듯이 이번 기회에 우리도 망치를 들고 대학을 새롭게 세워야겠다. 우리는 코로나19를 겪으며 대학의 기능과 역할의 민낯을 살펴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대학을 바라보고 평가할 것이다. 대학들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 난공불락으로 여겨져 온 서열화 된 대학 구도를 깨뜨릴 수 있는 절대적인 기회를 갖게 됐다고 생각한다. 

망치를 들고 우리 대학을 살펴보자. 멈칫거리다가는 외부의 망치질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 대학들이 스스로 망치를 들고 전통적 캠퍼스와 교수학습방법 등을 부수고 환골탈태해 니체가 새로운 인간상으로 제시한 ‘위버멘쉬’를 길러낼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을 지혜, 불굴의 용기와 협업능력을 갖추고 인공지능·로봇과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21세기 오디세우스형 인재’로 길러낼 수 있으면 좋겠다. 

교수와 학생들의 공동체를 뜻하는 유니버시티(University)에 대해 클라크 커(Clark Kerr) 전 캘리포니아대 총장은 1963년 종전의 상아탑 개념을 탈피한 ‘Multiversity’란 개념을 제시했다. 1990년대에는 대학과 지역사회의 연계 강화라는 취지의 ‘Communiversity’라는 개념도 등장했다. 

이제 1088년 볼로냐 대학 이후 천년을 이어온 대학의 기본 이념을 심장에 담고 ‘Multiversity’나 ‘Communiversity’를 넘어 모바일(Mobile)·인공지능(AI)·네트워크(Network)로 방패를 두른 새로운 대학, ‘MAInetversity’로 다시 설 수 있으면 좋겠다. 제4차 산업혁명시대, 발전하는 지능정보통신기술은 대학들에게 괴물 피톤을 처치한 아폴론의 화살이 돼줄 것이다. 지능정보통신기술 활용과 다양한 대학 연합·교류를 통해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는 대학, 저비용 고효율의 특성화된 대학, 세상과 학습자에게 고도로 연결돼 꿈을 디자인하는 메이커 스페이스, 평생에 걸쳐 돌봐주는 어머니 같은 대학, 모두에게 나의 대학이 돼 주는 진정한 모교(Almar Mater)로 혁신해야 한다. 코로나19로 들이닥친 위기를 천년만에 찾아온 기회로 삼아 대학의 르네상스를 구가할 수는 없을까. 머지않아 벚꽃 피는 순서로 봄의 교향악이 다시 울려 퍼지는 새로운 대학 ‘MAInetversity’의 새 봄을 기원해본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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