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기 경상국립대학교 총장

권순기 경상국립대학교 총장
권순기 경상국립대학교 총장

‘벚꽃 엔딩’은 감수성을 자극하는 낭만적인 노래이지만 현재 우리나라 대학에게는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라는 말의 약자로 사용되는 가슴 철렁한 말이다. 서울·경기 이른바 수도권에서 먼 대학부터 망할 수도 있다는 이 경고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지방대학의 열악한 교육환경, 신입생 감소 문제를 지적하던 자조적 농담이 올 입시에서는 현실로 드러났다. 상당수 지방대학들은 신입생 최종 등록률이 공개될 경우 대학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해 등록 결과를 언론에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일부 대학에서는 수능 미응시자까지 추가 모집하고 있다.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에 따른 대학의 이러한 위기는 사립뿐만 아니라 국립대에도 시작되고 있다.

대학의 위기는 코로나19로부터 촉발된 면도 있다. 2019년 말 시작된 코로나19는 지난해 전 세계를 강타했으며 현재도 진행 중이다. 국가별로 차이는 있으나 집단면역은 올해 말에나 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 코로나19는 기존의 세계를 완전히 바꾸고 있다. 정치, 경제, 산업, 문화, 근무형태, 관혼상제, 생활습관, 심지어 식생활까지도 바꾸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기독교문명의 세계사적 영향력으로 인해 역사를 기원전(BC: Before Christ)과 기원후(AD: Anno Domini)로 구분해 왔지만 코로나를 전후로 코로나 이전(BC: Before Corona)과 코로나 이후(AC: After Corona)라는 말이 더 설득력을 얻게 됐다. 그만큼 코로나는 우리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교육은 더 혁명적으로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비대면 교육이 일상화하고 설령 코로나19가 극복된다 하더라도 과거의 대면교육 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많은 교육 전문가들은 판단하고 있다. 녹화 강의든 실시간 강의든 온라인 학습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되고 있다. 또한 미네르바 스쿨과 무크(MOOC)로 대변되는 비대면 교육시스템으로 인해 학습 수요자들은 최고의 강의를 수강하고자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현재의 대학 시스템으로는 지방대학들은 물론 교수, 시간강사를 비롯한 교수자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인구감소와 코로나가 대학의 혁명적 변화를 앞당기고 있다. 혁명적 변화를 스스로 이끌어 내고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며 대혁신을 완수한다면, 위기는 ‘위대한 기회’가 되어 우리들에게 희망을 안겨줄 것이다. 그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

첫째, 지방대학에 대한 국가적·체계적 지원이 필요하다. 지방대학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은 경쟁력 있는 지방대학의 생존을 보장함으로써 지역소멸을 방지할 수단이 된다. 이는 국가균형발전을 이루어 지속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길 중의 하나이다. 1980~1990년대 대학들은 정원을 크게 늘려왔으며 심지어 1996년에는 대학설립준칙주의를 제정해 대학설립마저 자율화했다. 대학들의 몸집 불리기 경쟁은 2000년대 이후 인구 감소 추세 속에서도 계속됐다. 교육당국은 이를 묵인했다.

한계에 다다른 대학은 퇴로를 열어줌으로써 정리해야만 하고 구조개혁을 통해 재탄생한 대학은 국가의 체계적인 지원으로 경쟁력 있는 대학으로 육성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독일처럼 직업교육을 통해서도 중산층 사회 진입이 가능하도록 새로운 사회진출 통로를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다. 이와 함께 OECD 최하위에 머물러 있는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의 투자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교육의 질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일회성·소멸성 지원인 ‘장학금’보다는 교육기자재, 실험·실습 장비 등 실질적인 교육비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게 필수다. 대학생의 비율은 세계 최고이지만 거꾸로 대학원생의 비율은 매우 낮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광역시·도마다 연구중심대학들을 육성해야 한다.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에게는 학부 졸업생도 충분하지만 시장 선도자(first mover)에게는 창의적인 연구자가 필요하다.

