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편지' 출간한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

‘고추장을 작은 단지로 하나 보낸다. 사랑에 놓아두고 밥 먹을 때마다 먹으면 좋겠다. 이것은 내가 손수 담근 것인데, 아직 잘 익지는 않았다.’

박지원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 내용 중 일부다. 장대한 기골에 범의 상을 한 박지원이 땀을 뻘뻘 흘리며 직접 고추장을 담그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곰살궂은 그의 행동이 의외다.

“연암 박지원 선생은 기골이 장대한 선비였어요. 글에서도 기백이 느껴질 정도죠. 그런데 자기 아들한테 하는 이야기는 그렇질 않아요. 손수 고추장을 담가 보내고 손자의 생김새를 잘 안 알려 준다고 투정을 부리기도 합니다. 다른 글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에요.”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출간한 <아버지의 편지>는 조선시대 이름난 선비들의 편지를 모아 풀어낸 책이다.

이황, 백광훈, 유성룡, 이식, 박세당, 안정복, 강세황, 박지원, 박제가, 김정희 등 열 명의 선비가 주인공이다.

제목에서 보듯, 선비보다 아버지로서 보내는 편지들을 모았다. 자식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은 아들에게 편지로 가르침을 보낸다. 공부는 어떻게 하는지, 어떤 벗을 가까이 하는지, 몸은 건강한지, 아들이 행여 빗나가지 않도록 노심초사하는 목소리가 편지 위에 절절하다. 대쪽 같은 성품을 지닌 선비였지만 영락없는 우리의 ‘아버지’다.

“자료를 수집하면서 ‘예나 지금이나 아버지는 다 똑같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로서의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 선비들이 야단치는 거나 제가 자식 야단치는 거나 다를 게 하나 없어요.”

책을 출간한 지 2주가 채 지나지 않았지만, 반응이 벌써부터 뜨겁다. 주로 연배가 있는 이들로부터다. 젊은이들이 읽어 주었으며 하고 낸 책인데, 오히려 반응은 다른 곳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한편으론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를 이해하려면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야 하니까요. 어렸을 때 아버지의 충고는 솔직히 귀에 잘 안 들어오잖아요. 아버지가 돼 봐야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죠.”

정 교수는 이번 책 외에도 여러 권을 낸 베스트셀러 작가다. <한시미학산책>과 <정민 선생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로 이름을 알린 뒤, 도교를 소재로 한 <초월의 상상>을 냈다. 이어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 등 다양한 소재의 책을 선보이고, <죽비소리>, <미쳐야 미친다> 등으로 주목받는 작가 대열에 올랐다.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에 이어 지난 2006년에 낸 <다산 선생 지식경영법>은 간행물문화대상을 받기도 했다.

올해 5월에는 조선 명문가의 가르침을 담은 <호걸이 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를 냈고, 그 후 채 몇 달도 안 돼 <아버지의 편지>를 선보였다.

이러한 저작활동에는 꼼꼼한 자료 정리가 근간을 이룬다. 특히 교수실 구석에 자리한 원통형의 2단 파일 정리대는 자료창고이자 보물창고다. 병원에서 환자들 차트를 꽂아 두는 거치대를 구입해 사용하고 있는데, 수백여 개의 차트가 항목별로 꽂혀 있다. 고서적의 자료를 복사한 1차 자료들이다. 원통형이라 차트를 돌려가며 자료를 찾을 수도 있다.

정 교수는 여기에다가 자료를 정리하고, 아이디어를 얻는다. 추가하고 뽑아내고 다듬고 정리해 글을 쓴다. <아버지의 편지> 역시 이곳에서 나왔다.

다작을 하다 보니 시간은 항상 모자란다. 강의를 준비하고, 논문을 쓰는 도중 틈틈이 단행본을 내는 생활이 이어진다. 이외 시간은 일절 허락하지 않는다. 실제로 <다산 선생 지식경영법>을 낸 후 200여 건의 강연 요청을 받고도 모두 거절했다.

“공부할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강연을 한 번 하다 보면 어디는 해 주고 어디는 안 해 주고 그럴 수가 없잖아요. 강연을 나가자니 아무래도 신경을 써야 하고 그러다 보면 자연히 내 시간이 줄어들죠. 그래서 아예 안하고 있어요.”

조선시대를 다루다 보니 특화된 글이 나오고, 여기에다가 정 교수의 간결한 필치가 더해져 맛깔 나는 책이 완성된다. ‘출판사가 정민 교수 원고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렇듯 몇 안 되는 인문학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정 교수는 지금의 출판계가 마뜩찮다. 처세술이나 경영학서 등 ‘실용서’라는 이름을 단 간행물 때문이다. “요즘 나오는 책들은 ‘스킬’만 가르치기 때문에 얄팍한 내용만 나온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런 얄팍함의 홍수 속에서 자신의 저작으로 인문학이 조금이나마 제대로 대접받길 기대해 본다.

“인문학이야말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 줍니다. 머리로 치면 ‘컨트롤타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이게 바로 서야 해요. 그런데 지금은 그렇질 못하니 안타깝죠. 그렇다고 ‘인문학이 불쌍하니까 좀 도와달라’ 이런 이야기는 절대 아니에요.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고 커져야 합니다. 이런 성장에 제 글이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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