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폐과’ 두고 학내 갈등 심화
대학 생존의 기로... 학과 폐지 불가피

학생들, SNS 게시와 단체 집회 열어 거센 항의
대학, “학교 전체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

17일 신라대 본관에서 창조공연예술학부 학생들이 폐과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사진 = 신라대 창조공연예술학부)
17일 신라대 본관에서 창조공연예술학부 학생들이 폐과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사진 = 신라대 창조공연예술학부)

[한국대학신문 허정윤 기자] 학령인구 감소로 재학생 충원과 대학 경쟁력 유지에 빨간불이 들어온 지방대학들이 폐과로 대학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이 과정에서 폐과 예정 학과에 소속된 학내 구성원과 대학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대학으로서도 올해 입시에서 역대급 미달 사태를 겪은 뒤라 “이제는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이다.

■‘도와주세요’ 폐과 반대 외치는 학생들 = 신라대 창조공연예술학부 무용전공 학생들이 만든 영상의 제목은 ‘도와주세요’. 영상 속에 등장한 학생들은 모두 마스크를 끼고 있다. 마스크 너머 표정은 명확히 보이지 않지만 몸으로 보여주는 동작 하나하나에 정성이 들어가 있다. 힘이 넘치는 힙합 군무를 선보이는 학생들부터 우아한 발레 파 드 부레(pas de bourée) 동작을 취하며 연습실을 ‘종종종’ 누비는 학생들까지 다양한 춤꾼들이 화면에 등장한다.

학생들의 이런 역동성과 달리 영상의 주된 내용은 ‘신라대 무용전공 폐과 반대’다. 그래서 ‘도와달라’는 호소로 가득하다. 신라대 창조공연예술학부 4학년 황가현 씨는 “창조공연예술학부가 없어지면 재학 중인 학생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지만 멀리 보면 ‘예술’이라는 영역에 악영향을 미친다”면서 “특히 ‘춤’은 사람 간의 교류를 통해서 성장하는 학문 영역인데 역사가 깊은 종합대학인 신라대마저 자본의 논리로 폐과를 선택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고 심정을 털어놨다. 

춤과 관련된 콘텐츠로 가득한 가현 씨의 SNS에 자리 잡은 학부 폐지 반대 영상에는 191개의 ‘좋아요’가 달려 있다. 영상 밑에는 “저희는 재학생으로서 저희학과를 지킬 권리가 있습니다. 신라대 창조공연예술학부 무용전공 폐과를 반대합니다”는 댓글들이 줄을 이었다.

폐과를 반대하는 학생들은 “신라대가 프라임 사업 관련학과는 충원율이 낮아도 폐지하지 않는데 예술 관련 학과는 다른 인접학문이 없다는 이유로 폐지하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국대 경주캠퍼스도 비슷한 상황이다. 동국대 경주캠퍼스는 한국음악과를 비롯해 4개 학과를 폐과하기로 했다. 학과 구성원과 관계자들은 폐과를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동국대 측이 구성원들과 소통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폐과를 통보했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음악과 같은 경우는 불교문화와 한국예술의 명맥을 이어 나간다는 측면에서 폐과에 반발하고 있다. 학생들은 “각 학과의 고유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6가지의 일관된 지표로 평가하는 것은 특정 학과에 불이익이 가중될 가능성이 크다”며 청와대에 폐과 반대 청원을 올리기도 했다.

이 밖에도 경남대에서는 신입생 등록률이 저조한 한국어문학과를 비롯한 문과대학 중심의 폐과를 논의 중이다. 이른바 ‘벚꽃엔딩’의 긴장감이 지방대학 곳곳에 퍼져 있는 상태다.

신라대 창조공연예술학부는 폐과에 반대하며 학생들의 요구를 담은 동영상을 제작하고 배포했다. (사진 = 신라대 창조공연예술학부 학생 SNS)
신라대 창조공연예술학부는 폐과에 반대하며 학생들의 요구를 담은 동영상을 제작하고 배포했다. (사진 = 신라대 창조공연예술학부 학생 SNS)

■대학 “급한 과제는 ‘대학의 생존’ 갑작스러운 통보 아니야” = 신라대 창조공연예술학부가 폐과 대상 리스트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6년 경성대 무용학과와 함께 폐과 통보를 받은 이력이 있다. 폐과에 반대하는 1인 시위와 단체 집회를 열고 예술대학 존속 기원 춤판까지 벌이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신라대는 학과를 지켜냈지만 경성대 무용학과는 폐과의 길을 가게 됐다. 신라대 창조공연예술학부가 폐과된 후에는 부산대가 부산지역 유일의 무용학과 보유 대학이 될 전망이다.