둘째, 대학 스스로 구조조정과 구조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대학 통합은 가장 시급한 대안이다. 경남 진주시에 위치한 경상대와 경남과학기술대는 통합 작업을 진행해 올해 3월 1일부터 ‘경상국립대학교’로 새롭게 탄생했다. 동일 지역에 있는 국립대학이 자율적으로 통합을 이끌어낸 모범사례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으며 이를 기점으로 한경대와 한국복지대도 통합을 완성해 가고 있다. 연달아 강원대와 강릉원주대도 통합을 준비 중이다. 이 두 대학이 통합하면 강원도에는 1도 1국립대 체제가 완성된다.

사립대도 통합과 확실한 구조조정을 통한 공립화를 서둘러야 한다. 먼저 재단이 같은 대학은 비교적 쉽게 통합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정부는 대학 통합에 전폭적인 재정지원을 해야 한다. 정부는 민간 기업의 구조조정에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을 지원해 온 것과 같이 국가의 백년지대계인 고등교육, 대학의 구조조정에도 그에 상응하는 지원을 해야 한다. 학과 구조개혁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 21세기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한 학과를 설립하되 기존 학과의 경우 정원을 감축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과감하게 학과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 특정 전공과 학문 분야의 전문인력을 육성하기 위한 마이크로, 나노 디그리와 같은 유연한 학사구조와 학생 스스로 전공을 설계하는 방법도 도입해야 한다. 경상국립대의 경우 ‘개척학기제’를 4학기째 운영하고 있는데 학생들의 관심과 참여도가 매우 높고 운영 결과도 만족스럽다.

대학의 새로운 역할도 모색할 시기가 됐다. 고등학교 졸업생을 선발해 4년 동안 교육하던 전통적 대학의 역할에서 벗어나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직업전환을 위한 직업교육, 삶의 질 향상과 교양 및 문화적 소양 함양을 위한 평생교육, 농촌과 중소기업의 생산인력으로 활동하고 있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산업인력교육, 국외 거점 확보를 통한 외국인 학부 및 대학원생 교육 등 대학의 다양한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

셋째, 기업과 지자체도 대학의 인력양성에 함께 노력해야 한다. 인재양성은 일차적으로 대학의 책임이지만 기업 맞춤형 인재양성은 기업에도 책임이 있다. 이제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대학과 함께 공동으로 시행하고 인재양성에서 산학협력과 투자를 병행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뤄야 한다. 지자체도 비슷한 양상이다. 대학이 문을 닫으면 그 지역의 경제는 퇴보하고 이는 결국 지역공동체의 붕괴로 이어진다. 기업과 지자체가 지역과 지역산업의 발전을 위한 상생과 협력에 적극 나서야 할 분명한 이유이다.

올 신입생 모집을 전후해 전국 몇몇 지자체에서 대학의 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대안 마련에 나섰다는 보도가 있었다. 교육부는 2월 말 ‘제2차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지원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기업, 지자체, 대학의 상생과 협력을 바탕으로 한 지역혁신 플랫폼 사업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지방대학의 역량을 강화해 디지털 뉴딜·지역 뉴딜 인재를 양성하도록 지원하겠다”는 교육부의 계획이 지방대학의 실질적인 희망으로 꽃피기 위해서는 지역혁신 플랫폼 사업을 전국 모든 지역으로 확대하고 사업비를 대폭 증액해야 한다. 지역인재 할당제를 비롯한 다양한 적극적 차별해소 정책(Affirmative Action Polish)을 확대 시행함으로써 지방대학과 지역이 함께 성장하고 발전해 국가균형발전을 완성하는 희망의 대한민국을 기대해 본다.

본지가 창간 32주년을 맞아 희망 대한민국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코로나19, 학령인구 감소 등 어려움에 직면한 대학들을 격려하고, 희망의 메시지로 내일을 향해 나아가자는 취지에서입니다. 캠페인은 참여한 대학 관계자 및 저명인사들이 다음 주자를 지목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편집자주>

다음 기고자는 이광섭 한남대 총장(대전권대학발전협의회 공동의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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