폐과 수순을 진행하고 있는 대학 본부도 ‘폐과 결정’ 자체를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다. 김병기 신라대 기획부총장은 “대학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향과 학과의 희망사항이 상충하다 보니 일방적인 구조개편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결코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도 경영의 문제만 없다면 수익·재정관계에 관계없이 일반 기관들에서 키우기 어려운 인재를 키우는 것이 좋다. 하지만 학생 모집의 어려움이 커 (모든 학과를) 다 안고 가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고 덧붙였다.

동국대 경주캠퍼스의 경우는 △신입생 충원율(15%) △신입생 경쟁률(15%) △재학생 충원율(30%) △중도탈락률(15%) △취업률(20%) △교육 만족도(5%) 등 6개 기준에 맞춰 모든 학과역량을 평가했다. 그 결과 △신소재화학과 △의생명공학과 △빅데이터 응용통계학과 △한국음악과가 폐과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단지 예술학과라는 이유로 폐과대상에 이름을 올린 게 아니라는 방증이다.

김인홍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무처장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 동안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교 이래 가장 큰 개편을 단행한 것”이라며 “앞으로 더 줄어들 학령인구를 대비하려면 대학이 여력이 있을 때 학과 개편에 나서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대학이 벚꽃 피는 대로 문을 닫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는 ‘학사구조개편’에 대한 비판의 여론이 거세지자 “학과에서는 학생 역량에 부합하는 학과 교육을 제공하고 미래 수요에 맞는 교육 과정을 운영해야만 재학률이 유지될 수 있다”고 ‘재학생 충원율’을 집중 조명했다.

이는 교육부가 ‘2021년 대학 기본역량진단 기본계획’에 담긴 진단 지표 중 신입생・재학생 충원율 비중을 기존 13.3%에서 20%로 확대했기 때문이다. 진단을 통해 일반재정지원대학으로 선정된 대학은 ‘유지 충원율’을 챙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재학생 충원율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충족해야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개념이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관계자는 “이번 학사구조 개편은 2022학년도 신입생부터 적용되며 올해 폐과 해당 학과에 속한 학생들의 학습권은 끝까지 보장한다”면서 “소속 변경 전임교원 신분보장, 승진 재임용 등 인사상 불이익이 없도록 유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전공 선택권도 보장해 희망자에 한해서는 1회로 제한돼 있던 전과를 1회 더 할 수 있도록 특별전과 규정을 마련할 예정이다.

학교법인 동국대는 18일 고양 바이오메디캠퍼스 상영바이오관에서 이사회를 개최하고 학제개편안에 대해 논의했다. (사진 = 동국대 경주캠퍼스)
학교법인 동국대는 18일 고양 바이오메디캠퍼스 상영바이오관에서 이사회를 개최하고 학제개편안에 대해 논의했다. (사진 = 동국대 경주캠퍼스)

■학령인구 감소와 산업 수요에 맞춘 구조개편… 하지만 결국 숙제는 ‘정원조정’ = 학령인구 감소 추세가 더욱 심해질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지역대학은 정원 감축, 신설 학과 개설, 학제 개편으로 위기를 타개하겠다는 전략을 내놓고 있다.

신라대는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2022학년부터는 신입생 정원을 15%가량 줄일 계획이다. 신라대 측은 “창조공연예술학부만 연일 폐과 이슈로 등장하면서 예술을 등한시한다는 이미지를 주고 있는데 오해다”고 입장을 내놨다.

동국대 경주캠퍼스는 산업 수요 많은 의료분야에 신설학과를 설치한다. 지역 노령인구가 증가하고 이에 따른 보건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인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보건의료정보학과 △뷰티메디컬학과 △스포츠의학전공을 2022년부터 모집할 예정이다. 또한 국어국문학 전공을 웹문예학과로 개편하는 등 국문과를 포함한 13개 학과를 사회 미래수요에 맞도록 재정비한다.

하지만 지역 대학들이 이러한 자구책을 내놔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지는 미지수다. 인구 보릿고개가 예상되는 가운데 김병기 신라대 기획부총장은 “지방대의 명운은 지역사회 발전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며 “수도권 대학들이 학생들을 다 데려갈 수밖에 없는 구조는 지방대의 위기가 아니라 지역균형발전의 위기로 봐야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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